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차별금지법 제정, 더 늦출 일 아니다
[노트북을 열며] 차별금지법 제정, 더 늦출 일 아니다
성소수자 인권 증진은 거스를 수 없어....정치권 답해야
  • 지유석
  • 승인 2019.06.03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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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퀴어문화축제에서 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이날 행진엔 주최측 추산 7만 명이 참여했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퀴어문화축제에서 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이날 행진엔 주최측 추산 7만 명이 참여했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6월 첫째 주말을 맞은 1일 서울 도심은 대규모 집회로 뒤엉켰다. 이미 서울은 대규모 집회에 익숙하다. 그러나 1일 도심 집회 양상은 조금 특별했다. 

먼저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올해 스무 돌을 맞은 축제는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인파는 도심 행진을 시작한 오후 4시경 절정에 올랐다. 

축제 조직위는 광장 참여인원 8만, 행진 참여인원 7만 등 총 15만 명이 참여했다고 알렸다. 축제 초창기였던 2000년 참가자가 50여 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실로 놀라운 진전이다. 

진전은 외형에 그치지 않았다. 축제 참가자들은 해가 갈수록 당당해지는 모습이다.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축제 참가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주저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옷차림은 더욱 대담해졌고, 사진 촬영을 부탁하면 스스럼없이 응한다. 

또 하나, 축제에 참여하는 주한외국인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축제 기간에 맞춰 한국에 오는 외국인도 종종 눈에 띤다. 주한 외국인의 참여는 서울이 명실상부 국제도시로 자리매김했음을 실감하게 한다. 

서울광장 건너편 덕수궁 대한문 광장에서는 보수 단체의 반정부 집회가 열렸다. 원래 해마다 퀴어 축제가 열리면 대한문 광장에서는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 기도집회가 열렸다. 그런데 올해 대한문 광장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든 보수 단체가 차지했다. 

이에 보수 개신교 단체는 서울시청 건너편 태평로 서울시 의회 앞 도로에서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준비위원회(대회장 이주훈 목사)가 주최한 '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러브플러스' 집회를 열었다. 

일부 개신교 단체는 퀴어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까지 '침투'해 반대집회를 열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과 성격은 다소 결이 달랐지만, 양측은 한 목소리로 ‘반동성애’를 외쳤다. 

한쪽에서는 성소수자가 모여 한껏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고 바로 맞은 편에선 '신앙'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집회가 열리는 광경은 다소 모순적이지만, 해마다 되풀이되는 서울의 한 단면이다. 

가짜뉴스로 이웃을 비방하지 말라

<블레이드 러너>, <토털 리콜> 등 SF영화 원작소설을 쓴 작가 필립 K. 딕은 "현실은 관점이다"는 말을 남겼다. 즉, 관점에 따라 현실은 재구성된다는 말이다. 

해마다 퀴어축제가 열릴 때 펼쳐지는 서울 도심 광경도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장애가 있거나 난민이라는 이유로, 혹은 '성적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의 희생양이 되어선 안 되며, 법과 제도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올해 스무 돌을 맞은 퀴어축제가 50여 명이던 참가자가 15만까지 늘어난 건 성소수자 인권을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결과라 판단한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2007년 발의됐다. 그러나 10년 넘도록 차별금지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민사회는 더 이상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뤄선 안 되다며 목소리를 높여 나가기 시작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해 10월 "문재인 정부와 20대 국회는 평등을 향한 열망에 응답해야 한다"라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그러나 국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일단 국회는 선거제·개혁입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을 거치며 개점 휴업상태다. 6월엔 임시국회가 열려야 하지만, 여야는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열 것이란 관측이 없지 않지만, 열린다고 해도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서울광장 귀퉁이에서 보수 개신교 단체가 반대 기도집회를 하고 있다. 해마다 퀴어축제가 열릴 때면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서울광장 귀퉁이에서 보수 개신교 단체가 반대 기도집회를 하고 있다. 해마다 퀴어축제가 열릴 때면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무엇보다 보수 개신교계는 차별금지법에 극력 반대해 왔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게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 이유다. 이런 이유로 보수 개신교계는 퀴어축제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과 혐오 감정을 여과 없이 발산했다. 

보수 개신교계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권기본법"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 개신교의 반대논리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보수 개신교계는 정치권에서 차별금지법 등 관련 법안 제정 움직임이 일 때마다 집단행동으로 이를 무산시켰다. 보수 개신교는 사법부 수장의 자질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에도 거리낌 없이 개입했다. 

2017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 표결 과정에서 보수 개신교계는 지역구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냈다. 두 후보자가 성소수자에 우호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솔직히 수도권을 필두로 해서 충청권·호남권은 특히 기독교가 굉장히 강하다. 모든 목사 장로들이 동성애 동성혼 군형법 관계로 반대한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문자를 보내고, 지역구를 가면 목사님들이 의사표시를 강하게 한다."

이 같은 집단행동은 각 의원실이 관련 법안을 철회하도록 할 정도로 강력하다. 차별금지법이 10년 넘게 국회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도 보수 개신교의 집단행동 탓이다. 

보수 개신교계에 당부한다. 인권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어긋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독일 루터교, 캐나다 연합교회 등 개신교 전통이 강한 나라의 기성교회는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 개신교는 '인권증진'을 곧장 '동성애 조장'으로 받아들이고 극력 반대해왔다. 그래서 해마다 퀴어축제가 열릴 때면 '음란축제'니 하는 가짜뉴스가 카카오톡을 통해 퍼지고, 현장에선 '동성애는 지구를 떠나라'는 식의 혐오 선동이 횡행한다.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담은 성서도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여호와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열 가지 계명을 내린다. 이중 다섯 째 계명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인데, 이를 현대적으로 적용하면 "가짜 뉴스로 이웃을 혐오하거나 비방하지 말라"는 당부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건강성을 측정하는 척도 중 하나는 소수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다.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은 이전에 비할 수 없이 나아졌다고 본다. 이제 이 같은 사회 인식에 정치권이 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그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든, 누구를 사랑하든 간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 올해 또 한 번 기록적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관용과 다양성을 위해 서울 거리에 모이게 된다. 국제사회는 지속적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지지할 것이며 모든 시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한국정부와 사회의 노력을 응원할 것이다.

이러한 행사들에 참여하게 된 것과 국제적 연대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된 것, 보편적 인권과 다양성, 관용과 차별 없는 사회를 지지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대하는 바이다."

- 서울 퀴어문화축제 20주년을 축하하며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제임스 최 주한 호주 대사
마이클 대나허 주한 캐나다 대사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대표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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