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조선 후기 우리문화의 역사 고스란히 담아내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조선 후기 우리문화의 역사 고스란히 담아내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11.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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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우리다운 전통예술을 손꼽으라면 판소리와 풍속화입니다. 이 둘은 겉으로는 닮은 구석이 없어 보여도 같은 점이 많습니다. 김현주님은 ‘춘향전’을 오랫동안 연구한 분입니다. 이분의 능력으로 판소리 이면에 살아있는 광대 이야기와 풍속화 그림 속에 숨 쉬는 화공의 붓놀림이 서로에게 말을 겁니다. ‘춘향전’에 나타나는 걸쭉하게 푸진 판소리와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 역동적인 풍속화는 닮은꼴이 참 많습니다. 오래 만에 책속에서 꺼내 읽은 김현주의 ‘판소리와 풍속화, 그 닮은 예술의 세계’는 우리 조상의 본모습과 그 속에서 찾은 전통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치고 ‘춘향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춘향전’은 예로부터 우리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소중하게 여기지는 안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작품 중 ‘춘향전’이 으뜸이다’는 글을 읽고 춘향전을 다시 챙겨 보았습니다. 제 공부가 부족했습니다.

변학도에 항거하여 이 도령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춘향의 모습을 그린 ‘춘향전’은 조선 후기의 하나의 역사입니다. 색채, 형태, 형상, 동작 등에 의해 일어나는 시각적 상상력이 우리 모두를 사로잡습니다. 또한 당시 실학적 인식론 내지 세계관을 여실히 나타냅니다. 특히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보았습니다. 오감(五感)과 외관(外觀), 수기(修己)보다는 치인(治人), 실용(實用)과 실증(實證), 정신보다는 물질 중시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물질성 강조는 당시의 상업, 수공업 발달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춘향전’에는 판소리와 풍속화가 살아 있습니다. 판소리 춘향가는 잘 알려진 ‘춘향전’의 줄거리에 소리를 붙여 만든 것으로 음악적으로, 문학적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판소리로 꼽힙니다. 판소리와 풍속화, 둘의 탄생시기가 비슷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조선사회는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과거와 달리 군주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계층의 구분이 많이 흐려졌고, 이조 초기의 도덕관념에서 벗어나 문예의 미적가치를 추구합니다. 문예작품들은 다양한 인간군들을 등장시켜 당시의 사회 참모습을 그려냅니다. 서민대중의 유교적 관념주의에 대한 회의와 비판, 싹트기 시작한 물질주의적 사고와 같은 변화된 사회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이 흐름의 주도층은 전문직이면서 행정을 담당하는 역관 같은 중인들, 서민경제의 발달에서 부를 얻은 신흥 부호계층, 청나라에 멸망한 명나라를 대신하여 조선을 중화(中華)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숙종·영조·정조 같은 당대 군주들도 한몫 했습니다.

‘춘향전’ 만큼 시각적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고전 작품은 흔하지 않습니다. ‘이런 가관이 없던 것이었다.’ ‘모양을 볼작시면’ 등과 같은 구절과 함께 과도하리만큼 풍성한 사실주의적 묘사는 ‘춘향전’의 회화성을 더욱 강화 시켜줍니다. ‘춘향전’을 읽으면 내용 속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이는 어휘의 성격에 따라 좌우됩니다. 형태어의 사용 빈도가 높고, 인물 주변의 시각화도 강화 되여 상상력이 발휘됩니다. “신 벗어 양 소매에 넣고 옷자락을 걷어안고 자취 없이 가만가만 가는 것”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신을 벗어 양 소매 속에 넣고 옷자락을 걷어안고 발소리를 죽여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연하게 느껴질 만큼 구체적입니다.

