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다 아는 얘기라 별재미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날렸다
남산의 부장들, '다 아는 얘기라 별재미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날렸다
영화리뷰] 흥행가도 1위 질주, 역사와 허구 넘나들어 '흥미진진'
  • 지유석 기자
  • 승인 2020.02.0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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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흥행가도를 질주 중이다. ⓒ 쇼박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흥행가도를 질주 중이다. ⓒ 쇼박스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흥행가도를 질주중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2일 오후 3시 기준 누적관객 4,088,447명을 기록하며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히트맨>(2,011,098명)의 두 배에 이르는 흥행성과다. 

이 영화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당한 10.26 전 40일을 그린다. 잘 알려진 이야기를 영화로 재구성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 영화만 보아도, 상당한 양의 언론 보도과 학문적 연구 성과가 쌓였기에 이제 10.26을 전후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은 이들이 안다. 무언가 새로운 접근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끼워넣지 않는다면, 그렇고 그런 시대극에 그칠 뿐이다. 

연출자인 우민호 감독은 이 같은 어려움을 훌륭하게 극복한다. 무엇보다 설만 무성했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극중에선 박용각) 실종사건을 과감하게 끄집어낸다. 

여기서 잠시 역사로 돌아가보자. 유신체제 말기인 1977년 미국에선 미 의회 의원을 매수하려던,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가 불거진다. 

미 하원에선 프레이저 청문회가 열렸고,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이 청문회에 출석해 박정희 정권의 불편한 진실을 거침없이 폭로했다. 김 전 부장은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자신의 회고록 출판회도 가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 반대자에게 유독 가혹했다. 그가 김형욱을 곱게 볼 리 없었고, 결국 김형욱은 의문의 실종을 당한다. 

첩보영화 향수 자극하는 박용각 납치신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용각 납치신은 첩보영화 향수를 자극한다. ⓒ 쇼박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용각 납치신은 첩보영화 향수를 자극한다. ⓒ 쇼박스

영화는 김형욱의 신병처리를 둘러싼 중앙정보부와 청와대 경호실의 암투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다. 

김규평 중앙정보부장은 되도록 조용히 묻으려 한다. 반면 곽상천 경호실장(이희준)은 박용각 처리에 속도를 내라며 김규평을 압박한다. 박통(이성민)도 곽상천에게 힘을 실어준다. 

김규평은 잠시 갈등하다 결국 곽상천 납치 지시를 내린다. 청와대 경호실에게 곽상천을 내줬다간 자칫 박통의 신임마저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곽상천의 신병을 먼저 확보하고자 치열하게 대립하는 중정과 청와대 경호실의 암투는 이 영화의 백미다. 특히 중정 요원 함대용이 프랑스 파리에서 곽상천을 납치하는 장면은 존 르카레나 이언 플레밍 원작의 첩보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김규평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는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김규평은 곽상천과의 갈등, 미국의 압박, 박통을 향한 충성 등을 두고 갈등에 휩싸인다. 이병헌은 농익은 연기력으로 김규평의 내면에서 이는 감정 변화를 표현해 낸다. 

이병헌의 연기는 또 자연스럽게 임상수 감독의 2005년 작 <그때 그 사람들>에서 김부장으로 분했던 백윤식을 소환하게끔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은 <남산의 부장들>과 마찬가지로 10.26을 다뤘는데, 임 감독은 다소 코믹하게 그날을 재구성한다. 백윤식은 감독의 의도에 화답하듯 신들린 코믹연기를 펼친다. 이병헌과 백윤식은 결 다른 영화에서 결 다른 연기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박통으로 등장한 이성민도 빼놓을 수 없다. 박통이 김규평을 술자리로 불러 충성심을 확인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성민의 연기는 흡사 박정희가 환생한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미국이 박정희 정권을 교체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는 분명 사실과 다르다. 물론 박정희 집권 시절 미국과 파열음을 냈지만 말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미관계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특히 정권 말기로 갈수록 미국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포드 행정부 시절 박정희는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다 미국에게 발각됐다. 박정희는 버텼다. 이러자 당시 국방장관이던 도널드 럼스펠드는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공약을 철회하고 경제원조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박정희는 핵개발 계획을 포기해야했다. 

카터 행정부와의 관계는 더 최악이었다. 카터는 임기 내내 주한미군 철수에 매달렸다. 침례교도이자 '도덕주의 외교'를 표방했던 카터는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반대자 탄압을 반인권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카터 행정부가 박정희 정권 전복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한국 정치 상황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게 사실에 더 가깝다. 역설적이게도 카터는 박정희 시해 이후 전두환의 부상과 5.18광주의 비극을 방조하다시피 했다. 영화가 자칫 미국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은연중에 확산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 점만 빼면 <남산의 부장들>은 10.26을 전후한 역사적 맥락을 현대적 감성으로 잘 살려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10월 쯤 개봉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이름 없는 희생자들 

끝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1979년 10월 26일은 우리 현대사에서 보기 드물게 평시에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진 날이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의 심장을 겨눴다. 김재규를 수행했던 중정 박흥주·박선호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중정 요원에게 궁정동 현장에 와 있던 청와대 경호요원을 사살하라고 지시한다. 

박정희, 그리고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역사란 연극 무대에서 악역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청와대 경호요원은 중앙정보부와 청와대 경호실의 권력 암투 속에서 허망하게 죽음을 당해야 했다. 편을 달리했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10.26을 떠올릴 때면 늘상 박정희·김재규·차지철이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청와대 경호실과 중앙정보부의 알력으로 인해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의 이름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넋을 달래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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