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읽기] 실적 채우기 아닌, 독서 욕구 일깨울 수 있어야
[성광진의 교육읽기] 실적 채우기 아닌, 독서 욕구 일깨울 수 있어야
  •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 승인 2021.05.0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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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굿모닝충청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학생들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주면 안 됩니다. 만화책이 거의 절반이잖아요. 고등학교 학생들이 만화나 보면 어떻게 합니까? 학교도서관의 체면이 있지, 학생들이 만화책이나 보고 있는 것이 한심하지 않아요? 이대로 구입해서는 안 됩니다.”

도서 목록을 앞에 놓고 학교도서관 도서선정위원회의 위원장인 교감은 목소리를 높였다. 도서심의위원으로 참석한 위원들은 교감의 눈치만 보고 있다.

“만화책이 어때서요? 내용이 중요하지요. 아이들에게 시각적인 미감을 기르면서 지적으로도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 만화입니다.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유인하는데 적격입니다.”

이 목록을 제출한 독서지도 담당교사도 물러서지 않는다. 교직 경력이 교감과 비슷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책망깨나 받았을 것이다.

“인터넷에 연재하는 만화를 웹툰이라고 하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얼마나 많이 보는데요. 그것 가운데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구요. 만화도 문학작품 버금가게 수준이 높아요.”

가만히 있던 학부모위원이 말을 거들면서 교감의 반대도 한풀 꺾인다.

“지금 만화 가운데 19금은 이미 제외되었고, 학생들을 도서관으로 이끌어 들이는 데 유용하다고 하시니 웬만하면 통과시키시지요.”

교감을 뺀 나머지 위원들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만화책도 심사를 통과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도서가 도착했다.

이들 문제가 된 책들이 도착하고 나서, 도서관에 학생들의 발길이 갑자기 많아졌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만화책들을 먼저 대출을 하거나, 읽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오고, 그 책이 없으면 다른 책이라도 살펴보다 보니, 도서관의 활용이 그전보다 더 많아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마다 교육청은 학교별로 독서지도계획을 세우라고 지침을 내려보낸다. 그 계획은 교육부의 시책에다 교육청이 제 나름의 색깔을 입혀 실행하라고 내려보내기 마련이다. 학교는 그 공문에 따라 1년간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물론 거기에는 교육청에 실적을 보고하기 위한 주요 사업이 반드시 자리잡아야 하고, 덧붙여 학교만의 특별한 자체 행사 등도 만들어 학교독서지도계획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지도계획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일까? 한때 교육청에서 내려온 지침에 따라 다독자상 제도가 있었다. 학급별로 책을 가장 많이 대출해간 학급과 학생에게 상을 주었다. 이런 상을 학생부에 넣으려는 학생 간에 대출 경쟁이 벌어진다. 문제는 학생들이 단순히 책 대출의 숫자만 채워 상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다 학급에서도 담임교사의 특별 감독하에 학생들이 책 대출을 하는 억지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가장 해악인 보여주기 사업의 본보기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미봉책이라도 있으니,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가고 억지로라도 책을 읽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서가 진정 중요하다면 독서지도계획에 따라 실적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독서 욕구를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의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 자신들이 읽고 싶은 책이 있어야 하고, 읽어야만 하는 책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독서 흐름은 읽고 싶은 책에서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도서관을 항시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는 전문 사서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학생도서부원들을 활용하여 쉬는 시간에 도서관을 개방하고 있지만 이것도 쉽지는 않다. 인근의 학부모나 주민을 자원봉사자로 시간제로 활동하도록 하고 있지만, 책의 대출 반납과 정리 등에 한정되어 있고 예산 지원도 없다. 앞으로 사서봉사자들에 대한 도서관 운영과 자료 관리,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활용 등에 대한 교육과 함께 예산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교의 도서관은 학생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출입하는 중앙 현관의 가운데 층에 있어서 오며 가며 들를 수 있으면 좋겠다. 위치 때문에도 도서관이 문만 열면 학생들이 자주 들를 수 있다. 거기에다 안락한 의자와 마음대로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와 편하게 열람할 수 있는 서가만 있다면 금상첨화다. “책을 많이 대출해라”, “많이 읽어라”라는 말이 필요 없다.

독서지도계획으로 실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도서관을 학생들이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여 스스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가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언제 하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성적지상주의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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