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이 아닌 ‘변방갤러리’… 원도심의 새로운 씨앗
변방이 아닌 ‘변방갤러리’… 원도심의 새로운 씨앗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① 대전 동구 원동 변방갤러리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4.08.1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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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지난 5월, 갤러리 한 곳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미술관 하나 생겨난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그 곳의 위치 때문일 것이다. 시장한 복판, 횟집과 횟집 사이에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옛 대전백화점 건물을 끼고 돌아 중앙시장 쪽으로 들어오면 일명 ‘횟집 골목’ 이 나온다. 50여 미터쯤 되는 좁은 골목 초입에 ‘서울 횟집’이 있고 서울 횟집 옆에 작은 공간 하나가 붙어 있는데 바로 그 곳이 ‘변방 갤러리’ 이다. 두어 평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공간, 심지어 문 없이 뻥 뚫린 입구, 3면의 벽은 긁히고 얼룩져 있고 천장의 페인트는 여기저기 칠이 벗겨지고 떨어져 나간 채다.

천장에 붙어있는 ‘변방 갤러리’ 라는 글귀가 없었다면 누가 이런(?) 곳을 갤러리라고 생각하겠는가. 문 없는 입구 한쪽에는 전시 중인 작가의 팜플렛이 놓여 있고 3면의 벽과 바닥에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좁은 골목에 놓인 오래된 평상에 앉아 조용히 그림 감상을 하고 있는 이웃분이 보였다. 그러니 맞다. 공간과 작품과 관람객이 있으니 갖출 요건은 다 갖춘 갤러리인 것이다.

“원래여기는 창고였어요”
“원래 여기는 중앙시장 노점상들이 물건을 보관하는 아주 오래된 창고였어요. 아침저녁으로 물건이 들고 날고 하느라 페인트칠도 벗겨지고 시멘트도 떨어져 나가고 했지만 일부러 손보지 않았어요. 이 자체가 50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변방 갤러리 대표 이재우 씨는 바로 갤러리 옆 서울 횟집의 사장이기도 하다. 
“갤러리로 만들려고 제가 월세 20만원에 세를 얻은 거에요. 아내한테 눈치가 보여서 횟집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시키는 일은 뭐든 다… 완전 노예처럼 일합니다.  (웃음)”

가게 안에는 <1988년,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횟집> 이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이재우 씨는 26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곳 한자리에서 회를 팔아왔다.

“80년대만 해도 대전에서 활어를 먹을 수 있는 횟집 자체가 없었습니다. 일식집에서 팔던 선어가 대부분이었죠. 그러다 중앙시장에 하나둘 횟집이 생기면서 골목이 형성되었어요. 대전뿐만 아니라 충남, 심지어 경북에서도 회를 먹으러 왔어요. 회를 먹으러 온 사람들이 이 골목에 줄을 섰을 정도였다니까요.”

그야말로 문전성시, 오로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뛰어든 생업이었다. 다행히 장사가 잘 돼 가장 노릇하고 빚도 갚고 아파트도 장만했다는 이재우 씨,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밤마다 잠에서 깨면 숨이 쉬어지질 않았단다. 난데없는 공포였다.

대전에서 가장오래된 회집
“둔산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점점 원도심 상권이 죽고 자연스럽게 여기도 장사가 안됐어요. 제가 좀 더 생업에  매진해야 했죠. 아내도 강력히 원했고요. 그런데 제가 원래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그때까지도 횟집을 하면서 여러 군데 대학에 출강도 하고 미술에 대한 끈을 잡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완전히 접어야 했거든요. 그러고 나니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온 거죠.”

그때 생각난 것이 ‘영화’ 였다. 대전 토박이인 이재우 씨는 어릴 적부터 대전극장, 서라벌 극장, 신도, 중앙, 아카데미 등, 고만고만 자리 잡고 있던 극장을 순례하며 영화를 즐겼던 영화광이었다. 한때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중앙시장, 상인들은 장사가 더 잘되는 곳으로 하나둘 빠져 나갔고 자연히 손님들 발걸음도 뜸해진, 썰렁한 시장 골목에 저녁이면 영화를 틀기 시작했다.

“바벨, 8월의 크리스마스, 잃어버린 신발 같은 영화를 틀었어요. 친구들 불러다 술도 한잔 하면서… (웃음) 그러던 중 미술을 함께 했던 한 후배가 이왕이면 전공인 미술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거에요.”

전국 최초 전통시장 미술제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전국 최초로 시도된 ‘전통시장 미술제’였다. 이재우씨가 주도한 이 미술제는 대전, 충청권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시장 상인들, 장보러 온 사람들도 많이 흥미로워하고 관심을 보였다.

