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아침편지-'그리스인 조르바'
염홍철의 아침편지-'그리스인 조르바'
  • 염홍철
  • 승인 2014.07.08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29번째 월요일 아침편지를 띄웁니다. 

오래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을 때는 왜 그랬는지 좀 재미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존경하는 법정 스님이 추천하신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책 50권’에 들어 있고, 박웅현 씨의 인문학 강독서인 <책은 도끼다>에도 길게 소개되어 있으며, 독서량이 많기로 유명한 이회창 전 국무총리께서도 제 지인에게 ‘권장하는 도서’로 이 책을 추천하셨다는 말을 연거푸 듣고는 다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재독의 와중에 뜻밖에도 오래전 읽었을 때와는 다른 감동과 많은 생각거리를 얻었습니다.

이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실제인물인 조르바를 만나 나눈 대화들과, 같이 생활하며 경험한 것을 소설형태로 엮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카잔차키스 자신이고 조르바와 정반대의 속성을 가졌습니다. 조르바는 ‘아직 자연과의 탯줄을 끊지 않은’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고 ‘나’는 구도자의 길을 걸으며 ‘통찰력도 깊고 예견도 잘하는 현자’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카잔차키스는 주인공인 ‘나’보다 조르바에게 더 애착을 갖습니다.

조르바는 인간 모두를 ‘짐승’이라고 일갈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외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믿는데 그것은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자신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르바는 ‘인간 이성’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는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라고 말합니다. ‘이성’이란 고상한 단어를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이라는 단어로 단숨에 매도해버리고 맙니다. 그러면서 그는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가슴으로 이해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카잔차키스는 이런 조르바를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라고 평가하면서 <영혼의 자서전>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조르바로부터 영향을 받은 진솔한 자기 성찰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 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카잔차키스는 니체에서 붓다로, 붓다에서 레닌으로, 레닌에게서 오디세우스로 진리를 좇다 마침내 다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독창적(?) 해석으로 교황청과 그리스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합니다. 카잔차키스는 교회가 자신을 파문하려 하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냅니다. “성스러운 사제들이여, 여러분은 나를 저주하나 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나만큼 양심이 깨끗하시기를, 그리고 나만큼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기를 기원합니다.”

단편적인 자료로 카잔차키스의 종교적 입장을 정확히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한 이윤기 씨가 쓴 <20세기의 오디세우스>에 언급된 것을 참고로 한다면 그는 신과 인간, 천사와 악마,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의 영원이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을 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카잔차키스는 알베르 카뮈가 “나보다 백 번은 더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술회할 정도로 문학계의 거물이었으며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탐독했고 불교와 기독교를 섭렵한 최고의 지성인이지만, 본능에 충실하고 말보다는 몸짓에 익숙한 배우지 못한 조르바를 자신의 ‘삶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지목한 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법정 스님은 1995년 여름 카잔차키스가 살았던 크레타를 방문하였다고 하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한 이윤기 씨는 1999년 2월과 8월에 두 번씩이나 크레타를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방문한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의 비문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무더위에도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꽃의 웃음에 대한 비밀
-김충규

참을 수 없이 웃는 꽃이 가장 진한 빛깔을 낸다
나비가 속삭일 때 그 속삭임마저 참을 수 없는 꽃이
나비가 발가락에 묻혀온 초록물을 살결에 살짝 적실 때
화들짝 놀라 웃음 터진 꽃이
우리가 꺾어온 것은 꽃이 아니라 꽃의 웃음이다
웃을 때 도드라졌던 꽃의 실핏줄이다
꽃이 웃을 때
나비는 쿡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뇌를 뽑아간다
뇌 없이 웃는 꽃
훅- 실성한 꽃!

====================================================================
김충규(1965~2012)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습니다.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낙타’등 5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외 다수가 있습니다. 제1회 미네르바작품상과 제1회 김춘수시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