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영의 '파리팡세'》 융복합시대의 현대미술 (Contemporary Arts in the age of Interdisciplinary integration and Convergence)
《정택영의 '파리팡세'》 융복합시대의 현대미술 (Contemporary Arts in the age of Interdisciplinary integration and Convergence)
◆ 화투 소재는 팝아트인가? - 조영남의 '화투' 대작 대법원 판결에 즈음하여
- '대작(代作)'은 미술에 관행이었는가?
- 작품 진위의 시비는 왜 생기는가?
- 화투그림 대작이 문제로 대두된 발단은 무엇인가?
- 화투그림 대작에 대한 사법기관의 무죄 선고 과정은 어떠한가?
– 최종 무죄판결 이후 화수 작가와 한국미술계
"이미 다른 분야에서 얻은 인기를 통해 유명세로 미술판에서 급부상한다든가, 대가들의 명성을 사수하기 위해 힘있는 소수의 대가들이 힘없는 수많은 화가들의 삶을 파괴하고 궁지에 몰아넣는 불공정한 힘의 행사는 삼가야"
  • 정문영 기자
  • 승인 2020.06.30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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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영의 '파리팡세'》 융복합시대의 현대미술
(Contemporary Arts in the age of Interdisciplinary integration and Convergence)

그림=정택영(프랑스 파리 거주 화가 / 전 홍익대 미대 교수)/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디지털 新 천지창조(Digital New The Creation of Adam)-미켈란젤로 작 패러디(Parody of Michelangelo). 그림=정택영 화백 제공(프랑스 파리 거주 화가/전 홍익대 미대 교수)/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금세기에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19' 사태는 지금까지 세계화를 지향하고 소통의 시대라며 인맥을 중시해오던 지구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초유의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세계화로 치닫던 동력을 멈춘 채,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해 국가간 이해관계가 첨예해가고 있는 이 때에 사회 전반뿐만 아니라 미술계에도 국공립 미술관들이 문을 닫는 등 전시장 기능을 상실, 미술계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이 더 가중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술작품의 대작에 대한 법적 판결로 미술계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황의 늪에 깊이 빠져있는 듯하다.

필자는 15년 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한국의 현 상황을 관망하고, 40여 년 활동을 하며 이 분야에 몸담고 살아온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 현 상황에 대한 시각과 소회, 앞으로의 비전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1.현대미술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미란 혁신적인 것이거나 혹은 아름답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초현실주의(Surrealism)' 선언을 했던 프랑스의 시인이자 미술 이론가 앙드레 브르통은 말했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문명과 문화를 형성하는 배경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과 철학의 이론과 논리를 기초로 형성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브르통의 선언을 필두로 '모더니즘(Modernism)'이라 불리는 20세기 미술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과격하리만큼 혁신적인 미술 양식으로 여러 유파가 생기면서 미술양식이 급속하게 변모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항구적으로 지켜온 하나의 주제는 미술이란 외부의 가시적 현실보다는 내부의 감성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체파(Cubism)에서 보듯이 전통적인 회화규칙에서 형태를 해방시키고 야수주의(Fauvism)는 대상을 정확히 묘사해야 한다는 규칙에서 색채를 해방시켰다.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미래파 등 모더니즘은 파리를 중심으로 발생한 유파들이 절대 우위를 점했지만 1950년 이후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추상표현주의가 미술의 중심을 파리로부터 이동시켰다. 모더니즘이 실존철학과 일원론에 그 뿌리를 두었다면 현대미술은 다원주의에 뿌리를 두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해 발전한 결과 대중들은 현대미술이 난해하다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현대미술은 미셸 푸코의 脫구조주의,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나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리오타르의 숭고와 아방가르드,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등 현대 철학자들의 이론적 주장을 바탕으로 해체주의 철학 영향으로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함으로써 이종교배(하이브리드)와 키치, 테크놀러지와의 융합 등 해독불가한 기상천외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대중들은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와 난해함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이 '기성품(Ready-made)'인 변기를 전시함으로써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전통 예술을 단지 망막이나 자극하는 예술이라며, 진정한 예술은 뇌를 사용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도발적 미학의 주장으로 후에 '뒤샹식 유명론(Nominalism)'으로 개념예술 등에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현대미술은 ‘아이디어가 중시된다’는 말은 뒤샹의 레디메이드의 변기에서, 대작(代作)은 앤디 워홀과 그 조수들에 의한 복제미술 등에 의해 정당화 되기에 이른다.

