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0.06.02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인과바다
노인과바다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며 작품이다. 그러나 제목과 작가는 알아도 끝까지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1952년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인 《노인과 바다》로 플리쳐상과 노벨문학상을 탔고 말년에 불안과 우울증을 앓다가 엽총을 입에 물고 자살한다.

작가의 경험은 곧 작품이다.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 스페인과 터키 내전에 참가한 경험과 느낌을 소재로 하여 작품을 썼다. 일생 동안 헤밍웨이가 추구했던 주제는 ‘극기주의’, 극단적 상황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내 존재가 가장 절실하고 중요하다는 실존주의이다.

헤밍웨이는 쿠바혁명 이후 미국으로 추방되기 전까지 20년간 쿠바에서 생활했다. 나는 20년 전쯤 쿠바를 여행 했을때 이곳저곳 낚시를 즐기면서 모히토를 마시고 글을 썼던 헤밍웨이의 흔적을 만났다. 그는 낚시하는 방법과 바다 생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이 직접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는 느낌을 갖는다.

《노인과 바다》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어떤 물고기인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았지만, 청새치로 추측되는 거대한 물고기를 낚기 위하여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끝에 잡어 가지고 오다가 결국 상어에게 빼앗기고 마는 여든다섯의 백발의 늙은 어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인의 이름은 산티아고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 없는 간결하고 묵직한 문체로 쓴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 하는 노인이 있다. 그 노인은 오늘까지 벌써 84일째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도 한때는 존경받는 어부였다. 많은 부모들은 이 어부에게 훌륭한 어부로 키워달라고 자식들을 맡겼다. 노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년 마놀린은 다섯 살부터 노인에게 고기 잡는 법을 배웠다. 

소년은 노인에게 더없는 인생의 반려자다. 노인이 거의 날마다 빈 배로 돌아오는 모습은 소년을 슬프게 한다. 노인의 운이 다 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지시로 그 노인에게서 떠난다. 

그럼에도 소년은 바다낚시를 나가는 데 필요한 이것저것을 도와주고 진심으로 위로한다.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낡고 늙어 보이지만 낙천적이고 패배를 거부하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가졌다. 그 힘은 나 자신이라는 단단한 바위이다.

노인은 85일째되는 거대한 고기가 잡히는 9월의 이른 새벽 소년의 전송을 받으며 소년이 준비해 준 정어리와 미끼, 물 한 통을 겨우 챙겨가지고 시원한 냄새가 풍겨오는 바다를 향해 혼자서 노를 저어갔다. 

그는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를 닮았다. 노인은 바다를 ‘라 마르’라고 생각했다. 이 말은 바다를 사랑할 때 쓰는 스페인 말로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은혜를 베풀거나, 빼앗아가기도 하는 존재로 여겼다. 만약 바다가 거칠고 사악한 짓을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노인은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거나 동일체라고 생각하고,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노인과 바다》에서 자연인 노인은 하늘, 새, 뭉게구름, 산들바람, 거북이, 돌고래, 물고기를 형제로 인식하고, 물고기와 새와 별과 대화한다.

“단지 지금껏 운이 없었을 뿐이야. 앞날을 누가 알아? 어쩌면 오늘은 운이 좋을지 몰라. 매일매일은 새로운 날이니까. 행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먼저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해. 그래야 행운이 찾아올 때 그걸 잡을 수 있지.” 

노인은 누구보다도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우고 어두운 물속 어떤 깊이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 미끼가 놓여있어 그곳을 오가는 고기가 바로 그 미끼를 먹을 수 있도록 해놓고 기다린다. 

망망대해에 나온 지 첫째 정오 무렵 마침내 노인의 배보다 큰 18피트나 되는, 대충 어림잡으면 700Kg나 되는 대어를 낚는데 성공한다. 노인으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다. 어쩌면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목표이면서 큰 고난이다.

고독은 인간의 영혼을 단단하게 맨다. 이제 늙은 어부의 생과 사를 건 싸움이 시작된다. 그의 조각배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난 저놈을 꼭 죽이고 말 테야. 아무리 크고 아무리 멋진 놈이라도 말이지.” (......) “하지만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참고 견뎌낼 수 있는지 보여 줘야겠어.”  

인간은 혼자만으로 살 수 없다. 그는 힘들 때마다 “소년이 있었다면 좋았을걸......” 하고 떠올리며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려고 여러 상념에 잠긴다. 아프리카 황금해안에서 젊었을 때 본 사자들과 젊은 시절 카사블랑카에서 항구 제일의 흑인 장사와 팔씨름하여 이겼던 기억과 다리 부상의 고통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양키즈 팀의 야구선수 디마지오를 생각한다. 

거대한 고기는 자신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매 순간, 노인은 기절할 것 같은 죽을 위기를 넘기고,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견디고, 사흘 낮밤을 사투 끝에 뱃전에 큰 고기를 매단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영광은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고기를 밧줄로 뱃전에 묶고 항구로 돌아오던 중에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공격해온다. 

두번 째 사투가 시작된다. 노인은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자기 고기를 상어에게 뜯길 때 자신이 물어 뜯기는 것 같았다. 

처절한 싸움 끝에 새벽 무렵 항구에 도착한다. 노인의 작은 배에 머리와 뼈만 남은 물고기가 매달려 있다. “사람은 파멸당 할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아.” 여기서 파멸은 물질적인 것이고 패배는 정신적일 게다. 노인은 자신과 함께 배를 타겠다는 말로 소년으로부터 존경과 감탄을 받지만, 그 거대한 물고기는 가질 것이 없었다. 상처뿐인 영광으로 보인다. 고기에게 미안했다. 고기를 죽인 것이 마음이 무거웠지만 살기 위하여, 팔기 위하여 죽인 것은 아니라고 애써 생각했다. 어부라는 직업의 자부심이다. 

소년은 노인이 고기 잡으러 갔어도 매일같이 들렸던 언덕길 위쪽의 오두막집에서 노인의 상처투성이 손을 보고 울었다. 노인은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고, 여전히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인간만이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책을 덮으면서 어느 무덤 앞에 서 있는 비문에서 “인생은 울고 웃는 것이다”라고 쓰여있는 것을 기억한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노인과 바다》에서 인생을 생각한다. 드넓은 바다는 인생이다. 고기는 삶의 목적이다. 인생의 길은 순탄하지 않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왔지만 손에 쥐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원망하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용기도, 고통을 참는 극기도 필요하다. 시련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덤덤할 수 있는 모습이 인간의 진정한 가치이고 존엄성이다. 

이번 여름휴가 때 어느 작은 항구에서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고 싶다. 헤밍웨이의 소설은 많은 몫을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 놓았다. 읽을수록 우리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여운이 긴 소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