친구를 따라 강남에 가서 살거나
애인을 따라 섬에 살거나
이대로 서로의 경계선이 되어
석삼년 애간장을 태워도 오지 않을
엽신을 기다리며 살아갈거나
기다림 하나만으로 일생의 안부를 묻고
내것이 아닌 침장의 슬픈 얼레도 풀다가
맨발 아래 차가운 물소리외 함께
한평생 고질병에 이를 갈며 살라갈거나
아아 내일이 되어도 아지 못할
이 징그러운 소망의 반뿌리들이여
이제 나는 홀로 자유로워야 하겠네.
과골삼천(踝骨三穿)이란 말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갔을 때 제자가 된 황상
(黃裳·1788∼1863)의 글 속에서 나온 말입니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열심히 책을 읽는 황상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 공부를 해서 어디에다 쓰려고 하느냐고 비웃자 한 말입니다.
“우리 선생님은 귀양지에서 20여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 골, 즉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선생님께서 부지런히 공부하라 친 히 가르쳐주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런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아전(衙前)의 자식이었던 황상이 10대 때에 강진 읍내 주막집 한켠에 있던, 다산이 문을 연 서당을 찾아가 “저같이 머리 나쁜 아이도 공부 할 수 있나요?”로 시작하여, 삼근계(三勤戒)로 격려를 받고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평생 동안 간직했던 황상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가슴을 적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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