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힘들어도 신학공부 계속하고 싶어요”
“몸은 힘들어도 신학공부 계속하고 싶어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한남대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 박찬미 씨
  • 황해동 기자
  • 승인 2012.07.11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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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 새벽 국밥집 아줌마, 버스기사, 119 구조대원, 응급실 간호사. 우리 주변에는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를 위해, 또 남을 위해 시작하는 이들의 아침은 그 누구보다 이르다. 새벽의 고요함이 이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삐걱거림 없이 돌아가는 이유일 수도 있다.

취업준비생의 고단한 새벽 또한 이들과 다를 바가 있으랴? ‘취업난이란 현실의 무게를 딛고 선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취업준비생들의 새벽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젊음과 미래 가능성을 밑천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열어나가는 젊은이들의 새벽을 만나봤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10일 새벽 440, 한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열람실 문을 열었다. 밤새 발이 묶인 공기가 쾌쾌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른 새벽시간대임에도 열람실 군데군데 책과 씨름을 시작한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이 졸업을 했거나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깃든 고단함의 한 켠에는 비장함과 결연한 의지도 엿보였다.

열람실 구석에서 만난 박찬미(23··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4학년) . “매일 아침 늦어도 6시면 도서관에 도착해요. 어제는 도서관에서 밤을 샜어요. 7시쯤 자취방에 가서 씻고 밥 먹고 다시 와야죠.”(웃음) 그녀에게 새벽 열람실의 적막함은 익숙해진지 오래다. 매일 새벽길을 재촉해 도서관을 찾지만 밤을 새는 일도 잦다고 했다.

밤을 새면 낮에 졸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졸리죠. 그런 날은 열람실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요. 아침에 집에 가서 잠들면 일어나기 힘들거든요. 그래도 강의는 절대 빠지는 일이 없고 또 그날그날 목표는 꼭 마치는 편이에요.”라고 답했다. 힘들지만 힘듦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일상을 듣고는 가슴이 아련했다. 열정과 의지에 감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찬미 씨의 집은 포항이다. 타지방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자립심과 의지력이 길러진 것 같았다. 목표도 뚜렷하다. “신학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목사가 돼서 해외 선교활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에 전념하는 게 꿈이에요. 졸업하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이 주어지는데 1급 자격까지 따야죠.” 그녀는 모태신앙인이다. 오래전부터 기아대책본부 등 각종 재단을 통해 해외 아동과 북한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그녀의 오랜 소망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연유다.

이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1차로 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공부를 지속하고 싶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도 갖고 싶다. 이왕이면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해 장학금을 받는 것도 찬미 씨의 작은 소망이다. 비싼 등록금에 이어 또 다시 자신의 학비를 부모님께 의존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란다. 종종 틈이 나면 아르바이트도 한다. 책을 사보고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갸륵하다.

요즘 대학생들 아르바이트 안하는 사람 없어요. 등록금, 생활비저 같은 자취생들은 부담이 더 커요. 취업 준비하다가 잠시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선배들도 적지 않아요. 잠시 책을 접고 돈을 벌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거죠.”

경제적 부담보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스펙 인플레이션 시대의 불확실한 미래다. 지방대생으로 졸업 전 취업은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란다. 토익은 800-900점이 기본이고 토플, 텝스, 학점관리 모든 게 갖춰져도 원하는 곳으로의 취업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일까, 3학년 학생들의 휴학이 갈수록 늘고 있다. 찬미 씨가 다니는 기독교학과도 전체 정원 160여 명 중 재학생은 100여 명에 불과하다. 휴학 중인 학생들은 영어 공부와 자격증 취득, 아르바이트 본격적인 취업 전쟁을 준비하느라 눈 코 뜰 새가 없단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많다고 찬미 씨는 귀띔했다. 1, 2학년생들 중에는 적성과 상관없이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학과로 전과를 하기도 한다.

어느 대기업 인사담당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지방대생은 일차적으로 심사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기회자체를 주지 않으니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잖아요, 더 노력하는 수밖에말끝을 흐리는 찬미 씨의 얼굴이 잠깐 어두워졌다.

무조건 대기업, 고액연봉 등만을 기대하는 풍토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중소기업들은 인력이 모자라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우리나라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러니는 처음부터 기대치를 높게만 잡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상황을 냉철이 파악하고 또 어떤 길이 자신의 꿈을 이뤄나갈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인지 더 고민해야 해요. 고향에서 전문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벌써 취업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요. 부럽지는 않지만 비싼 돈을 내고 대학을 다닌 것이 억울해지면 안 되잖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는 총총한 걸음으로 열람실을 향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교정을 빠져나오면서 소중한 그녀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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