당시 회화에서도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가 유행하고, 인물·풍습·의습 등을 표현한 풍속화가 성행했습니다. 풍속화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사생정신(寫生情神)이 바탕이 되어, 실경을 찾아 화면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역사적 흔적이 엄청 묻어납니다. 자연과 더불어 조그마한 인간을 정태적 시점에서 점(點)과 먹(墨)으로 관념의 세계를 그린 인문화(人文畵)와는 달리, 풍속화는 선(線)이 중요하고 이 선으로 인물의 모습을 입체화합니다. 아주 역동적입니다. 배경을 생략하고 근거리에서 세속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인물의 형상만을 포착합니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일련의 풍속도첩은 서울지역의 유흥 공간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인물이나 사건 등이 확대되어 포착되고, 자질구레한 주변 정황이 구구절절 묘사됩니다. 정조(正祖)가 풍속화를 국정 자료로 활용했다는 말은 현실 공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증거입니다.

‘춘향전’과 당시 회화 작품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 아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 미상의 ‘춘향전’은 회화적 상상력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습니다. 혜원의 일련의 풍속화들은 ‘춘향전’의 내용을 직접 소재로 하여 그린 것이 아니지만, 정황적 상상력의 차원에서 상당한 동질성을 보여줍니다. 혜원의 삼추가연(三秋佳緣)에서 늙수그레한 노파가 어린 기생과 총각사이를 주선하고 있는 그림은 ‘춘향전’에서 춘향 모친 월매가 춘향과 이 도령이 만난 첫 날밤에 둘의 동숙을 허락하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이는 나이 많은 매파가 성거래를 주선하던 당시의 기방 풍속을 그린 것입니다. 혜원의 춘의도(春意圖)인 월하정인(月下情人)과 야금모행(夜禁冒行)은 구름사이로 달이 숨바꼭질하는 밤에 이 도령이 등롱을 든 방자를 앞세우고 춘향 집에 가는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김윤보(金允輔)의 태장도(笞杖圖)도 신관사또에게 수청 들기를 거절하다가 모진 형장을 받은 춘향을 사령들이 끌어내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수많은 기록화(記錄畵)은 ‘춘향전’에서 행차와 연회장면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당시의 극세필의 기록화는 글과 함께 상부에 보고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단원(檀園)의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에서 그림의 행렬은 ‘춘향전’의 신임 부사 행렬의 순서까지 흡사합니다. 

한마디로 판소리와 풍속화는 상당히 유사한 시공간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판소리와 조선 후기 회화가 동질적인 성격을 갖게 된 배경은 그 예술담당 주체인 광대(廣大)와 화공(靴工)이 상당부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인다역의 광대가 연출하는 판소리는 전 계층의 주목을 받으며 어전에서, 양반 사대부에게 불려가서, 관찰사의 공식행사장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벼슬도 주어졌습니다. 선달이니 참봉 계급이 주어지고, 아울러 국창이라는 으뜸명창에서 도랑광대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위계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화가는 자기의 가치관이나 이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양반 사대부 화가, 도화서에 소속된 벼슬아치 화가로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대부의 문인 화는 여가활용으로 그리지만, 도화서 화원들은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그립니다. 도화서 화원들의 삶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의 최고수 단원 김홍도는 만년에 그림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서민 부호들과 일반 서민들의 회화 애호풍조가 그림 수요 폭증을 낳았고 무명화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됩니다. 아마추어 화공들은 향촌 구석구석 다니면서 그림을 팔아 근근이 생활했습니다. 민중들이 필요한 화조도(花鳥圖) 계통의 민화(民話)가 발달한 시기입니다. 아주 재미난 그림도 많습니다.

끝으로 조선 후기 문예의 발달에는 기업의 메세나(mecenat)처럼 천민계층의 가난한 예술인을 격려하는 후원자가 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판소리 전주대사습(全州大私習)놀이에서 전라감영의 아전처럼 중인(中人)의 역할이 엄청났고, 겸재(謙齋) 정선 (鄭敾)과 김창흡(金昌翕)·김창협(金昌協)같은 안동김씨 문중,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처럼 시서화(詩書畵)를 필수 교양으로 여기는 양반 사대부의 후원은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이 책은 가장 우리 문화다운 예술분야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매개자 역할을 합니다. 춘향전·판소리·풍속화,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알 수 있습니다. 한나절이면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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