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국회에 고맙지 않습니다”
[노트북을 열며] “국회에 고맙지 않습니다”
  • 지유석 기자
  • 승인 2019.12.11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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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민식이법’이 마침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고 김민식 군 부모인 김태양, 박초희 씨는 이 광경을 방청석에서 지켜봤다. ⓒ 오마이뉴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10일 ‘민식이법’이 마침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고 김민식 군 부모인 김태양, 박초희 씨는 이 광경을 방청석에서 지켜봤다. ⓒ 오마이뉴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 생명안전법안인 '민식이법'이 10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하준이법도 이날 함께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은 사후약방문과도 같다. 늘 어떤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생기는 게 법이란 말이다. 어린이 생명안전법안도 그렇다. 어린 생명을 잃고서야 관련 법 규정 미비점이 드러났고, 그래서 아이 잃은 부모가 생업도 내던지고 국회를 찾아 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그러나 사후약방문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 어린이 안전규정 미비로 또 다시 비슷한 일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입법, 즉 법을 만드는 행위는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민식이법·하준이법 등 어린이 생명안전법안은 아이를 잃은 부모가 말 그대로 백방으로 호소하며 여론을 일으켜서 얻어낸 결과다. 이 동안 국회는 뭘 했을까?

국회의원 모두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관련 법안을 위해 애쓴 의원이 없지 않다. 민식이법은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아산을)이 대표 발의했다.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아산갑)도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식이법'은 강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이 의원 안을 일부 반영한 것이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 정의당 이정미 의원도 각각 해인이법(어린이 응급조치 의무화)과 태호·유찬이법(어린이 탑승차량 의무신고)을 냈다. 

이 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국회에 쌓인 법안은 그야말로 산더미다. 20대 국회에 계류된 법안만 16,286건이다. 

핵심은 우선순위 

핵임은 우선순위다. 법안 중엔 어린이 생명안전법과 같이 공익 증진을 위한 법안이 있는가 하면 특정 이익집단에게만 수혜가 돌아갈 법안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국회의원이 공익 보다는 이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왔다는 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권사업에서 국회의원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지역구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끌어 왔다면, 해당 정치인은 거리에 현수막을 달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일쑤다. 사실 이게 바로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일반 국민이 ‘정치’하면 얼른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특혜', 그리고 '이권'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다른 사례를 들 것도 없이 민식이법·하준이법만 돌이켜봐도 금방 우리 정치의 민낯이 드러난다. 이 법안 통과까지 숱한 변수들이 돌출했다. 그런데 이 변수란 한국당 황교안 대표 단식,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대치 등이었다. 말하자면 정쟁의 와중에 어린이 생명안전법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민식이법'을 정쟁에 끌어 들인 한국당 나경원 전임 원내대표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민식이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건, 이 법안을 정쟁에 끌어들인 한국당을 향한 민심의 분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민식이법·하준이법이 통과됐음에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아이 잃은 부모의 심경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특히 하준이 엄마 고유미 씨가 토로한 심경은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준이법이 통과된것에대해 저는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그간에 너무 지쳐 이젠 그럴 감정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중략)

국회에 고맙지 않습니다. 태호 엄마와 더불어 저 역시 초기 임산부입니다. 사회적 약자인 임산부들과 아이들 이름 만들어도 호흡이 어려운 유가족에게 국회가 한 짓이 얼마인데 국회가 고맙습니까? 아이들의 안전을 말한 죄로 우리는 정쟁과 모멸에 시달려야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데, 국회가 국민을 어떻게 보는지 아시겠지요. 민생법안 처리했다고 얘기하지 마십시오. 어린이 생명안전법안 통과했다고 얘기하지 마십시오. 한음이, 해인이, 태호, 유찬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순자 왕제 편엔 '군주민수(君舟民水)'란 성어가 나온다. 백성은 배를 띠우기도 뒤집기도 한다는 뜻의 이 성어는 얼핏 현대 대의민주주의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임금'(君)을 '정치'(政)로 바꾸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물이 배를 띠우기도 뒤집기도 하듯 국민이 정치판을 송두리째 갈아치울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현대 대의민주주의 취지와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 어떤 경우라도 정치는, 그리고 정치인은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물론 현실이 꼭 이상적이진 않다. 세력화된 이익집단이 입법 과정에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고, 정치인이 이익집단과 유착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그렇다고 현실에 주저 않을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국민이 나서서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제대로 일하는지,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순간 국민 보다 이권을 더 챙기는 건 아닌지 감시해야 한다. 

정치인 스스로 민식이법 통과 과정에서 정치인에게 그 어떤 선의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입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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