2. 팝아트는 무엇인가?

팝아트는 'Popular'의 약자로 본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이어 팝아트가 등장할 즈음, 즉 미국사회가 전후 빈곤이 회복되고 전쟁물자를 생산하던 산업동력이 대량생산과 이를 소비할 대중소비의 시대로 전환과 매체의 발달로 광고가 대중화되면서 대중문화가 이전의 고급문화를 대체한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팝아트는 개방과 비개성으로 집약되어 이미지의 대중화, 형상의 복제, 표현기법의 보편화 등에 의해 예술을 개인적인 것에서 대중적인 것으로 개방시킨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광고, 상표, 만화, 영화 등의 대중적 이미지를 재현해 차용하는데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마우스, 세븐업, 코카콜라, 바나나, 여인의 하이힐, 켐벨스프 캔, 등 일상화된 모든 모티브들을 활용한다. 이는 추상표현주의에 반작용 또는 확장으로 등장했다는 견해도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이나 도전보다는 대중문화를 그림의 소재이자 정보로서 이용하는 중립적 입장에 있으며, 간결하고 명확하게 평면화된 색면과 원색을 사용하기도 했고 에로티시즘의 표현-도구화된 성과 상업화된 성을 표현하였다. 그야말로 대중들이 쉽게 알고 접근할 수 있는 대중이미지를 차용한 것이었고, 복제기술을 통한 다량생산으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3. 화투 소재는 팝아트인가?

화투는 한국이 원산지도 아니고 고유의 대중놀이 도구가 아니라 일본 것이다. 16세기 말쯤에 포르투갈에서 일본에 들어와, 일본화 되면서 18세기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화투가 등장했다고 한다. 비광에 그려져 있는 인물은 小野道風(오노노토오후우)라고 하는 10세기의 書家(서가)이다.

화투는 16세기 말 포르투갈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일본과 포르투칼이 교역이 성행하면서 화투형식의 놀이가 일본에 들어와, 일본화 되면서 18세기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화투가 등장했다고 하며 일본어로 '청단'을 '아오탕(あおたん,靑短)'그리고 '홍단'을 '아카탕(あかたん,赤短)'이라 발음을 하는데, 이중 뒷글자인 '탕(たん,短)'을 세게 발음되어 두 장의 화투가 같을 때를 말하는 '땡'으로 변했다고 한다(도리집고 땡). 다섯 개의 광(光)은 1, 3, 8, 11, 12월로 이는 모두 일본의 대표적인 명절이 들어있는 달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화투는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지우기 위해 전국에 화투놀이를 장려하고 술잔돌리기를 유행시켜 미래를 잃어버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화투는 일본이 원산지이며 일본적인 이미지이다. 분명한 것은 화투가 놀이의 도구이며 이 판이 커지면 도박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디지털 게임이 만연한 지금 화투놀이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팝아트 작가들이 미국적인 이미지인 코카콜라나 마릴린 먼로, 스프캔을 차용한 것과 같은 컨셉으로 화투가 마치 한국의 대중이미지의 표상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며, 더욱이 법이 화투 대작 그림을 무죄로 판결하면서 마치 화투놀이를 홍보 또는 장려하는 듯한 인상 또는 화투놀이와 화투 도박의 합법성을 조장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 '대작(代作)'은 미술에 관행이었는가?

대작(代作)이란 말은 '대리제작(代理製作)'의 준말로 주로 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대리제작 문제는 아이디어를 가진 자와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작하는 자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미술이나 사진 같은 시각예술 분야는 모호하나, 현대미술로 오면서부터는 대체로 아이디어는 반드시 작가가 구상해야 하고 제작은 타인에게 맡겨도 된다고 여기는 추세다.

