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는 CEO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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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 콘크리트 패널 제작 - 창명산업
  • 창업진흥원
  • 승인 2014.11.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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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창업진흥원]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 코끝이 넓어 돈이 붙는다는 복코. 서글서글한 눈매. 너그러우면서도 굳센 의지가 돋보이는 입초리. 잠시 인상 비평을 하자면, 최복길 대표는 첫눈에 신뢰감과 호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 최복길 대표
최복길 대표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벽돌공장에서 10년간 공장장으로 일했다. 그러나 벽돌제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그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유명 건축가들이 노출 콘크리트로 작품을 지어서 세계 건축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출 콘크리트는 별도 마감재를 시공하지 않고 콘크리트가 갖고 있는 물리적 성질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마감기법으로 프랑스 ‘라 뚜레뜨 수도원(1960)’, 미국 ‘솔크 생물학 연구소(1965)’, 일본의 ‘로코 하우징 1(1983)’ 등이 노출 콘크리트의 대표 건축물로 꼽힌다.

노출 콘크리트를 즐겨 사용한 건축가로는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 일본의 안도 다다오, 이탈리아의 루이스 칸, 그리고 우리나라의 김수근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최복길 대표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본격적으로 신소재 패널 연구에 나선 그에게 ‘노출 콘크리트 소재이면서 대리석처럼 광택이 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명 ‘광택 노출 콘크리트 패널’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가격은 대리석의 반값이면서, 광택과 질감은 대리석처럼 빛나는 콘크리트 패널을 만드는 일은 그러나 쉽지 않았다.

5년간 모래와 시멘트, 물의 배합과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실험이 계속됐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자그마치 300번의 실험을 하는 동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가장 어려운 시기, 옆에서 힘이 되어준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통과하지 못했을 시련과 역경이었다. 고진감래. 마침내 ‘광택 노출 콘크리트 패널’ 제작에 성공했다. 하지만 난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제품을 어떻게 사업화시킬지 막막했다. 이때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 센터는 신소재 패널을 사업화시키기 위한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창명산업은 중소기업청과 강릉시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강릉과학산업진흥원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에 입주했고, 광택 노출 콘크리트 패널 제작이 ‘예비지식 청년 사업자 육성 사업’에 선정돼 시제품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

기술과 경영, 두 마리 토끼를 잡은 1인 기업인으로 최복길 대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2013년 6월, 마침내 특허 출원에 성공했고 8월부터 시판에 들어간 창명산업의 광택 노출 콘크리트 패널은 벌써부터 건축업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존 노출 콘크리트와 비교할 때, 광택 노출 콘크리트는 대리석 특유의 광택 있는 질감을 표출하기 때문에 더 고급스럽다. 그러면서도 별도의 마감재를 사용하거나 표면처리를 할 필요가 없어 한결 쉽고 간편하게 시공할 수 있으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광택 노출 콘크리트의 수요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도심을 통과하는 교각이나 지하철 역사, 교회 등 외부 마감이 어려운 건축물에 널리 쓰이며, 그 외에도 다양한 쓰임새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신소재 패널이다.
이제 남은 관건은, 품질과 가격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한편,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고 판로를 확대해 나가는 일. 하지만 최 대표는 낙관적이다. 센터의 지속적인 교육과 멘토링 그리고 마케팅 지원을 십분 활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포부를 물었다. “앞으로 광섬유를 이용해 밤이면 건물 외벽이 반짝반짝 빛나는 패널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그의 눈빛도 어느새 자신감과 설렘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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