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첫사랑을 통한 성장의 과정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첫사랑을 통한 성장의 과정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1.02.17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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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나이다가 남겨준 키스의 감촉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환희의 전율로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해 냈다. 나는 그 뜻하지 않은 행복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보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더 이상 내 운명에 요구할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 깊은 한숨을 내쉬고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다는 마음뿐이었다.”

첫사랑
첫사랑

투르게네프(1818~1883)의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한 번 쯤 있는 사랑의 아픔의 표현입니다. 놓쳐 버려서 너무나 안타깝고, 그래서 더욱 되돌리고 싶은 아련한 첫사랑에 대한 향수, 이 순수한 사랑이 가끔 되살아 납니다.

투르게네프
투르게네프

작가 투르게네프의 유년시절의 추억에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 《첫사랑》은 1860년 발표 당시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투르게네프 자신도 “나는 한 작품만은 만족스럽게 되풀이해서 읽곤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첫사랑》입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인 투르게네프 《첫사랑》은 저자의 고백 형식인 1인칭 소설로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오직 사실만 그려져 있으며 다시 읽을 때마다 여러 인물들이 마치 살아 있는 인간처럼 느껴집니다.

귀족사회가 퇴색되어 가는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은 주인공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가 자신의 두 친구와 첫사랑에 대한 주제를 꺼내며 시작합니다. 《첫사랑》은 주인공이 16살 되던 1833년 여름 블라지미르의 별장 별채에 가난한 자세키나 공작부인과 그녀의 딸 지나이다가 세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지나이다
지나이다

블라지미르는 저녁때 총을 가지고 까마귀를 쫓다가 울타리 너머로 한 여자를 봅니다. 그녀 몸짓은 매혹적이면서 거만하고, 귀여우면서도 비웃는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데가 있어서 소리를 지를 정도입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쉬고 난 뒤,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차를 마시면서도 조금 전에 본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표현하기 어려운 달콤한 압박감으로 벅차올랐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온통 “그녀와 사귀어야 할 텐데”라고 머릿 속에 떠올렸습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그 여자의 집을 방문하여 그녀 어머니의 소개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자신이 스물한 살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없는 용기를 내서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어린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 될 수 있는 한 점잖은 태도로 말했습니다. 그녀는 낡고 허술한 옷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옷과 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날 밤 그리고  이튿날까지 까지 계속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지냈습니다. 책을 펴고 공부했지만 “줄리어스 시저는 호전적인 용기로 유명했다”라는 구절을 열 번이나 읽었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내동댕이 칠 정도였습니다.

우리 집에 초대받은 지나이다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갈 때 그녀는 오늘 밤, 8시에 집으로 오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막상 가보니 말레프스키 백작, 의사 루신, 시인 마이다노프, 예비역 대위 니르마치키, 경기병 베르보조로프······. 그들 모두을 실에 꿰어 발밑에 엎드리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무릎 아래 엎드려 사랑을 갈구하는 불쌍한 사랑의 포로였습니다.

“이것 봐요, 젊은이! 벌금 놀이하는데 공작 따님이 벌을 받게 되었단 말이오. 그래서 행운의 제비를 뽐은 사람이 아가씨의 손에 입을 맞출 특권을 갖는 거요.”

블라지미르는 벌칙에 걸려 실크 숄을 뒤집어쓰고 그녀에게 자기의 비밀을 말하려 했으나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이제 공부와 독서에서 손을 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산책과 말타기까지도 다 집어 치워버렸습니다. 다리를 묶인 딱정벌레처럼 보고 싶은 바깥 채 주위만 뱅글뱅글 돌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열정이 시작되면서 열병과 같은 고통도 함께 느꼈습니다. 지나이다는 여전히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나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롱에도 흥분하고 황홀해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가 갑자기 나를 내동댕이 치면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나이다보다는 공작 부인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공작부인는 금전문제와 여러 문제로 경찰서에 불려가는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지나이다는 몹시 괴로워하고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가 슬퍼하는 이유를 정말 몰랐습니다. 그녀는 시인 마이다노프의 지은 시 가운데 “아니면 몰래 사랑하는 이가 있어 그대를 놀라게 하고 정복 하였던가”를 읊었을 때 시선을 아래로 깔고 얼굴 붉히는 것을 보고 놀랐고, 온몸이 싸늘해졌습니다. 지나이다가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습니다.

