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디지털 교도소는 영화 속에서만…
[노트북을 열며] 디지털 교도소는 영화 속에서만…
  • 최수지 기자
  • 승인 2020.09.28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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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교도소 페이지.(사진=캡쳐/굿모닝충청=최수지 기자)
굿모닝충청 최수지 기자

[굿모닝충청 최수지 기자] 인간이 인간을 벌한다. 주인공이 악역을 철저하게 응징하는 ‘정의구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쾌감을 준다. 결국 악당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진리(?)는 픽션에서 더욱 확고부동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정의구현’도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현실의 세계다. 악당을 응징한 주인공도 감옥살이를 면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보는 이의 몫이다.

21세기판 정의의 심판자가 나타났다. 디지털 교도소.

올해 6월 운영을 시작한 홈페이지는 강력범죄‧성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임의로 공개하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이 신상을 공개하기 시작한 건 N번방 사태에서 비롯됐다. 전대미문의 성 착취 범죄가 국민 분노로, 피의자 신상공개 요구로 이어졌고, 그렇게 디지털 교도소는 탄생했다.

신상공개 이유는 이렇다.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은 “악성 범죄자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악성 범죄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처벌이 솜방망이 격이라며, 직접 심판자로 나선 것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악랄한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 낮기 때문에 사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홈페이지에는 운영진이 범죄자로 지목한 이들의 휴대폰 번호 등 온갖 개인정보가 게재돼 있다.

디지털 교도소 내에서 가해지는 제재가, 심정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어떤 식이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되면, 되레 이들이 제재의 대상이 된다.

어떤 이들은 사법부 대신 정의 구현에 나섰다며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을 ‘영웅’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심정적 공감이다. 법적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신상공개?

현행법상 신상공개는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가능하다.

반면 디지털 교도소에서 지목한 범죄자에 대한 근거는 빈약하기만 하다. 신상을 수집한 경위도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지털 교도소에 갇혀 마녀사냥 재판대에 오른 사례를 우리는 이미 봤다.

이달 수도권 한 대학 의대 교수는 디지털 교도소에 성착취범으로 수감됐다가, 경찰 조사 끝에 혐의를 벗기도 했다. 디지털 교도소에 근거로 올라온 교수의 성 착취 동영상 구매 시도 정황이 담긴 텔레그램 대화 내용은 사실무근이었다.

이보다 앞서 무죄를 주장한 대학생은 신상공개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법의 판단에 앞서 단죄했다. 한 청년이 목숨을 걸고 주장한 무죄에도 자비가 없었다. 불확실한 사실 관계 속에서 내려진 제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디지털교도소가 말하는 공공의 이익은 픽션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명예살인’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정당한 이유 없이 누구나 사적으로 처벌하려 한다면, “법대로 하라”란 말은 필요 없어질 것이다.

나에게 해코지한 사람이 당장이라도 눈 앞에 있다면, 바로 심판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일부’로부터 얻은 심정적 공감이 곧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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