그간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일반적으로 '예술가의 붓질 하나하나에는 혼이 담겨 있으므로 반드시 작가 본인이 자신의 손으로 그려야 한다’고 여겨오던 것이, 이번 대작사건의 무죄 판결로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미학 스캔들’이란 용어를 써서 세간에 알려진 미학자 주장처럼, 미켈란젤로나 루벤스 같은 이전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데미안 허스트 같은 현대예술가들도 다 조수들 고용해서 작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경우는 컨셉 자체가 대량생산이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색채》 연작을 하면서 조수와 함께 작업했고, 제프 쿤스는 풍선개를 알루미늄 조각으로 만들어 유명해진 작가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업이 외주 작업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100명이 넘는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출신의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카이카이 키키’라는 회사를 차려 팀 작업을 한다. 이처럼 세계 미술계에서는 대리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온 데 반해, 한국에서 대작이 논란을 빚은 것은 예술의 고유의 독자성과 순수함이라는 고유한 감성에 대한 믿음과 환상이 깨지는 것에서 그 충격을 더 안겨준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몇 년 전 필자가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렸던 앙포르멜 추상의 대가 피에르 슐라쥬(Pierre Soulages)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전체가 온통 검정색 속에 묻혀 있는 듯할 정도로 검정색 화면을 이루었지만, 빗살무늬 형의 스퀴즈로 그은 화면의 표면에서는 각각의 방향에 따라 외부에서 유입된 빛이 반사되면서 결 사이에서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회화에 매체를 통한 대조와 요소의 단순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시각적 강렬함으로 인하여, 마치 공간의 분할이 질서와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한 착시현상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1919년생으로 100세를 맞은 고령인데도 대형 작품을 조수들이 제작한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프랑스 파리의 많은 작가들은 시나 구청에서 제공하는 공동작업실을 쓰는데 정기적으로 오픈 스튜디오를 열어 화실을 완전 개방함으로써, 그들의 작품과정과 작업현장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조수나 대작 작가를 고용해 작업하는 작가를 본 일은 없었다.

- 작품 진위의 시비는 왜 생기는가?

1950년대 여류화가 막가렛 킨(Margaret Keane)의 실화를 바탕으로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 '빅아이즈'. 이 영화는 자기 부인의 그림을 마치 자기 그림처럼 팔다가 남편의 과욕으로 부인인 작가의 양심을 자극해서, 자신의 그림임을 선언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법정 다툼을 벌이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 마가렛 킨(Margaret D.H. Keane, 원명: Peggy Doris Hawkins, 1927~)은 그의 이름보다 그가 그린 작품의 캐릭터로 더 알려져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에 걸린 듯 깡마르고 눈만 둥그렇게 '큰 빅 아이즈(Big Eyed Waifs)'로 더 유명한 화가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도 미술작품의 진위문제와 친작가를 다룬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1995년 뉴욕 대법원은 '콜레트의 옆모습'이라는 그림이 정작 작가는 자신이 그리지 않은 가짜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프랑스의 유명화가 발튀스의 진품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발튀스 자신의 검정을 거친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 도록에 이 그림이 포함된 게 결정적 증거였다. 작가들이 스스로 작품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작품의 금전적 가치에 집착하는 미술품 컬렉터를 조롱하고자 할 때 자기 작품임을 인정하지 않은 사례들이 있었다. 피카소는 사인 되지 않은 자신의 그림을 소유자가 들고 와서 서명을 부탁하자 피카소는 자신이 그린 그림임을 알아봤으면서도 '나도 남들처럼 피카소 가짜를 그릴 수 있다'며 사인을 거부한 일도 있다는 기록도 있다. 미술품에 대한 진위 논란은 어느 국가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작가와 고객 사이에서 빚어지는 이해관계와 돈벌이를 노리는 위작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 화투그림 대작이 문제로 대두된 발단은 무엇인가?

이 화수(畫手) 작가의 작품 대작사건은 사법당국의 수사로 드러난 인지사건이 아니라 “한 무명작가가 화수의 그림을 대신 그렸다"며 '제보'를 함으로써 수면 위로 떠오른 제보사건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지난 2016년 뉴욕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화가에게 일종의 '하청(그 후 대작이라 통칭함)'을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한 다음, 해당 그림을 약간 덧칠한 뒤 자신이 직접 그린 것처럼 피해자들에게 판매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건이다. 이를 통해 17명에게 21점을 팔아 1억 8000여 만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파악됐다는 내용의 기소로 시작되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 건은 최종판결이 난 지금까지 4년여를 끌어오면서 한국민 모두와 미술계 전체를 상대로 미학전공자인 한 교수가 마치 현대미술에 대한 대표적 학자인양 정의를 내리며 명명했던 ‘미학 스캔들’이라든가, 대작에 대한 해외 사례연구 등 현대미술사의 흐름과 특징을 예증으로 방만한 현대미술 개념을 들먹이며 마치 '한국의 미술인들 관념이 과거에' 머물러 20세기 이전의 구시대 미학 지식에서 정지해 있는 듯한 지적 폄하와 무지에 대해 질타하며 일갈한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이 건은 한 나라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대작의 범법행위 또는 사기혐의에 관련한 법적 문제가 아닌, 대리로 그림을 그려준 화가의 고발에 의해 드러난 사건이었으므로 당사자들인 양자간에 불거진 처우에 대한 불만으로 야기된 것이지, 한국화단 전체가 마치 대작을 관행처럼 해오고 있다는 전제를 깐 듯한 수사와 사법적 판단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져온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었는지 돌이켜보게 되는 것이다.

