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잘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것인가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잘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것인가
(26) 장자 ‘장자’ ② 양생주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10.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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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세 번째 양생주(養生主)편입니다. 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예를 들어 보여 줍니다. 포정해우(庖丁廨宇)라는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포정이 소를 잡다.’ 라는 뜻으로 백정이 소를 잡는 이야기입니다. 포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데 그 솜씨가 최고의 춤과 음악처럼 움직임이 탄복할 정도입니다. 명인의 경지입니다. 문혜군이 그 경지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道)입니다. 처음 소를 잡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소뿐이었지만, 3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소를 소가 아닌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입니다.

마음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 사물과 일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거리감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고착된 마음에서 벗어나 타자에 예민하게 반응 대응하여 주체 형식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양생(養生)의 지혜입니다. 포정은 소를 수천 마리 잡았지만 금방 숫돌에서 간 것처럼 날카롭게 칼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논어의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와 통하는 경지입니다.

노자의 죽음에 대한 예화입니다. 160세까지 살았다던 노자가 죽자 친구 진일(秦佚)이 문상하러 갔습니다. 그가 들어가 세 번  곡하고 간단한 문상 후 나오니 그의 제자가 그 까닭을 묻습니다. “늙은이들은 자기 자식을 잃은 것처럼 곡을 하고, 젊은이들은 자기 어미를 잃은 것처럼 울고 있더군. 우는 것을 노자는 바라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하는 것은 자연을 피하고 본래 모습을 어기는 일이네. 옛날에 이런 것은 자연을 피하는 벌(遁天之刑)이라고 했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죽게 마련입니다. 삶과 죽음은 운명입니다. 죽음을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자연의 본성에 벗어나는 일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순응함으로써 슬픔과 기쁨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형벌을 받아 외발이가 된 우사(右師) 이야기도 있습니다. 벌을 받게 된 이유를 하늘 탓으로 돌려 편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게다가 외발이 된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합니다. 새장에 갇혀 얻어먹을 일이 없어졌으니 연못가의 야생 꿩처럼 본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장자는 탓하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네 번째 인간세(人間世)입니다. 인간세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란 뜻입니다. 비정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며 살 수 있는 처세법입니다. 『장자(莊子)』가 직접 대놓고 유학을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조롱거리로 만든 우화가 여럿 있습니다.

안회(顏回)가 공자에게 폭군의 나라 위나라에 가서 신음하는 백성을 구하겠다고 말합니다. 안회가 누구입니까. 공자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입니다. 분명히 거기 가서 처벌이나 받을 거라고 생각하여 치인(治人)의 도를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너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명예와 실리를 위한 것인지 냉철히 살피고 난 후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유학의 본질은 선악을 구별하여 시비를 가리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장자화된 공자는 그것을 져버린 것입니다.

공자의 수제자 안회는 공자에게 대답합니다. 자기는 속으로 인의를 갖추어 도덕적으로 모자람이 없고, 겉으로는 기법과 술수를 이용하는 타협과 유연성도 있고, 그 외 무엇이 더 모자라다면 가르침을 달라고 합니다. 이에 공자는 재(齋) 하라고 가르칩니다. 재의 본뜻은 ‘굶다’입니다. 자기 생각을 없앤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이것을 심재(心齋)라고 못 박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제2편에 나오는 오상아(吾喪我)와 같은 사상이다. 『장자(莊子)』의 핵심 사상인 나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좌망(坐忘)하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그중 마음을 모으는 것이 기본 요건입니다.

 

섭공 자고(子高)는 초나라 대부입니다. 제나라에 가라는 왕명을 받고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고민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긴장한 탓으로 열이 올라 얼음을 먹을 정도입니다. 이 우화에서 장자는 공자의 입을 빌려 도가사상인 무위(無爲)를 말합니다. 효성과 충성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알고 편안히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연함입니다. 자신을 잊고 생사에 초연한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

공자는 자고에게 다시 조언을 합니다. 역시 무위의 가르침입니다. “무엇보다도 말을 조심하라.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라. 억지로 하거나 꾸며서 하지 말고 부득이 한 일은 그대로의 흐름에 맡겨두고 도와 하나 되는 중심(中心)을 기르도록 전념하라. 더욱이 명령을 바꾸려 하거나 억지로 이루려는 것 모두 위험한 일이다.”

공자의 친구인 거백옥(蘧伯玉)은 위나라 태자의 스승으로 가는 안합(顔闔)에게 자문합니다. “태자가 본래 덕이 모자라서 하는 대로 놓아두면 나라가 위태롭고, 법도에 따라 말리면 자신이 위태로우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거백옥은 훌륭한 질문이라고 칭찬하고 유교 논리와 다르게 말합니다.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직언하여 정사를 바르게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선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은 정체성을 확립하여 심지를 굳힌 다음, 구체적으로 태자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물처럼 되라’는 뜻입니다.

거백옥은 나아가 위나라 태자처럼 좀 부족하고 난폭한 사람을 대할 때 주의할 것을 세 가지를 빗대서 충고합니다. 사마귀가 달려오는 수레에 맞서는 것과 같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을 삼가 하고, 호랑이 사육사가 호랑이 배부를 때와 배고플 때를 알아서 호랑이 성질에 잘 맞추듯이 본디 사나운 기질을 고분고분하게 굴게 만들고, 말 사육사가 말을 사랑한 나머지 말 등에 모기가 앉는 것을 보고 갑자기 등을 때려서 놀란 말이 사육사를 들어 받는 것처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 되어 엉뚱하게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이상(理想)이 아무리 높다 해도 현실적 한계를 무시하고 무모하게 나다니다가 희생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장자는 쓸모없음의 큰 쓸모를 말합니다. 재능 있다는 인물이 함부로 그 쓸모를 발휘하려고 하다가 결국 쓸모 있기 전에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하는 재앙을 자초하지 말라고 합니다. 목수 장석(匠石)은 사당나무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합니다. 사당나무는 꿈에서 응대합니다. 귤나무와 같은 과일나무는 열매 맺는 재능 때문에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잘려 죽고, 자기는 쓸모없기를 바라다가 이제야 장석 같은 목수가 쓸모없다고 판정하니 마음 푹 놓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지리소(支離疏)라는 꼽추는 육신이 그런지라 큰 벼슬자리 한자리 못하였지만 군인 징집 시에도 당당하게 다녔고, 큰 공사가 있어도 노역을 면제받았고, 정부로부터 곡식과 장작을 받으며 천수를 다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처지에서 허세 부리지 않고 자유롭고 차분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공자가 묵고 있는 집 앞에서 서성이며 노래 불렀다는 미친 사람 접여(接與)의 노래도 같은 생각입니다. 미치광이 접여는 공자에게 쓸모 있으려 애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접여는 자기는 가시나무가 무성한 길을 가더라도 그 나무가 자신을 막거나 해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볼지 모르나, 좋은 나무들은 재목감이 된다고 하면 베어 지고, 계수나무는 열매에 계피 향이 있어 상처를 입고, 옻나무는 값비싼 생칠 할 수 있는 진이 있어 칼질을 당하는 것이 세상사라고 말합니다. 접여는 현실 사회에서 무섭게 질주하는 영악한 우리를 보고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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