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사 바로알기] 대전은 태전(太田)이 아니었다
[대전역사 바로알기] 대전은 태전(太田)이 아니었다
  • 김정곤
  • 승인 2014.10.29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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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곤 전통예절 및 향토사학연구가
[굿모닝충청 김정곤 전통예절 및 향토사학연구가] 대전의 원래 지명은 태전이었으나 일제가 대전으로 격하시켰다면서 원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를 지배한 것은 1910년부터 만 35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대전은 동국여지승람에도 있고, 송시열의 문집에도 등장한다. 문헌에 기록된 것만도 5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이름이다.

‘대전’은 500년 역사가진 이름
여러 해 전 모 단체에서 ‘태전이름 되찾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특정 종교단체의 태전환원은 자신들의 종교와 연관시킨 주장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태전을 운위하지만, 그 종교가 등장한 시기는 20세기 초이니 설득력이 없다. 또 한 때는 “선조들이 전해준 원래이름은 태전”이었다거나,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지어 준 오욕의 지명”이라는 등 그럴듯한 말들도 있었다.

이런 왜곡된 사실은 일제 강점기 호남일보가 발행한 ‘충청남도 발전사’에서도 확인된다. 그 후로도 대전시의 간행물이나 지역인사들의 저서에도 나타난다.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사람들도 “콩밭을 의미하는 태전이던 것이 일본인에 의해 대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했다. 이들 중에는 향토문화 책임자와 지명(地名)위원, 언론계의 중진도 있었다.

‘태전’은 고증되지 않은 설
‘태전’이란 지명은 고증되지 않은 ‘설’에 불과하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 역사가 먼저다. 그런데도 잠시 왜곡되었던 일이 정설처럼 되고 말았다. 시내 삼성동의 대로변 전봇대에는 태전로와 우암로의 이정표가 버젓이 걸려있다. 오히려 태전로가 더 커 보인다. 우암로는 우리 고장의 선현(송시열)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뜬금없는 태전로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대전은 아주 오래된 우리의 고유지명이다. 그 기록이 동국여지승람(公州牧)에 있다. “대전천은 유성현 동쪽 25리에 있다. 전라도 금산군 경계에서 발원한다. 이상의 세 냇물이 합류하여 회덕현의 갑천이 되었다.(大田川在儒城縣東二十五里 源出全羅道錦山郡地界 已上三川合流 爲懷德縣之甲川)”

승람의 기록은 대전이 하천이름으로 사용되었음을 증명한다. 대전천이라 하였으니 분명 대전이란 지명도 있었을 것이다. 하천이름은 대체로 지명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전천은 대전의 존재(地名)를 입증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따라서 일제에 의했다거나 일부 인사의 ‘태전(太田)’설은 고증되지 않은 사견이었던 셈이다. 

송시열은 우리 고장이 낳은 큰 선비이다. 그가 기사환국의 소용돌이 속에 초산(楚山, 정읍의 옛 지명)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된다. 처음의 장지(수원 만의산)로 발인하면서 회덕의 대전천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 때 대전의 여러 마을에서 상여꾼들이 동원되었다.

“(1689년) 7월 11일, 상여꾼은 주산ㆍ마산ㆍ사현ㆍ와지의 네 마을과 배달촌ㆍ대전ㆍ사오ㆍ초동의 사창계에서 조발하여 3개조로 나누어 교대로 메고 갔다.(宋子大全續拾遺附錄 楚山日記 門人閔鎭綱錄; 十一日乙巳 擔夫則自注山,馬山,沙峴,瓦旨四村及白達村,大田,沙塢,草洞社倉契調出 分三運替擔)”

뿌리없는 도시 비하 안될 말
상여꾼들은 오늘날의 동구 주산동 · 마산동 및 대덕구 배달촌(현 중리동)과 ‘大田’에서 차출하였다. 주산동과 마산동, 배달촌은 송 씨들의 세거지다. 초산일기는 민진강이 스승 송시열의 장례를 날짜별로 기록한 것이다. 거기에 마을이름 대전이 등장한다. 이런 지명들은 송준길의 ‘동춘일기’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한마디로 대전은 태전이 아니었다. 대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역사는 실로 장구하다. 둔산동 선사유적지를 비롯하여 비래동 및 용호동 유적들이 그를 증명하고 있다. 이 땅의 오래 전 이름은 ‘한밭’이었다고 한다. 한밭을 한자로 大田이라 한 것이다. 한자의 大와 太는 같은 의미로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고유명사 대전은 ‘태(太)’로 쓰지 않았다. 

간혹 대전을 뿌리가 없는 도시라고 비하한다. 그러나 대전은 송준길 · 송시열 · 김경여 · 권시 등, 호서의 명현들이 살았던 유향(儒鄕)이다. 조상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대전은 150만 인구의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닌 자랑스러운 우리들 삶의 터전이다. 역사가 담긴 이름을 비하시켜서,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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