- 화투그림 대작에 대한 사법기관의 무죄 선고 과정은 어떠한가?

● 2016년 6월 최초 대작사건의 중심에 섰던 화수(畫手) 작가는 "소란 일으키고 미술계에 누 끼쳐 죄송하다"
● 2017년 10월 법원은 “화수의 그림대작, 통용되는 방식 아니다”며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유죄 인정
●2020년 6월 ‘화수 작가의 그림 대작’이 무죄 확정

2020년 6월 ‘화수 작가의 그림 대작’이 무죄 확정으로 최종 판결이 선고되었다. 재판부는 “대작해준 화가는 화수 작가의 창작활동을 돕는데 그치는 조수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봤고, 또 일부 피해자들은 화수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점을 들어 사기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에서 “작품의 주요 콘셉트와 소재는 화수 작가가 결정했고, 대리제작 화가는 의뢰에 따라 대작 의뢰자의 기존 작품을 그대로 그렸다”며 “보조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하는 이상, 그 방식이 적합한지의 여부나 미술계의 관행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법률적 판단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위 법정 공방 과정을 보면, 수사기관은 대리작품은 '유죄'라고 보는 반면 그간 무수한 미학, 미술사 전문가들 조언에 따른 법조계 판단의 혼선을 겪으면서 결국 대작은 사기행위가 아니라 보편적인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확정 지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사법당국이나 법조계는 미술이라는 전문분야에 많은 혼선이 빚어져 유.무죄 결판이 좌지우지 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최종 변론에서 미술계를 대표해 참관인 자격으로 선 한 화가가 미술계 카르텔을 강조하는 말에 대법관은 "반드시 권위적인 제도권 안에 들어와야만 프로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림을 독학해서 성공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미술계 대표는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 한다.

이로써 좀 더 철저한 준비와 지식을 겸비한 미술인들이 많이 있어야 했고, 그들이 이 최종 변론에 들어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법당국과 법조계의 해석에 의해 미술 창작 과정에서 있어온 대작에 대한 법적 해석을 맡긴 꼴이 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미술계 전문가들과 미술대 교수들은 일언반구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5천 만 국민은 각각 직업에 따라 조합을 결성하고 그 단체에 불이익이 발생하면 이마에 붉은 두건을 두르고 대규모 시위를 함으로써,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이 다반사이고 당연한 추세였는데 유독 미술인들과 그 단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미술인 단체가 권익을 찾기 위해 대규모 시위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이유다. 이는 여러 숨은 이유가 있겠지만 미술인 특유의 개성과 개인주의, 창작활동 이외에 여타 사회적 현상에 무디거나 수수방관하는 속성과 타성이 그런 무대응 현상을 보이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항간에 회자되는 전언에 의하면 생각 외로 대작을 의뢰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도 그 한 이유가 되는 듯하다.

4. 맺는말

– 최종 무죄판결 이후 화수 작가와 한국미술계

한국미술사에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된 미술작품 대작사건의 중심에 서있던 이 화수(畫手)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아방가르드라 불려도 그리 큰 오류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화수란 직칭도 그가 최초로 만든 조어이고, 전 국민을 향해 ‘대작이 관행’이란 현대미술의 속성을 알린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대작행위가 위법으로 판명이 났다가 법정공방을 통해 ‘대작은 무죄’란 최종 판결을 받아낸 사례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 내용이 화투 이미지의 재현 내지는 변용인데, 이를 두고 미국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과 대비시키는데는 무리가 뒤따른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앤디 워홀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엄청난 양의 드로잉을 해왔고,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정규 미술과정을 거쳐 졸업을 했으며, 그 후에도 무수한 드로잉 작품들과 실크스크린을 통한 다양한 팝 이미지들을 수없이 쏟아내 전 세계에 알려진 작가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감독이 되어 영화제작까지 했으며, 전 세계 유명 국공립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최종 판결에서 ‘공소사실 외에 대해선 법정에서 심판하지 않는다’는 ‘불고불리(不告不理) 원칙’을 적용했다 한다. 재판부는 “미술작품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지 않은 한,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저작권 등 법조문이 존재하는 영역이 아닌 작품의 가치 평가는 법원의 개입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보인다. 결국 형사법에 저촉되는 사안 외에는 법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대작에 대한 문제는 미술인들의 판단에 공이 던져진 것이다.

