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일기] 제2의 고향 ‘대한민국’
[다문화 일기] 제2의 고향 ‘대한민국’
나의 사랑 나의 코리아! 좌충우돌 ‘다문화 일기’ ③
  • 박에드나
  • 승인 2014.11.11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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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박에드나 필리핀]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저는 이렇게 한국선수를 응원합니다.
대한민국!
이제는 나의 제2의 고향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딸과 함께 남편의 나라 이곳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간다고 하니 행복한 마음이었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나라, 그것도 제가 익숙하고 정든 곳을 떠나 저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을 간다고 하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뿐 이었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결혼을 많이 반대하셨다는 시어른이 계신 곳을 간다고 하니 더욱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 사랑하는 남편의 새로운 식구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이나 설렘보다는 예상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하여 입국신고를 하고 밖으로 나올 때까지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마중을 나오신 결혼을 반대하셨던 시어머니를 만나자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저의 타국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선 타국생활, 게다가 제 편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언어까지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은 실수와 해프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결혼을 반대하셨던 남편의 부모님은 저를 여왕처럼 생각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쉽고 고국에 있는 가족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늘 마음은 필리핀 바탕가스에 가 있었습니다.

단지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때는 시름을 조금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열심히 본 드라마가 ‘전원일기’로 복길이 할머니의 인상이 깊었습니다.(ㅋㅋㅋ)
코미디 같았던 저의 처음의 생활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저의 시어머니는 경상도 출신이십니다. 어느 날 김치를 담그시는 시어머니를 옆에서 돕고 있는데, 사실 돕는 다기 보다는 구경하는 것이었지만요. 어머니께서 저에게 고춧가루가 잔뜩 묻은 손으로 무엇인가 가리키시면서 단것을 집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제 귀가 얼마나 긴장했으며 쫑끗 했겠습니까? 저는 열심히 듣고 얼른 “네” 하며 대답하고 당근을 집어드렸습니다. 제 귀는 당근이라고 들었으니까요.(ㅎㅎ) 그러나 어머니가 원하신 것은 당근이 아니라 설탕이었습니다. 한바탕의 웃음소리와 함께 저는 어머니에게 시골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며 말씀드렸습니다. 시골말은 사투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시어머니께서 목욕탕에 가서 판때기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무언가를 받치기 위해서 목욕탕에 항상 공책 크기 만한 판때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귀에 들리는 대로 빨려고 내놓은 팬티를 가져다드렸습니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이것 외에도 이 모양 저 모양의 많은 해프닝들을 일으키며 저는 가족들의 도움 안에서 조금씩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갔습니다. 지금은 필리핀 요리보다는 한국의 된장국을 더 잘 끓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녀교육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필리핀 엄마가 한국식 교육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저의 시댁같이 높은 교육수준에서 그와 같은 교육을 원하는 가족에 그 수준의 자녀로 키우는 것은 많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도 필리핀에서는 나름대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로 인해 시어머니와의 부딪침도 많아졌고 평화가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믿었던 남편이 도와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저희 남편은 경상도 사람이어서…. 아시지요? 어떤 상황인지.

딸아이 또래인 제 필리핀 친구 아들은 한국수업이 이해가 안 되어 수업시간에는 운동장에서 혼자 놀다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교실에 들어가 친구들과 장난만 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면 운동장에 나가 혼자 놀고…. 결국에는 필리핀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국제결혼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다반사인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한국학생과 똑같이, 비슷하게 교육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많이많이 울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자식들이 백점만 받아왔다고 하는 받아쓰기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40점을 받아오는 딸아이를 보며 제가 어떻게  받아쓰기 100점 딸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런 상황 속에서 다른 가족의 도움으로 저의 자녀들은 아들딸 둘 다 대한민국의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지금 일본의 국립대학에서 석사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인이 된 저이지만 더욱 한국인이 되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한국어 공부를 비롯해 여러 공부를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제 자랑을 하나 하면 지난번 한국어능력시험에 도전해서 2급에 합격하였습니다. 지금 3급 시험에 다시 도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한국에 적응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한국정부 시스템과 저를 만난 모든 한국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진실한 마음을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 ‘다문화 일기’ 시리즈는 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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