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노회찬은 떠났지만....
[노트북을 열며] 노회찬은 떠났지만....
고 노회찬 1주기....정치란 무엇인가?
  • 지유석
  • 승인 2019.07.25 16:5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1주기를 맞았다. 사진은 지난 해 7월 27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있었던 하관식.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1주기를 맞았다. 사진은 지난 해 7월 27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있었던 하관식.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2018년 7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남긴 유서 중 한 대목이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설마하며 애써 외면했다. 심지어 가짜뉴스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명도 높은 정치인이기도 했고, 가족 중 가까운 이가 당에 몸담고 있었기에 충격은 컸다. 고인은 생전에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이면 여성 당직자에게 꽃을 보냈고, 당원이 경조사를 당할 때면 깍듯이 예를 표했다.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직접적인 원인은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었다. 당시 '드루킹' 김동원 일당의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허익범 특검은 드루킹과 고 노 의원 사이에 자금이 오간 정황을 포착했다. 

드루킹 측이 2016년 3월 고 노 의원에게 2000만원을 기부했고, 같은 달 노 전 의원의 부인을 창원 지역에서 만나 3000만원을 기부했다는 게 특검 측 설명이었다. 

정치인은 정치자금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그러나 정치생명이 끝장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게 정치자금이기도 하다. 

극단적 선택 한 달 전인 6월 고 노 의원은 국회 특수활동비(특활비)를 폐지하자고 제안했고, 스스로 특활비를 반납했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국회의 예산집행 구조상 수령거부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국회 특수활동비가 폐지될 때까지 앞으로도 매달 특수활동비 수령 후 전액을 국회사무처에 불용액으로 반납할 예정입니다. 오늘 저의 특수활동비 반납이 미래의 국회를 좀 더 투명하게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 의원의 제안은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당의 지지율도 두 자리를 넘어섰다. 그런 와중에 정치자금 수수의혹이 불거졌으니 본인으로서나 당으로서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고 노 의원은 처음엔 이 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그가 몸담았던 정의당도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드루킹에게 받은 자금이 불법이었는지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2018년 10월 11일자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댓글조작 사건 주범으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씨 측이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유서에 적힌 4000만원은 정당한 강의료였으며, 특검이 회유해 별도로 5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노 전 의원 측에 줬다고 허위 자백을 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낸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정치인이 있어야 할 자리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1주기를 맞아 20일 그의 묘역에선 묘비 제막식이 열렸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1주기를 맞아 20일 그의 묘역에선 묘비 제막식이 열렸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지난 해 7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엄수된 고 노회찬 의원 영결식에서 조문객이 눈물을 쏟고 있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지난 해 7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엄수된 고 노회찬 의원 영결식에서 조문객이 눈물을 쏟고 있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생전에 고인은 구수한 입담과 촌철살인의 유머를 과시했다. 정치개혁을 고기를 굽는 판에 비유하며 판갈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대중을 즐겁게 했다. 

또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장면을 두고 "거의 뭐 에프킬라를 발견한 모기들 같은 상황"이라고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일단 허익범 특검이 밝힌 정치자금 수수 정황은 어디까지나 의혹 단계였다. 이런 의문이 든다. 고인의 입담을 감안해 볼 때, 상황을 지켜봐 가면서 위법성이 발견되면 사과하고 법적 책임을 지면 어땠을까? 또 자기변호가 필요한 상황에서 적극 나섰다면? 

더구나 요사이는 소셜 미디어가 활성화돼 있는데다, 고인 스스로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렸기에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고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훌쩍 떠났다. 

무엇보다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이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라는 점은 아쉽기 그지없다. 이 같은 의혹은 얼마든지 정쟁거리로 이용될 여지가 없지 않았고, 그런 일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자유한국당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4.3 경남창원성산 보궐선거에서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가 정의당의 반발을 산 것이다. 

앞서도 적었지만, 정치인은 정치자금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와 같은 고비용 구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고 노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선 시각차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고인은 정치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는 다른 정치인 보다 더 잘 알았다는 점이다. 

그의 생각은 '6411번 버스'로 유명한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연설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매일 새벽 4시 출발하는 6411번 버스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6411번 버스는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운행하는 버스다. 이 버스엔 늘 같은 이들이 몸을 싣는다. 

고 노 의원은 이 버스를 타는 이들이 "한 달에 85만원을 받는 투명인간 이고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연설을 이렇게 이어나간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묘역에 마련된 6411번 버스 조형물. 고인은 6411번 버스 연설을 통해 이름 없는 이들을 위한 정치를 선언했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묘역에 마련된 6411번 버스 조형물. 고인은 6411번 버스 연설을 통해 이름 없는 이들을 위한 정치를 선언했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는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며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그렇다. 정치는 존재하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이름 없는 이들을 위해야 한다. 그게 정치의 존재이유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도 정치를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라 하지 않았던가?

고 노회찬은 이름 없는 이들을 위한 정치를 하려 했던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떠난 이후 이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잇달아 목숨을 잃었다. 더구나 그의 1주기를 맞는 지금 국회는 사실상 멈춰선 상태고 정치권, 특히 보수 자유한국당은 온갖 막말을 일삼으며 정치를 더럽히고 있다. 

고인은 아마도 이 상황에서 거리로 나가 이름 없는 이들에게 이름을 줬을 것이며, 특유의 촌철살인 멘트로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를 떠나보내기 힘들다. 새삼 그가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애니 2019-07-25 19:43:55
기사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회찬의원님 그립네요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