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창업 실패가 나를 여물게 했다
[창업] 창업 실패가 나를 여물게 했다
모임검색사이트 ‘온오프믹스’
  • 굿모닝충청
  • 승인 2015.01.0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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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꿈은 30대에 세계적인 회사를 차리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적어도 20대엔 국내적(?) 회사를 차려야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고, 안 망해보고서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계획에는 ‘망해서 재기할 수 있는 기간’이 포함돼 있었다.

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 “성공의 달콤함도 중요하지만 실패의 쓰라린 경험도 많은 교훈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살아온 인생보다 남은 인생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던 같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일찍부터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지금 정착하고 있는 온오프믹스는 양 대표가 만든 회사가 아니다. 2007년 김대중·조재호 씨가 창업한 회사를 2008년 4월 양 대표가 인수했다.

모임 플랫폼의 모임검색사이트와 인연
양 대표는 “재미삶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데이트 컨설팅이라는 사업을 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야했고 그래서 온오프믹스를 많이 이용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서비스가 이상해졌다. 수소문 해보니 창업자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게 됐다. ‘이걸 내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인수를 했다”고 설명했다.

모임 플랫폼의 모임검색사이트인 온오프믹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와 유익한 모임 등을 간편하게 확인하고 참여 및 홍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양 대표 자신이 서비스를 이용했으니 비즈니스 모델은 매력이 있었다.

여기에 양 대표가 지난기간 동안 경험한 사업 노하우를 접목시키면 도약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인수 후 회사는 급격한 성장세를 실현해 35만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한 국내 최대 규모의 모임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까지 약 3만여 개가 넘는 국내외 크고 작은 행사와 콘서트, 세미나 및 컨퍼런스 등의 참가자 모집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모임 참여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다양한 모임 정보를 제공하는 대표 모임검색사이트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월 1300~1500건인 이벤트 유치 건수를 올해 안에 2배로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온오프믹스’ 양준철 대표

16세 첫 창업 후 총 3번 창업 7번 취업 
수치상으로 볼 때 현재까지 양 대표는 성공의 길을 가고 있다. 물론 성공을 위해 들인 노력은 엄청났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6세 때 처음으로 회사를 차린 후 총 3번의 창업과 7번의 취업으로 10대, 20대 시기를 보냈다. 그가 계획한 대로 실제로 사업이 망하기도 했다.

양 대표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이 한 순간에 무너져 가세가 많이 기울어졌다. 사업의 꿈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EBS에서 실리콘밸리 창업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는데, 스티브 잡스도 어렸을 때 저처럼 불우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기서 희망을 갖고 과감히 도전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서울에 살던 그가 평택에 소재한 청담정보통신고등학교로 진학한 것도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단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고민하다가 특목고에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때 창업하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유일하게 연락을 준 학교가 청담정보통신고였던 것.

“교장 선생님이 뭐가 필요하냐고 물으시기에 ‘일단 학교에 사무실 하나 내 주고 PC와 인터넷을 지원해 달라. 더 필요한 것은 나중에 요청하면 들어 달라’고 했다. 바로 입학허가가 났다.”

이렇게 해서 2001년 창업한 첫 회사가 바로 ‘이비즈키(e-biz Key)’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다. 고등학생 창업가라며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되면서 후원자도 나타났고, 고양시에서는 사무실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사업이 순조롭게 이뤄진 덕분에 매출이 빠르게 늘었고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창업의 실패에서 배운 교훈들
하지만 회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본질의 어려움보다 견디기 어려운, 사업가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허상들 때문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영악한 여자가 끼어드는 등 사업 외적인 잡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함께 창업한 파트너들과 내분이 생겼다.

창업은 했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데 관리 역량을 미처 갖추지 못한 탓이다. 한번 흔들린 조직은 쉽게 무너졌고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고등학생이었지만 기업가가 막 나갈 때 어떤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고, 대표가 행실을 잘못했을 때 직원들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기업가이기에 앞서 인간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양 대표는 스스로 내면의 성장을 하기 전까지 사업을 하지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고 3때인 2003년에 두 번째 창업을 하게 됐다. 회사 이름은 ‘SR Ent’였다.

“23세 벤처기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사람이 3차원(3D)으로 모델에 옷을 입혀보는 3D쇼핑몰 사업을 같이 해보자며, 나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매력적으로 보여 함께 하기로 했죠. 정부 지원금도 10억 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사람이 달라졌어요.

회사를 위해 활용해야 할 지원금으로 포르쉐 자동차를 사고 개인재산을 늘리는 데 유용했고, 룸살롱을 다니며 연예인과 접촉하는데 써버렸습니다. 급기야 조직폭력배와도 연루됐어요. 네트워크마케팅에 연루돼 법의 심판도 받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를 비롯한 직원들은 월급도 못 받고 오히려 갖고 있던 돈, 빌려서 얻은 돈까지 투입해 사업을 꾸려갔지만 회사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남은 것은 2000만 원의 빚뿐이었죠.”

원대한 희망을 안고 시작한 두 번의 시도는 깊은 상처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안타까운 심정을 블로그에 글로 올리며 울분을 삭히고 있을 때, 주변인의 조언으로 2004년부터 직장을 다니게 됐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나무커뮤니케이션, 네오위즈 등 7곳의 IT업체를 다니며 일을 배웠는데, 부족했던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다시 사업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러던 중 역시 고등학교 창업가였던 이상규 부사장을 다시 만났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한 이 부사장과는 뜻이 잘 통했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 하며 다시 사업가로 나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그렇게 해서 온오프믹스를 인수했고 지금도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물질을 지향해서는 안 되는 창업자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양 대표는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단다. 그는 “창업자는 물질적인 것에만 집중하면 바보가 된다. 힘들고 어렵고 부딪치고 깨지면서 자신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창업은 단순히 돈이 목적이 아니다. 자신의 열정으로 스스로의 삶을 리드해 나가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정부의 보조금은 ‘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업에 대한 준비도 돼 있지 않으면서 말 잘하고 학력만 믿고 종이 껍데기 같은 회사를 차린 다음에 정부로 지원금만을 바라보며 사업을 하면 당장은 배도 부르고 인기인이 될 수 있지만 그건 한 때일 뿐이다”라는 그는, “고등학교 시절 같이 창업했던 분들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분들은 극히 드물다. 대기업에 들어간 이는 그나마 다행이다. 교도소에 가신 분, 한국을 떠난 분,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양 대표는 “인생이 로그아웃 될 때까지 사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 창업을 해야 하며, 그 사업을 멈추는 때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점이 될 수 있게 사업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창업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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