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미더덕은 불안해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미더덕은 불안해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5.23 16:2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다음 주에 있을 중요한 발표의 자료 준비를 마치고 난 뒤, 동태탕 후배와 젊은 여직원과 해물탕을 메뉴로 술을 마셨다. 식당은 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우리를 포함해 세 군데 밖에 테이블이 차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 두 분은 막걸리를 마시며 종중 행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조상 묘를 사돈에 팔촌 바라보듯 한다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대를 걱정했다.

“시제가 얼마 안 남았는데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모일 수도 없고 걱정이네요. 날도 더워서 음식 장만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에 음식을 맞추면 어떨까요?”

“그건 아니지, 아무리 유교의 법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음식을 사서 조상님들 상을 차릴 수야 없지 않은가?”

노인들은 역사드라마의 화법으로 나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제법 울림이 있어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까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나라 음식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가사노동 착취를 통해 만들어 게 분명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직원이 노인들의 대화에 불만을 표시하며, 작은 목소리로 우리의 반응을 물어봤다.

“나는 집사람이 음식할 때 많이 도와주는 편이야.”

동태탕 후배는 웃음을 띠며 자신 있게 말을 했다.

“선배님은 그게 문제라니까요. 집사람이라는 표현도 문제지만 왜 도와준다는 말을 쓰는 거죠?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죠. 음식은 물론이고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니까 도와준다는 말이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거라고요.”

동태탕 후배가 나를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대응할 만한 말을 하라는 눈치였다. 나는 시선을 건너편 벽으로 돌리고 화제를 바꿨다.

“요즘 한화 젊은 선수들이 가능성이 있어. 아직 하위권이긴 해도 시간 지나면 치고 올라갈 것 같지 않나. 이제 노시환은 한화의 기둥여.”

벽에 붙어있는 TV에서는 프로야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그 아래 테이블에서는 여성 두 명이 술을 마시는데 둘은 자주 잔을 들었다.

“알았어요, 그만할게요.”

여직원은 다소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태탕 후배에게 술을 따랐다.

“여직원한테 술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지금 맥락이 그게 아니잖아요. 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이다. 이러면서 술 따르기를 강권하는 갑질이 문제지. 이렇게 선배님이랑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는 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그렇지 않나요?”

젊은 여직원은 동태탕 후배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렇지. 백번 맞는 말이지 내가 생각이 짧았네.”

동태탕 후배는 곧바로 수긍을 했다. 이럴 때는 빠른 승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병 투수들도 잘 던지지만 김민우가 작년의 김민우가 아녀. 벌써 5승을 했어. 놀랍지 않냐. 이러다가 내년에는 1선발도 되겠어.”

나는 또다시 야구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TV 아래 여성 둘은 소주 두 병과 맥주 세 병을 비웠고 소주 한 병을 추가로 주문한 상태였다. 여성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녀들은 흐트러짐 없이 술을 마셨다. 중계를 보는 동안에 단발머리 여성과는 눈을 두 번 정도 마주쳤다.

내가 계속 야구 얘기로 화제를 바꾸어 나가자, 여직원은 남녀평등에 대한 생각이 더욱 궁금한 모양이었다. 안주는 줄어들었고 냄비는 바닥을 보였다.

“왜 야구장에 치어리더들은 다 여성들만 하나요? 남자들이 응원하면 안 되나요?”

여직원이 우리 사회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 길게 말하는 사이, TV 아래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여성들이 일어났다. 등을 보인 여성은 계산대로 갔고 단발머리 여성이 우리 테이블 옆을 지나갔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경쾌했다. 테이블을 한 발자국쯤 지나갔을까. 갑자기 뒤돌아서 테이블 앞에 섰다.

“왜 자꾸만 흘낏흘낏 쳐다보는 거예요. 기분 나쁘게.”

세 병의 소주와 두 병의 맥주에도 여성의 발음은 정확했지만, 돌발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는 직원들끼리 얘기하고 있었는데......”

