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태안군이 얻어야 할 3가지 교훈
[노트북을 열며] 태안군이 얻어야 할 3가지 교훈
친일 행적·군부독재자 찬양 논란 속 서정주 시비 계획 철회…불통 경계해야
  • 김갑수 기자
  • 승인 2019.11.20 11: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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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의 첫 보도로 촉발된 충남 태안군의 서정주 시비(학) 건립 논란이 일단락됐다. (자료사진: 가세로 태안군수/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의 첫 보도로 촉발된 충남 태안군의 서정주 시비(학) 건립 논란이 일단락됐다. (자료사진: 가세로 태안군수/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 태안=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의 첫 보도로 촉발된 충남 태안군의 서정주 시비(학) 건립 논란이 일단락됐다. 서정주의 뚜렷한 친일 행적은 물론, 군부독재자를 노골적으로 찬양한 사실이 역풍을 불러일으킨 모양새다.

그 과정에서 정의당 서산‧태안지역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서정주 시비 건립 반대 태안군민모임’(군민모임), 충남작가회의는 물론 가세로 군수가 소속된 더불어민주당조차 직‧간접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으니 그대로 강행하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쉬움은 영 가시질 않는다. 화장실에서 그냥 나온 것처럼 찝찝함이 남는다. 일련의 과정에서 노출된 태안군의 행정이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이번 일은 지난 3월 논란을 일으켰던 광개토대왕릉비 건립과 다른 듯 닮아 있다. 고속도로와 철도 개통, 가로림만 해상교량 건설 등 대규모 SOC 사업을 통해 태안의 지경을 넓히겠다는 가 군수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지만 태안군의회의 반대로 제동이 걸린 바 있다.

태안군, 서정주 시비 건립 계획 철회…다행이지만 찝찝함은 남아

무산된 듯 했던 광개토대왕릉비 건립은 지역 출신 건설업체 대표의 기증 형식으로 끝내 강행됐다. 영토 확장의 대명사인 광개토대왕을 개인적으로 흠모할 순 있지만, 역사적으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인물을 억지춘향 식으로 태안군의 또 다른 상징물로 만든 것이 과연 적절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여기까지는 이해하려 했다. 태안군은 고속도로와 철도가 없는 전국의 2개 지자체 중 하나라는 점에서 가 군수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일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정주 시비는 다르다. 단순히 1950년대 학암포를 다녀와서 ‘학(鶴)’이란 시를 지었다는 이유로 그의 시비를 세우려 했다는 것인데, 그의 행적을 안다면 절대 그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군부독재자를 향해 “영원한 찬양”을 외쳤던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심하게 말해 ‘권력의 부나비’와 다를 바 없는 서정주를, 그것도 전국의 여러 지자체가 친일 청산 차원에서 그의 시비를 철거하는 마당에 태안군이 이런 일을 모색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정주의 친일 행적과 그의 작품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논리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눈 감아 주자”는 말과 전혀 다르지 않다. 민족의 반역자를 “잘한 일도 했다”고 두둔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친일은 했어도 시만 잘 쓰면 된다는 말인가?

광개토대왕릉비 건립과 다른 듯 닮아…철회 입장도 궤변에 가까워

계획을 철회하는 모양새도 영 못마땅하다. ‘서정주 시비 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 관계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올린 글이 사실상 태안군의 공식 입장이 된 셈인데, 자성은커녕 궤변에 가까워 유감스럽다.

예를 들여 “당리당략(黨利黨略)이나 정략적 꼼수가 개입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친일 망령을 경계하는 것만큼이나 독선적 행태를 배척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등의 표현은 이번 사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당신들이 뭔데 딴죽을 거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밖에 안 된다.

가 군수 스스로 “찬성과 반대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하겠다”면서도 서정주 시비 건립의 전권이 추진위에 있고 태안군과는 무관하다는 해명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어찌됐건 서정주 시비 건립 계획이 철회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대로 강행됐더라면 민족 정기를 흐린 ‘불통의 상징’이 됐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번 일을 계기로 태안군정이 3가지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우선, 가 군수의 의지가 아무리 강한 사업일지라도 군민(국민)의 동의와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언급한 광개토대왕릉비다. 어느 단체 하나 현장을 찾아 대륙의 기상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벌써 흉물이 됐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가 군수의 절실함은 인정하지만, 그 방향성이 옳지 않다면 군민의 지지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태안군정의 발전과 성장을 염원하는 사람은 가 군수 혼자만이 아니다. ‘내 생각만 옳고 남은 그르다’는 식은 위험하다.

둘째, 태안군정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또는 그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가 군수는 지난 15일 비공개로 진행된 간부회의에서 서정주 시비 논란과 관련 “당리당략” 운운하며 불쾌한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리당략’은 말 그대로 “정당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계략”을 뜻한다. 정의당 서산‧태안위원회와 군민모임을 비롯한 반대 단체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일은 가 군수 개인에 대한 정적(政敵)들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결코 아니다.

합리적 비판을 당리당략으로 규정하는 건 위험…뼈저린 교훈 얻어야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와 가깝고, 일제를 비롯한 외세에 대항했던 동학농민혁명 북접 기포지라는 점에서, 특히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인 만큼 “이래선 안 된다”는 상식선의 문제의식이 있었을 뿐이다.

각 분야에서 협치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지 않다.

계속해서, 태안군이 추진한 시책(사업)이 예기치 못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이를 마무리하는 방식 역시 바꿔야 한다. 가 군수는 공식석상에서 최소 2차례 이상 서정주 시비 건립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태안군정이 뼈저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또 다른 ‘불통의 상징’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태안군정이 뼈저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또 다른 ‘불통의 상징’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위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책임 있는 행정의 모습이 아니다. 복기해 보면 언론 보도를 계기로 우려의 목소리가 공론화됐을 초기에 깔끔히 정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생겼다”는 군민모임 관계자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전북 무주군이 태권브이 조형물을 세우려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황인홍 무주군수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방소멸 위기 속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간절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태안군의 서정주 시비 건립 논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그 의지가 순수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고심이 깊이 반영된 것일 지라도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추진하지 않는 것이 옳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잘 잡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태안군정이 뼈저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또 다른 ‘불통의 상징’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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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2019-11-22 07: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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