이 화수란 분은 평소 입담도 좋지만 유머를 섞어 뱉는 말들이 도발적이고 거칠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판결 이후 곧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 현대미술에 관한 조영남의 자포자기 100문100답’이란 제목의 새 책을 낸다고 한다.

그는 이미 2007년에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란 책을 출간한 바도 있고, 이번엔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모른다’는 판단에서 집필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고, "똥조차 훌륭한 예술이다”…’그림 별 것 아냐, 냅다 그리는 것’이 예술이다, 나는 트로트파(派)다. 미술에 얽매여야 할 규칙 같은 건 없다. 규칙과 연마가 중요한 음악과 달리, 미술은 거의 100% 자유다. 그게 미술의 매력이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아닌 거다. 미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다. 별 볼 일 없던 그림 그리는 가수한테 ‘너 그림 제대로 그려라’고 본격적인 사명감을 줬다. 대한민국 법이 나를 화가로 만들었다”고 인터뷰했던 내용이 소개되기도 했다.

말은 밷으면 주워담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다. ‘망할 현대미술’이라든가 ‘패가망신’이란 부정적이고 스스로 격을 깎는 말들은 굳이 써야 말이 되는가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말에는 힘이 있어 뱉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지금 '디지털 컨버전스(Ddigital Convergence)'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하루가 다르게 다른 학제간 융합이 되고 복합화되어 전혀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구현하는 시대가 되었고, 이러한 기술이 미술의 영역에도 적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2008년 ‘통섭’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서로 다른 학문과 장르간 융복합으로서의 ‘통섭’으로 예술 장르간, 예술-과학기술간 융합이 실현되고 있고, 한국은 6T - IT(정보통신), BT(생명공학), NT(나노공학), ET(환경공학), ST(우주항공), CT(문화콘텐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디지털 기술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렇듯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서 미술의 양식도 융복합을 통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불거진 대부분의 사건들은 반목과 불화, 그리고 시기심으로 시작된다’고 본다. 이제 한국 사회도 세계 정상의 모임인 G7에 초대될 만큼 격상된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시기와 반목의 시선으로 남을 폄하하고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한국에는 수많은 화가들이 있고 거기에 장애인화가들도 많다는 것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장애인 화가는 입으로 구필을, 어느 화가는 양팔이 잃어 발가락 사이에 붓을 끼고 작품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들이다. 그들 모두가 예술인들이고, 그들이 한국의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한 객체들이다. 이미 다른 분야에서 얻은 인기를 통해 유명세로 미술판에서 급부상한다든가, 대가들의 명성을 사수하기 위해 힘있는 소수의 대가들이 힘없는 수많은 화가들의 삶을 파괴하고 궁지에 몰아넣는 불공정한 힘의 행사는 삼가야 한다. 예술은 가진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힘의 대결장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과 목적을 저버리지 않고 서로 격려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하리라 믿는다.

로뎅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목적이라 했다.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이 임시방편이 아닌 자신의 생의 목표이자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림으로 승부를 걸지 않고 다른 일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을 화가라 칭할 수 있겠는가! 앞서 언급한 대로,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다. 피카소는 "Every child is an artist. The problem is how to remain an artist once we grow up(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도 예술가로 남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이런저런 모든 일을 접고 끝까지 작업을 하는 자가 곧 예술가란 뜻이다.

예술의 궁극은 대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루한 소망이고 예술을 비천하게 만들고 만다.

이 땅에 예술가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던져주고 있는가? 이것을 스스로 묻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택영(프랑스 파리 거주 화가 / 전 홍익대 미대 교수)
프랑스조형예술가협회 회원

www.takyoungj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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