원도심, 대형마트에 밀려난 시장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방법은 ‘문화’ 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성공적인 시장 미술제를 본 다른 지역 상인들이 자기네들도 한 번 해보고 싶다며 조언을 얻으러 오기도 했다. 그러나 6년째 미술제를 하면서 커다란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전시회가 끝나면 그 좋은 작품들이 단번에 사라져 버리잖아요. 언제나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지속적인 공간을 만들자 싶었죠.”

시장 구석, 횟집 옆 작고 낡은 창고가 갤러리로 변신한 연유는 이렇듯 이재우 씨의 살아온 지난 삶과 씨줄날줄로 엮여져 있었다.  

변방 갤러리는 지난 5월 개관, 이제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7번째 작가전이 열렸고 이미 올 연말까지 작가 선정도 대략 마친 상태다. 유재종, 김진호, 윤양숙, 이은정, 2창수, 김대호 작가의 전시회가 열렸고 복기형, 유현민, 전백진, 김광환 등의 작품이 한창 관객과 만날 준비 중에 있다.

“3개월을 단위로 하나의 기획을 합니다. 공통된 기획 안에서 2주 단위로 작가가 바뀌는 거고요.”

3개월 단위로 기획
변방 갤러리의 첫 번째 기획은 ‘거센 흐름을 건너’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전혀 다른 전시 공간과 방법으로 이미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기존의 틀을 ‘거센 흐름’ 으로 규정하고 이를 과감하게 넘어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재우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작품성’ 그저 ‘조금 의외의 공간, 독특한 공간의 갤러리’ 란 것이 목표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는 개인전 3회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작가들로 선정하고 있어요. 또 우리만의 통과의례 같은 게 있는데… 제가 직접 만든 9개의 질문지와 막걸리 한 병 을 앞에 두고 작가와 대화를 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그동안의 삶은 어떠했나?’ ‘처음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이 시작된 순간에 대한 원인과 결과는?’ ‘표현한 작품이 삶과 어떤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와 같은 묵직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막걸리 병이 줄어들고 엉엉 우는 작가들도 있다고. 예술이 그 자체로서만이 아닌, 우리네 삶과 어떻게 부딪히고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현장인 것이다.

“재미난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복종순 작가가 양은으로 만든 부처상을 전시한 때였어요. (작품명: 시간의 저넘어- 석굴암에 대하여) 처음엔 여기 전시장과 어울리는 작품일까 반신반의했어요. 근데 어느 날 보니 누군가 불전을 놓고 갔지 뭐에요. 그대로 놔뒀더니 그 위에 돈이 계속 쌓였어요. 그 앞에 간절히 절을 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요.”

그 돈은 마치 갤러리가 ‘하필이면’ 혹은 ‘왜’ 시장 한 복판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과도 같았다. 비릿한 생선냄새 풍기는 시장 골목 안, 두 평짜리 전시장이 아니었다면 과연 손 때 묻은 지폐와 동전들이 쌓였겠는가? 그야말로 예술과 생활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섞이는 짜릿한 순간인 것. 이재우 씨는 이것이야말로 작가와 관객 사이 진정한 ‘소통’ 이 아니겠나며, 그 불전(?)에 돈을 좀 더 보태 연말 이웃돕기 성금함에 넣겠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전시회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직접 여기서 작업하는 모습을 공개할 계획도 하고 있어요. 이미 서예 퍼포먼스를 한 적도 있었죠. 가수들이 공연도 했는데 마이크 없이 노래 불렀던 그 경험이 너무 좋았다고 하더군요.”

갤러리, 전시회, 미술, 왠지 어렵고 낯설고 멀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러나 변방 갤러리는 문턱이 없다. 입장료도 없다. 그저 장 보러 오가는 길에, 식당에 밥 먹으러 왔다 가는 길에 잠깐 멈춰 감상하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왜 갤러리 이름을 ‘변방’ 이라고 지었는지 물었다.

“중심을 동경하고 꿈꾸고 그리워하는 건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고 갈망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변방에서 살아가죠. 끊임없이 자기를 개혁하고 자신의 처지와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희망과 열망이 변방의식입니다. 그 변방의식을 갤러리를 통해 키워보고 싶습니다.”

더이상 변방이 아니다
변방의 사전적 의미는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 이란 뜻이다. 한때는 중심이었던 원도심, 원도심 중에서도 가장 중심상권, 제1상권이었던 중앙시장. 그러나 지금은 백화점, 대형 마트 등에 밀려 변방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변방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밀려났다고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싹틔워 보겠다는 이재우 씨의 변방의식이 고맙고 반갑고 소중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계속되는 한 시장 한 구석 변방 갤러리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가장 확고한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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