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누가 뭐래도 송창식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누가 뭐래도 송창식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4.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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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4월 중순 목련꽃 색깔은 침 흘린 자국이 진하게 배어있는 아기의 베갯잇을 닮았다. 상아색 꽃잎은 시들어가는 얼룩으로 초췌했다. 빨간 신호등은 목련꽃도 이제 그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신호로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오디오 버튼을 누르고 차창을 내렸다. 싱그러운 웃음을 흩날리는 젊은 연인이 길을 건너왔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 잠이 들면은 꿈속의 모습, 사월이 가면 떠나야 할 사람,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오.’

송창식의 투박한 기타 소리는 상심한 사랑이 담겨 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그의 노래 <4월이 가면>을 듣는다. 4월 시작부터 들어서 그런지 4월은 유난히 빨리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는 <봄날은 간다>를 최백호의 버전으로 번갈아 듣다 보면 봄날은 한철이다.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라는 대목에서 힘차게 따라 불렀다. 무정이라는 말에 감정을 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스스로 몰입도가 높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를 잡느라 2초 남짓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자, 길 중간쯤 건너다가 뒤를 돌아본 연인과 눈이 마주쳤다. 도서관보다는 헬스클럽을 열심히 다녔을 법한 청년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주위를 살펴보았다. 청년의 말에 대꾸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 지금 우리보고 사랑이 무정하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얼마나 다정한데...”

그제야 나의 발성이 지나치게 컸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스럽게 대꾸하는 사이 청년은 어느새 차 옆에 도착했다. 위압감을 주는 덩치와는 달리 얼굴은 20대 젊은이의 앳된 표정이 묻어나왔다. 왼손에는 검정색 프라다 파우치 백을 들고 있었다. 이대로 나이 오십이 된다면 일수가방을 든 아저씨로 늙어갈 모습이었다. 청년의 팔을 끼고 있는 여성의 가느다란 팔뚝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필기체 앞파벳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예전에 봤던 ‘착하게 살자’ 문신과는 격조가 다른 느낌이었다.

“도대체 무슨 노랜데 우리가 지나가는 시점에 사랑이 무정하다고 소리를 지른거죠?. 혹시 일부러 그런 거 아녜요?”

“아니,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송창식 노래가 그렇단 거죠.”

“가나다라마바사 어쩌구 하는 그 송창식요?”

“아, 송창식을 아네. 참 훌륭한 가수죠. 이 사람이 성악공부를 했는지 발성이 좋아요. 지금 부른 노래가 4월이 가면인데, 노래 좋죠. 기가 막히죠. 왜 불러, 선운사에서, 담뱃가게 아가씨, 상아의 노래 주옥같은 노래 참 많아요.”

“뭐요. 담뱃가게 아가씨에 상아의 노래, 아니 이 아저씨가 제 여자친구가 편의점에서 담배 파는 건 어떻게 알고, 거기다가 이름까지. 볼수록 수상한 아저씨네.”

청년은 왼손에 든 파우치 백을 문신있는 여자친구에게 건네고 두 손을 자동차 창틀에 올려놓았다. 공격적인 자세였다. 눈썹을 치켜뜬 모습은 게임 캐릭터 앵그리버드가 연상돼 웃음이 나올뻔 했다.

“수상하다니요? 이해가 잘... 내가 청년 여자친구 이름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

“지금 상아의 노래라고 했잖아요. 우리 이쁜 상아 이름을 어떻게 아냐니까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하필 청년의 여자친구 이름이 상아일 줄은. 이것은 가는 비 오는 날 골프장에서 홀인원 할 확률을 넘어, 홀인원 한 다음에 벼락 맞을 확률만큼이나 극히 드문 상황이었다. 신호등이 바뀌었고 뒤에서는 크랙션이 울렸다. 청년은 뒷차를 향해 비켜 가라는 수신호를 했다. 나는 차를 인도 쪽으로 옮겼다.

청년은 조수석에 앉고 청년의 애인은 뒷자리에 앉았다. 나는 오디오를 켰다.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파라 아 못 잊어 아쉬운 눈물의 그날 밤 상아 혼자 울고 있나’ 거리를 잠시 혼란스럽게 만든 송창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헐, 진짜 상아가 나오네, 오빠 신기하다, 신기해.”

백미러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해맑은 표정이었다. 차 안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노래가울려 퍼진 게 정말로 신기한 눈치였다.

“그러네.”

노래에서 상아라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청년의 목소리가 누그러들었다. 자세도 다소곳해졌다.

“우리 이쁜 상아가 그때 혼자 울었어요?”

