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 생계 막은 ‘펜스’… "소 때문에 땅이 안 팔린답니다"
노부부 생계 막은 ‘펜스’… "소 때문에 땅이 안 팔린답니다"
70대 강 씨 “사유재산권 행사를 이유로, 이웃들이 유일한 통행로 ‘펜스’로 막아”
이웃들 “한우농장 때문에 주변 땅값 떨어졌다. 우리 땅 지킬 것”
  • 정민지 기자
  • 승인 2020.01.19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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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역 내 한 시골마을에서 40여 년간 한우농장을 운영해오던 강규상(가명·75) 씨는 '사유재산권 행사'의 이유로 펜스를 설치한 이웃들 때문에 생계가 어려움에 처했다. / 사진=굿모닝충청 정민지 기자

[굿모닝충청 정민지 기자] “태어났을 때부터 75년째 살고 있는 이 집에서 ‘평생 직업’을 잃게 생겼습니다.”

지역 내 한 시골 마을에서 40여 년째 한우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강규상(가명·75) 씨는 최근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나날을 보내고 있다.

3주 전 즈음부터 강 씨의 집과 한우 농장을 들어가는 유일한 길목이 ‘펜스’로 막혔기 때문이다.

막힌 길로 인해 강 씨는 자가용 차량과 트랙터를 집 마당과 농장 안으로 끌고 들어올 수 없게 됐다. 길은 사람 한 명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남았다.

강 씨의 이웃주민 A 씨와 B 씨가 설치한 철재펜스 모습. 이 곳이 강 씨의 집과 한우 농장을 들어가는 유일한 통행로다.

이 때문에 그는 42마리의 소들을 먹일 사료도 손수 날라야 했다. 70대 노부부는 좁은 길을 따라 일주일에 170포대씩 손수레로 운반하고 있다.

강 씨는 “트랙터로 옮기던 사료 포대를 손수레로 직접 옮기다 보니 넘어져서 몸에 멍이 들기도, 발톱이 빠지기도 했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강 씨는 설 명절 전 소 10마리를 팔 계획이었으나, 현재 이 펜스 때문에 소들을 밖으로 꺼내올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문제의 펜스가 설치된 도로는 1970년대 후반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개설된 도로다.

그 당시 인근 토지소유자들이 자신의 토지를 일부분 기탁해 도로개설에 동의해 만들어진 이후 현재까지 무상으로 사용되고 있는 도로인 것이다.

이러한 도로에 펜스를 설치한 건 다름 아닌 강 씨의 이웃주민 A 씨와 B 씨. A 씨와 B 씨는 해당 도로의 현재 소유자다.

이들은 소 때문에 자신들의 땅이 안 팔린다는 이유로 펜스를 설치했다.

강 씨는 “소 때문에 냄새나서 땅이 안 팔린다고, 자기들 재산권 행사를 못 한다고 소를 키우지 말라고 했다”며 “소를 다 팔아야 펜스를 치워준다고 하더라. 좋게 해결하려 연락을 해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씨가 B 씨에게 보낸 문자. 자료사진=강 씨 제공

강 씨에 따르면 이웃주민 A 씨는 2015년 7월 즈음 강 씨의 이웃집으로 등기 이전했다. 실 거주지는 이 시골마을이 아닌 시내 쪽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이웃주민 B 씨는 강 씨가 태어났을 때부터 옆집 이웃이었던 김 모씨의 아들이다. 평소 강 씨와 잘 지내던 B 씨는 A 씨의 등장 후 달라졌다.

강 씨는 “그 둘이 2년 전부터 구청에 우리 축사의 적법화에 대한 민원을 넣었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는데…”라며 토로했다.

그러면서 “난 부모님이 살고 있던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내 나이 17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소를 키우며 조립식으로 다시 집을 짓고 소를 키워 자식들도 다 키웠다”며 “주민등록 주소 한 번도 안 옮기고 여기서 75년째 살고 있다. 이 동네에서 내가 제일 오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에서 이걸 안 하면 뭐 먹고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 생계를 자기들이 무슨 권한이 있다고… 말년에 이렇게 고통을 주니 얼마나 분한지 모른다. 답답하고 죽고 싶을 정도”라고 한탄했다.

현재 강 씨는 그 둘에 대해 일반교통방해 및 업무방해로 고소한 상태다.

펜스로 길이 막힌 이후, 강 씨 부부는 42마리의 소들을 먹일 사료를 손수레로 나르고 있다.

이와 관련 A 씨는 “그 축사 하나 때문에 우리들의 사유재산이 완전히 묶였다. 왜 우리 땅만 피해를 보고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A 씨는 “아주 옛날에 축사 ‘허가제’가 아니고 ‘신고제’였던 시절, 강 씨는 한 38평 정도에서 축사를 시작해왔던 것 같다. 그 후로 몇백 평으로 키워서 주민들을 아주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축사를 하려면 따로 적법화를 해야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린 강 씨한테 ‘적법화를 해라, 아님 축사 문을 닫아라’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강 씨는 적법화 신청을 안 하며 계속 미뤄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 씨를 믿고 기다렸지만, 행동을 하지 않는 걸 보며 ‘그럼 이제 우리 땅을 찾겠다’해서 펜스로 막은 것”이라 주장했다.

관할 구청에선 “섣불리 나설 수 없다”고 난처함을 표했다.

구 관계자는 “해당 도로처럼 비법정 도로인 ‘관습도로’는 구청에서 따로 조치할 수 있는 게 없다. 법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라 말했다.

구에 따르면, 그 당시 도로로 쓰는 것에 대해 사용 승낙을 했던 토지 소유자들이 현재 나이를 먹었거나, 그 토지 소유권을 자식들이 물려받는 중이다. 그렇게 되면서 현재 비슷한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구 관계자는 “구는 사법기관이나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러 상황이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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