앞자리 앉아 있는 여직원은 고개를 들어 서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고, 동태탕 후배는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저를 계속 쳐다봤잖아요. 실실 웃으면서.”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아줌마 위에 있는 텔레비전을 본 거라고요. 아까 웃은 것은 노시환이 홈런을 쳐서 그렇고.”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뭐, 아줌마! 이 아저씨가 머리는 빠져가지고, 얻다 대고 아줌마라고요?”

머리카락 얘기가 나오는 순간, 동태탕 후배와 여직원이 벌떡 일어났다. 상황은 역전됐다.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렸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여직원은 단발머리 여성을 급히 데리고 나갔다. 다행히 사태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확전은 피했어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소주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왜 그러셨어요?”

“뭘?”

“여성의 특정한 신체 부위를 빤히 쳐다보는 것도 성희롱에 해당된다니까요.”

“나는 그 아줌마를 쳐다본 게 아니라, 그 아줌마 위에 있던 TV를 본 거라고.”

“아무튼 조심하세요. 시선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요.”

젊은 여직원은 다소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태탕 후배는 마지막 잔이라며 빈 잔을 채워주었다. 갑자기 당한 봉변이라 야구 중계 화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직원은 목에 걸었던 앞치마를 벗으며 일어설 준비를 했다.

나는 쓴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고, 바닥을 드러낸 냄비에서 미더덕 하나를 집었다.

“앞으로는 술 마실 때 눈을 감고 먹어야겠네.”

술자리에서는 마지막까지 적당한 긴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아니 미더덕을 입에 넣고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미더덕을 씹는 순간, 가느다란 물줄기가 1미터 전방에 앉아 있는 여직원의 오른쪽 가슴에 닿았다. 마치 수압이 좋은 물총을 쏜 듯 포물선을 그리지 않았고, 투수 김민우의 직구처럼 물줄기가 꽂혀 버린 것이다. 앞치마를 벗고 난 뒤 불과 3초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얼핏 보면 김치 국물 같기도 하고, 매운 칼국수를 먹다가 튄 자국으로 보이기도 했다. 놀란 여직원은 물티슈로 블라우스를 닦았다. 얼룩은 더 넓게 번졌다. 처음에는 작은 점으로 보였는데 백 원 짜리 동전 크기로 커졌다. 단순하게 튄 물방울 하나가 아니라 양념이 배인 물줄기가 연속해서 닿았으니, 자국은 수채화 물감처럼 퍼질 수밖에 없었다. 미더덕은 냄비에서 2시간 동안 낮은 포복 자세로 엎드려 양념을 진하게 머금었고, 언제라도 터질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이다. 여직원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그냥 일어나지 왜 미더덕은 드셨어요?”

“소주 마시고 안주로 미더덕 먹은 게 잘못인가?”

“물론 잘못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됐잖아요. 입을 다물고 씹었어야죠.”

“자켓도 안 입고 온 것 같던데.”

“이렇게 더운 날 누가 자켓을 입어요? 나이든 선배님이나 아직도 잠바를 입지.”

잠시 후 여직원이 울상을 지으며 나왔다. 하얀 블라우스에는 여전히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세면대에서 얼룩진 부분을 물로 닦아 낸 것으로 보였다. 화장실에 가기 전과 차이가 있다면 양념 색이 은은한 파스텔 톤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젖은 셔츠에 살이 붙어 가슴은 도드라져 보였다.

“그만 좀 쳐다보세요. 특정 부위를 계속 보면 어떻게 된다고 했죠?”

“아니, 그게 아니라......”

“죄는 미더덕한테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점퍼나 빌려주세요.”

사무실에서 입고 나온 작업용 점퍼를 벗어 주었다. 취기는 달아났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청바지와 점퍼가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고 어색한 농담을 던졌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이었다. 오히려 여직원은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걱정하며 손을 힘차게 흔들고 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늙은 아저씨 냄새나네요. 빨래를 자주 하든지 샤워를 자주 하든지 하세요. 그리고 미더덕은 불안하니까 앞으로 미더덕 들어간 회식 메뉴는 삭제하시고요”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

▲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KJH 2021-05-24 15:30:16
페미는 정신병이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