갑자기 청년은 혀짧은 목소리를 내며 여자친구를 바라보았다.

“오빠, 나 혼자 있게 하지 마, 밤에는 무섭단 말야. 노래처럼 상아 혼자 울고 있으면 안 되잖아.”

“우리 이쁜 상아가 오빠보다 밤이 더 무섭구나.”

대화를 듣고 있기에 민망했다. 내 자동차 안에서 펼쳐지는 이런 상황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오디오를 껐다.

“아저씨, 노래 좋은데 한 번 더 들으면 안 돼요?”

여자의 말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집에 가서 들어. 그리고 아저씨, 이런 노래만 듣지 마시고 젊은 가수들 노래도 좀 들어보세요. 우리 아빠 같은 연세로 보이셔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그럼 아빠도 송창식 좋아하시겠네.”

나는 문장의 끝을 흐리며 반말투로 바꿨다.

“우리 아빠는요. 술 취하시면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을 주구장창 불러요. 하얀 손을 흔들며 입가에는 예쁜 미소 짓고 있지만... 제가 하도 들어서 가사를 다 외우거든요.”

청년이 여자친구에게 파우치 백을 달라고 한 뒤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몇 차례 눌렀다. 잠시 후 노래 전주가 흘러나왔다.

“적재 노래에요.”

나는 청년을 쳐다보았다.

“아니, 자네가 내 이름은 어떻게 아나? 수상한 청년이네.”

“제가 아저씨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지금 덕재 노래라고 했잖아. 내 이름이 덕잰데.“

청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덕재가 아니라 적재라니까요. 제 발음이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이 노래 모르세요?. 나이든 아저씨들은 맨날 송창식 최백호 함중아 하남석만 부르니, 이 좋은 노래를 몰라요. 몰라도 너무 몰라.”

적재라는 이름이 귀에 맴돌고 있을 때, 내 차 앞에 서 있는 트럭 뒤편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트럭은 낡아 보여도 ‘전착도장적재함’이라는 문구는 비교적 선명했다. 나는 청년의 팔을 치며 트럭을 가리켰다.

“저기 적재함이라고 쓰여있는 그 적재여?”

청년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맞아요. 적재함 할 때 적재.”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가사는 말랑거렸고 기타 소리는 송창식의 기타보다 경쾌했다.

“아저씨, 그럼 양다일 노래는 아세요?”

“양다리?”

“아니, 양다리가 아니라 양다일요, 양다일. 어쩌면 우리 아빠랑 똑같지. 아빠도 양다일을 양다리냐고 물어보던데, 우리나라 아저씨들은 어디 똑같은 노래방에 다니나 봐.”

청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모를수도 있지. 그렇다고 하늘 꺼지도록 한숨을 쉬면 되나. 젊은 사람이.”

“아니 그게 아니라요, 지금 이 노래가 양다일의 한숨이라는 노래거든요.”

청년이 든 휴대폰에는 유튜브 화면이 떠 있었다. 피아노 전주는 나직하고 어두웠다. 가사는 잔잔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울림도 있었다. <한숨>에 이어 <아파>까지, 송창식이나 최백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저씨, 폴킴이나 아이유는 아세요?”

“에이, 그 정도는 나도 알지, 아이유랑 아이비랑 가끔 헷갈리기는 하지만 말야.”

청년은 자동차 문을 열고 한쪽 다리를 도로에 딛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저도 앞으로는 송창식 노래 가끔 들어 볼 테니까요, 아저씨도 젊은 사람들 노래 자주 들어 보세요. 그래야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겠어요.”

청년은 자못 진지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차 문을 닫은 뒤 청년은 열린 차창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조용히 말했다.

“근데 말에요. 여기 앞 트럭에 써 있는 전착도장적재함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적재함은 알겠는데.”

나는 가소롭다는 표정과 함께 혀를 끌끌 찼다.

“요즘 애들은 한자를 너무 몰라. 전착도장은 한자를 써서 설명해야 되는데. 전이라는 게 전기라고 쓸 때 쓰는 ‘번개 전’인데, 여기 다시 타봐, 내가 한자를 쓰면서 자세히 설명해 줄 테니까.”

청년은 손사래를 쳤다. 그러더니 앞 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무언가를 말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은 ‘꼰대’라는 모양으로 오므라들었다. 여자는 청년의 팔을 당겨 자신의 가슴에 밀착시켰다. 청년은 한 손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창문을 닫지 않은 채 누가 뭐래도 외면할 수 없는 송창식의 노래 <4월이 가면>을 불렀고, 청년과 여자는 소리 내어 웃었다.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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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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