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시간을 슬기롭게 다루는 지혜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시간을 슬기롭게 다루는 지혜
(38) 피에르 쌍소(1928~2005)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19.10.2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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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내가 삶을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매 순간 살아있는 존재로써 아침마다 햇살을, 저녁마다 어두움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만물이 탄생할 때의 그 빛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나 불만스러운 표정의 시작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세상이 계속해서 나를 향하여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피에르 쌍소(1928~2005)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겉표지에 나오는 글이다. 그는 스피드 시대에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느리게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느림’은 개인의 자유를 일컫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파스칼(1623~1662)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행복하지 않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같이 아무 생각 없이 허둥지둥 살지라도 느린 사람은 평판이 나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며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고, 보다 감성적이고 시적인 삶의 형태로 살기 위해서 ‘느림’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느림’은 개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의 문제라 한다. 이는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온다. 삶의 길을 가는 도중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나온다.

저자는 느리게 사는 지혜를 하나씩 하나씩 예시한다.

먼저 한가로이 거닐기이다. 버릇없고 게으른 아이 같은 태도로 빈둥거리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남의 말 듣기이다. 타인을 위로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상대방에게 몰입함으로써 더욱 풍요로워진다. 살짝 스치기만 하되 움켜잡지 말라고 조언한다.

꿈꾸기이다. 영혼의 쉼에 가치를 부여하는 몽상에 빠지는 것으로,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주의력과 무의식이라는 두 강물사이에서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다.

권태에 빠지기이다. 잡동사니로 가득 쌓여있는 시골집, 작은 도시를 촉촉이 적시던 가느다란 보슬비, 그리고 늙은 노처녀 할머니들과 같은, 영원한 마음속의 시골 고향을 떠올리면 친밀감과 행복감 속으로 빠져든다.

기다리기이다. 봄이 무르익었을 때, 그러니까 5월이 되어야만 비로소 문을 여는 자그만 한 변두리 술집에서 5월의 따뜻한 저녁을 기다려 찾는 것 같은 것이다.

고독한 글쓰기이다. 자신의 재능을 과시할 목적에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참모습에 더 접근하기 위해서 마음의 소리를 옮기는 것이다.

한 잔의 포도주 마시기이다. 우리의 모든 기능을 약하게 만드는 포도주가 만드는 독특한 지혜에 귀를 기울이자. 이는 특별한 아침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데라토 칸타빌레(Moderato cantabile)이다. 해석하면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기’이다. 절제라는 미덕의 지혜로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을 생각하자. 텃밭 가꾸기처럼 소박한 기쁨을 맛보고 그런 기쁨들과 조화를 이루는 능력에서 나온다.

느리게 사는 것은 홀로 즐기며 사는 기쁨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시간에게 모든 기회를 부여하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이다.

《인디언의 영혼》을 지은 『오히예사』는 ‘진리는 홀로 있을 때 우리와 더 가까이 있다’고 말한다. 인디언들은 홀로 있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대화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예배 양식이다. 자주 자연 속에 들어가 혼자 지내 본 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 커져가는 기쁨이 있으며 그것은 곧 삶의 본질과 맞닿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법정 스님도 그의 책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산속  오두막집에서 즐기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새로 피어나는 자작나무 어린 잎이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춤을 추고 있다. 개울 물소리는 장단을 맞추고 흐른다. 개울 건너에서 검은 등 뻐꾸기도 한몫 거들고 있다. 철쭉이 벼랑에서 수줍게 웃음을 머금고 있다.”

중국 책 《문기유림(問奇類林)》이라는 책은 한가함을 찬양하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탄했다. 조물주는 공명과 부귀를 아끼지 않으나 한가한 것만은 아낀다. 다행히도 집에서 먹고 지낼 수만 있다면 정말 한가한 생활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좋을 텐데도 인간들은 돈지갑만 꼭 간수하려고 손을 벌벌 떨다가 좋은 산수와 좋은 풍경에 대해서 참 맛을 모르고 부질없이 삶을 수고스럽게 살다가 죽는다. 이는 자손들을 위해서 소나 말과 같은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이 책은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슬기롭게 다루는 지혜를 주고 있다. 일상적인 사소한 것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저자의 세심하고 감미로운 감성이 부럽다. 가벼운 책이지만 진지하게 읽기를 권한다. 사는 지혜를 보태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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