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여기, 우리 아직 살아있어요
[시민기자의 눈] 여기, 우리 아직 살아있어요
  • 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 승인 2018.10.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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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내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굿모닝충청 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과 극의 삶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

현란한 고층 아파트촌과 세월의 나이를 먹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철거를 앞둔 철거촌이다.

넉넉하지 못한 이웃들의 소박한 보금자리였을 이 곳.

많은 이들은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살았고, 삶이 공존했고, 그래서 하나의 역사가 되었던 이곳의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나 한 때 이 동네의 주민이었던 길고양이들.

도시의 잉여존재로 죽어간 수많은 길고양이들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기록. 이제 조만간 이 막다른 골목에서 도시는 바뀔 것이고, 아마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나이 먹은 동네, 사라지는 역사 그리고 남은 것들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마지막으로 이별하기 위해 지역의 전문가들과 예술가들이 진행했던 피아노 퍼포먼스 ‘막다른 골목’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철거가 들어갔던 지난 달 14일 이른 아침, 목동 전역에 마지막으로 피아노의 선율을 선사했다.

피아니스트 박상희씨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어진 이번 프로젝트는 사라지는 역사와 동네, 그리고 살던 이들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했다. 그녀가 연주했던 피아노는 철거 현장 빈집에 버려졌던 피아노를 수리해서 진행했고, 아침 7시부터 시작됐다. 철거반이 오기 전 몇 차례 연주 후 작업반이 도착한 후 피아노 소리와 굴삭기 소리의 조화롭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며 퍼포먼스는 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렇게 예술가들은 사라지는 동네에게 송가를 보내며, 마지막 이별에 정성을 고했다. 그리고 재개발로 인해 소멸되는 역사와 추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 모든 것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이기도 했다.

옛 대전지방법원 근처 동네였던 목동 3구역에는 법원 관사 등 오래된 집들이 많고, 1세대 건축가 박만식이 지은 1960년대 주택도 있다. 특히 이곳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할 때 묵었던 동네이기도 하다.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 판사로 부임해 8개월 가량의 짧은 판사 생활을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 그런데, 그 집 역시 헐린다. 대전 최초 선교사의 집도 헐렸다.

충분히 스토리가 있고 보존의 가치가 있음에도 재개발이라는 명목은 이 모든 것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길고양이에게 허락된 세상의 유일한 집, 철거촌

목동재개발 구역에서 다친 길고양이.사진=이희내 시민기자

전기도, 수도도, 인적도 끊긴 이 곳은 철거촌이다.

밤이 되면 폐허 공간 옆 작은 교회에 불이 켜진다.

모두가 떠났다고 생각하는 그 곳에 살고 있는 잊힌 생명 중 하나인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람들이 한 두명씩 모이기 시작한다.

‘길고양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평생을 도시의 잉여존재로 떠돌고 이제 철거촌에 홀로 남은 고양이들.

길고양이들은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지역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몇몇은 먹이를 찾아 떠나기도 하지만 어린 새끼들은 철거촌에 머물다 굶주림과 질병, 철거반의 중장비에 휩쓸려 죽기 태반이다.

함께 공존하는 이웃, 그들을 몇이라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철거되는 도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설치미술작가, 여상희씨.

그녀는 오래전부터 대전 중구 목동의 사라지는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일을 하다가, 이번 길고양이 구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재개발 사업으로 지난 8월부터 부분 철거가 이루어졌던 목동 3구역은 지난달 14일 되자마자  전면적인 철거가 대책 없이 밀어붙여졌다.

인간에게 좋은 환경으로 바뀌기 위해 진행되는 한 부분, 철거. 환경이 바뀜에 따라 너무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런데 과연 그 변화는 긍정적인 걸까 생각을 하게 됐고, 목동재개발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몇 몇의 주민들과 철거로 인한 유리, 철군, 벽돌, 철사. 못 등의 위험요소로 인해 머리가 까진 채 뼈가 드러난 고양이를 보며, 건물 더미에 생을 마감한 새끼 고양이를 보며 목동재개발지역 고양이 구조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매일 저녁 8시부터 철거지역을 돌며, 목동 고양이 구조대 캣맘, 캣대디와 함께 길고양이들을 구조하다 보면 새벽을 넘기는 일은 다반사다. 목동재개발지역이 유리조각 투성이라 점점 더 흉터 가득인 채 발견되는 길고양이들을 보면, 속이 쓰리고 안타깝기만 하다.

‘철거’라는 붉은 글씨가 쓰인 이 곳. 사람들은 폐허라고 부르지만 고양이들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집이 생긴 셈이 되었다.

무너진 담벼락, 깨어진 유리, 부서진 창문틀…

길고양이에게 허락된 세상의 유일한 집인 철거촌 .

아직 이 곳에 남은 사람들이 있고, 남은 고양이들이 있지만, 목동인근으로 더 많은 지역이 다시 재개발을 시작하고 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
철거촌의 고양이들은 탈수와 영양실조, 감염에 시달리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죽어간다. 사람들이 키우는 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은 10년에서 15년이지만 길고양이는 2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특히 길고양이로 태어난 새끼들은 영양부족 및 위험한 환경으로 인해 3개월 이상 살기조차 힘들다.

도시에서 인간들이 길고양이들에게 허락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린 배와 새끼의 생존을 위해 먹이를 찾아야했다.

길에서 태어나 이 동네의 주민이었던 수많은 길고양이들. 이 도시의 잉여존재로 죽어간 수많은 그들의 삶과 죽음은 이제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며 잊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 이곳에 사람이 살았고, 삶이 함께 공존했으며, 그래서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졌던 곳이라는 것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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