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알베르 카뮈 ‘페스트’,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페스트’다”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알베르 카뮈 ‘페스트’,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페스트’다”
(40)페스트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0.03.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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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팬데믹(pandemic)이다. 중국에서 발생한지 두 달이 안돼서 우리나라에서 확진 환자가 1만 명 가까이 발생하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어느 나라든지 예외 없이 코로나로 비상이다. 지역이든 국가든 이동이 금지된 봉쇄 상태다. 사실상 감옥같이 폐쇄된 공간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이고 그들은 어떻게 역병을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2차 대전 후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페스트’를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꺼내 읽는 이유이다.
  
1947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13~1960)는 ‘페스트 La Peste’라는 전염병을 주제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 작가가 처음에 생각한 소설 제목은 ‘페스트’가 아니라 ‘수인(囚人)들’이었다.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재앙이라는 비극적이고 집단적인 운명에 마주한 인간들이 죽음밖에 없는 상황에서 함께 질병에 대항하며 싸우는 ‘인간과 의지’라는 주제로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시한다.

소설의 무대는 알제리 해안에 있는 인구 20만의 평범한 도시 오랑에서 일어났다. 1940년대 4월 16일 아침 이 소설의 서술자이며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진료실에서 나오다가 죽은 쥐 한 마리를 밟는다. 불길한 징조다. 그날 저녁에는 집으로 올라가는 아파트 복도의 어두운 구석에서 큰 쥐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 비틀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틀이 지난 18일부터는 죽은 쥐 수백 마리가 쏟아져 나왔고, 25일에는 6231마리, 28일에는 약 8천 마리가 수거되었다고 보도되자 시민들의 불안은 절정에 달한다.

‘페스트’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의사 리외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정할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무례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집을 부린 끝에 도청에서 보건위원회를 소집시키고, 그 자리에서 리외는 ‘페스트’라고 부르든 아니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시민의 절반이 전염병으로부터 사망하는 것을 막아내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사태를 비관적으로 보는 것을 애써 피했다. 시 당국은 두려움에 현실을 외면했고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사망자 수가 수십 명으로 갑자기 늘어나자, 도지사는 도시 폐쇄를 선언한다. 이제 시민들은 모두가 ‘독 안에 든 쥐’로 감금상태인 죄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민들의 첫 반응은 선제적이지 못한 행정당국을 비난하는 것이다.

사망자가 시간에 따라 급격히 발생한다는 보도가 있자 시민들은 불안했지만 애써 일시적이라 생각했다. 보행자 수가 현저히 줄었다. 전염병 예방에 술이 효과적이라는 뜬소문도 돌았고, 예방 삼는다고 약국의 박하사탕이 동이 났다. 환자는 강제 입원되고 가족은 강제 격리된다. 무겁게 쌓여가는 백여 구의 시체가 위협적 의미로 다가왔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까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술꾼들 외에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술꾼들은 지나치게 웃는다.”

이 재앙은 공동의 문제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 유형은 이 도시에서 벗어나려는 도피형이다. 기자 랑베르는 아랍인 생활환경 조사차 우연히 의사 리외를 방문했다. 도시의 재앙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파리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고 불법거래를 해서라도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한다. 개인적인 행복 찾기이다.

두 번째 유형은 신부 파늘루처럼 전능하신 신에 맡기는 초월적 태도다. 미사 시간에 열렬한 어조로 “여러분은 당연히 불행을 겪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재앙은 인간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며 인간을 각성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강론한다. 전통적인 기독교적 입장이다. 그는 나중에 페스트 같기도 아닐 수도 있는 알지 못하는 질병에 걸렸으나 끝내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고 신에게 자신을 맡긴 채 숨을 거두었다.
  
세 번째 유형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해 이 역병에 맞서 싸우는 반항하는 태도이다. 주인공인 의사 리외는 원칙적이며 정의라면 고집스럽게 자기 임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체념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신에게 기대지도 않는다. 만약 전지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병을 고치는 일은 신에게 맡겨 버려야 하지만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는 사람이 없기에 전능한 신을 믿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창조된 세계를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이 진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자원봉사자 타루도 봉사조직 보건대를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리외를 돕는다. 어린 시절 타루의 아버지는 검사였다. 공판정에서 아버지가 중대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광경을 보고 크게 절망하여 가출을 한다.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을, 또는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타루는 페스트가 끝나갈 무렵, 페스트에 걸려 죽는다. 신을 믿지 않아도 성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범죄자 코타르는 페스트를 인격화한 인물이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배급물자 암거래나 담배나 값싼 술을 구해 되파는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경찰에 쫓기는 신세여서 페스트 안에서 사는 것이 더 편리하다. 역병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되는 추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페스트가 퇴각의 기미를 보이자 불안해한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봉사자 타루는 그를 평한다.
“어린아이들과 인간들을 죽게 하는 것에 마음속으로 동의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봉쇄 상태로 몇 달이 지나자 시민들은 탈진 상태다. 멍한 모습으로 외부 사건이나 타인의 정서에 무관심하다. 점차 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기적을 낳게 한다는 성 로크의 메달이라든가 부적 같은 것에 관심이 많고, 성인들이 쓴 예언서나 야사(野史)의 예언에 의존한다. 의사 리외는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이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스트에 감염된 고립된 이 도시에 외부로부터 후원과 격려가 답지한다. 리외는 자정에 깊은 침묵 속에서 잠시라도 눈을 붙여볼까 자리에 누우면서 라디오 스위치를 돌렸다. 세계의 저 끝에서 ‘오랑! 오랑!’ 하는 응원소리를 듣는다.
“함께 사랑하거나 함께 죽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어. 그런데 그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단 말이야.”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고통을 나눌 수 없다.

기자 랑베르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은 ‘사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 죽는 것’이라 했다. 그는 리외에게 당신이 하는 일이 ‘영웅놀이’가 아니냐며 비난조로 말하자, 리외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은 영웅주의나 신성함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것이라며 전염병에 대처하는 자신의 자세를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영웅주의와는 상관없다. 이건 성실성(誠實性)의 문제다.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다. 내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다.”

리외는 오히려 늙은 그랑을 ‘영웅’이라고 말한다. 가족도 없이 낮에는 시청의 비정규직에서 일하면서 밤에 리외를 도와 일을 하고, 집에 가서는 글을 쓰면서 자기만의 일을 몰두한다. 그는 보잘것없고 눈에 띄지도 않으며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언뜻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이상 밖에 가진 것이 없지만, 해야 할 일만은 성실하게 해내려고 노력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페스트 와 같은 공동체의 문제에 아무 일도 않는다.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

카뮈는 페스트를 전염병으로만 뜻하는 것으로 생각했을까?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인간이 저지르는 온갖 부조리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카뮈는 범죄자 코타르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크던 작던 사회에 해를 줄 수 있는 페스트와 같은 질병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각자가 그것을 어떻게 통제할 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비록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거나,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 모두가 피곤하고 힘들지만 방심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긴장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관리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신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될  의지 말이에요. 훌륭한 사람들, 전염시키지 않은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은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페스트’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카뮈는 ‘페스트’를 통하여 비록 페스트가 닥쳐오더라도 떳떳한 죽음을 맞이하고, 인간을 어려움에서 구하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때로는 약간의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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