진짜 고통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남자일까 저 남자일까 그녀의 숭배자를 하나하나 손꼽으며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해가 막 지고 있는 저녁 하늘에 떠있는 붉은 구름을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갈 때 타고 간 황금배의 진홍빛 돛 같아 보인다고 비유하였다. 그때 안토니우스는 마흔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어느 날 높은 담에 기어올라 불행하고 고독하고 우울한 청년의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것을 보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 아래로 뛰어내려 보라”고 말했고 순간 바로 뛰어내렸고, 한동안 충격으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부드러운 입술로 얼굴에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달콤한 아픔이 온몸에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맛본 행복은 내 평생 두 번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지나이다는 나의 단호한 정신과 영웅적인 행동을 높이 평가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나이다는 좀 가까이하려면 냉랭한 태도로 대했습니다. 그녀는 이제부터는 친구로 하자고, 시동(侍童)으로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자기가 아주머니 뻘이나 누나 정도는 될 것 아니냐면서 어린애처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말레프스키 백작은 이렇게 충고합니다. “밤에 정원의 분수 곁에서 경계를 살피시오. 시동은 여왕이 하는 일을 모조리 알아야 하고 거동을 살펴야 해요. 불행한 일에 대비하여 밤에도 자지 말고 온갖 정성을 다해 감시하여야 하오.” 

백작의 말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마음이 걸려 어느 날 밤에 주머니 속에 칼을 숨기고 정원에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까만 망토로 온몸을 감싸고 모자를 얼굴까지 깊숙이 내려쓰고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왜 한밤중에 정원을 거닐고 있었을까? 두려워서 가지고 있던 칼을 풀 위에 떨어뜨렸으나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순간에 정신이 든 기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인들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심하게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옆집에 사는 젊은 아가씨와 있었던 아버지의 부정을 책망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변명했던 아버지는 나중에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어머니의 나이를 들추며 잔인한 말을 해서 어머니를 울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0살이나 연상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대체 아버지에게 무엇을 바랐을까? 왜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랑이다. 그것이 바로 정열이며 헌신인 것이다.”

그런 소동이 있은 후, 우리는 시내로 이사 왔고,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의사 루신을 만났습니다. “기죽지 말라. 연정의 물결에 휩쓸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자기 두발로 서야 한다. 설령 파도가 치는 바위 위에 서 있다 할지라도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어느 날 아버지와 나는 말을 탔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멀리 와서 아버지는 강가에서 떨어진 어느 건물로 사라졌습니다. 안에서 까만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커튼에 반쯤 몸을 가리고 앉아서ᆢ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지나이다였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헌신과 슬픔, 사랑과 절망이 어려 있었습니다.

떠날 때 지나이다가 몸을 일으켜 팔을 벌렸습니다. 갑자기 아버지는 가지고 있던 말채찍으로 그녀의 팔을 내리쳤습니다. 지나이다는 몸을 한번 떨더니 말없이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입술에 대고는 빨갛게 달아오른 채찍 자국에 키스를 했습니다.

그날 밤 책과 노트가 펼쳐져 있는 책상 앞에 앉아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게 열정이다······. 매를 맞으면서도 참다니······. 더구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손으로 매를 맞고서도. 그래, 사랑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가 보다······.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두 달 후에 대학에 입학했고, 아버지는 6개월 후에 뇌졸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죽기 며칠 전 아버지는 모스크바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과 독을 두려워해라.”

첫사랑은 미숙하고 부끄럽고 풋풋함과 아픔의 경험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옛날로 돌아가 다시 고쳐서 사랑하고 싶지만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그 자체가 아름다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첫사랑의 경험을 통하여 한층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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