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운전은 늘 어려워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운전은 늘 어려워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5.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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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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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퇴근할 때 언덕 끝 신호등이 있는 길을 지나는 구간이 있다. 초보운전 시절에는 신호대기를 하다가 멈추었다 출발하면, 반 바퀴 가량 차가 뒤로 밀리는 긴장감으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지금은 수동기어로 변속하는 차들이 많지 않아 고갯길에서도 뒤로 밀리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지난주에는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들이 꼬리를 잇고 있었다. 경사도가 제법 심해 언덕 아래에서는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대개는 앞차들이 움직이는 걸 보며 신호가 바뀐 것을 감지한다. 그날도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룸미러로 보이는 뒤차에는 젊은 남녀가 타고 있었다. 남자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 차를 사면 꼭 해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나는 운전을 수동기어가 달린 차로 시작했기 때문에, 초창기엔 두 손 모두 운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왼손은 핸들을, 오른손은 기어 변속기를 잡고 있어야 해서 여자친구 어깨에 올려놓을 손은 늘 부족했다. 어쩌다 신호대기 중에 용기를 내보려고 했지만,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아야 하는 운전교습을 어김없이 실천하는 바람에 낭만적인 기회는 거의 없었다.

룸미러의 청춘들은 아름다웠고, 앞차 운전자의 불안한 통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뒷머리가 운전석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오른손이 귓가에서 수시로 움직이는 걸로 봐서 전화통화가 분명했다. 차량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옆에 있는 차들은 앞으로 나아갔고, 앞차의 앞차도 움직였지만 바로 내 앞에 있는 차만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차가 뒤로 내려온다고 감지한 순간 쿵 소리가 들렸다. 앞차가 밀려 내려와 부딪히는 데 걸린 시간은 1-2초에 불과했다. 두 바퀴 남짓 구르는 거리였기에 충격은 크지 않았다. 굳이 내리지 않아도 될 만한 상황으로 판단했다.

여전히 휴대폰을 귀에서 떼지 않고 내린 앞차 운전자는 파마를 한 지 두 달쯤 되어 보이는 5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불룩한 배는 차라리 당당하기까지 했다. 세 부분으로 겹쳐진 뱃살은 셔츠를 뚫고 나올 기세였다. 차에서 내린 여성은 내 차 보다는 본인 차에 더 많은 시선을 두었다. 고가의 수입차라는 걸 감안해도 가해자가 본인 차량만 신경을 쓴다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안전벨트를 풀고 내리려고 하자 운전자가 다가왔다.

“아니, 차를 그렇게 바짝 붙이고 서 있는 사람이 어딨어요?”

예상외의 첫마디였다. 말투는 소란스러웠다.

“다치지는 않으셨어요? 괜찮으세요?”

이런 일반적인 질문을 예상했지만,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1미터 이상은 거리가 있었는데요”

여자의 공격적인 도발로 내 목소리는 움츠러들었다.

“2미터 이상은 거리를 두어야지. 이렇게 바짝 붙어있으니까 부딪힌 거잖아요.”

좌우 그리고 내 차 뒤를 살폈다. 퇴근길 정체는 더욱 심해졌다. 서행을 하던 택시의 유리창이 내려왔다. 기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여성 운전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뒤에서 굴러 내려온 차가 잘못인가요. 가만히 서 있는 차가 잘못인가요?”

나는 택시기사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바퀴가 둥그니까 앞으로 갈 수도 있고 뒤로도 갈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바짝 붙어 있는 것도 문제라는 거죠.”

운전자는 구르는 바퀴의 성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사고의 본질이 멀어질 것 같았다.

“여기 블랙박스 한번 볼까요?”

블랙박스라는 말에 여성의 목소리는 가라앉았다. 그 여성의 갈라진 목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만 가보라는 손짓을 보냈다. 여성 운전자는 마지못해 간다는 표정으로 돌아가며 다시 본인의 차를 확인했다. 앞차는 서서히 움직였고 정체가 계속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차를 따라가야 했다. 희미한 유리창 너머 운전석 여자의 손에는 어느새 전화기가 들려져 있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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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한 기분을 가지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섰다. 저녁 8시가 넘어서 그런지 빈자리를 찾기 쉽지 않았다. 이면주차한 차들도 많았다. 주차장을 돌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기둥 옆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급히 주차를 하려고 핸들을 꺾는 사이, 멀리 차 한 대가 크랙션을 누르며 달려왔다. 나는 다시 좌우를 돌아봤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상황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특징적인 상황은 없었다.

차는 빈 주차장 가까이 왔고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목소리 만으로 중년 이상의 남성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운전자가 문을 열고 내렸다. 알록달록한 셔츠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디서 파는지 알기도 어려운 셔츠였다. 젊은 시절 종종 가던 나이트클럽 문지기들의 셔츠와 흡사했다. 운전자는 큰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내가 먼저 저쪽에서 빈자리 보고 온 건데요.”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운전자는 빈자리를 먼저 발견한 자신이 주차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주어는 있지만 문장의 어미 처리는 매끄럽지 않아 반말투로 들렸다. 빈 주차공간과 내차의 거리는 3-4미터 남짓, 그리고 상대방 운전자가 크랙션을 누르고 달려오기 시작한 것은 족히 20미터 이상 되는 거리였다.

“내가 저쪽 라인 주차장을 한 바퀴 돌 때 여기를 발견했다니까요.”

상대 운전자는 빈 주차공간을 먼저 발견했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갑자기 기시감이 찾아왔다. 바퀴는 뒤로도 구를 수 있다고 주장한 여성 운전자의 얼굴이 스쳤다. 데자뷔는 반복되는 것인가. 나는 이런 의문을 갖기 시작하며 후진을 했고, 알록달록 운전자는 한 손을 창문에 걸쳐놓고 주차를 했다. 손목에 찬 까르띠에 금장시계는 은은하게 빛이 났다.

 

“아침에 출근할 때 내가 여기 찜하고 나갔거든요. 저녁에 주차하려고.”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끝까지 참았다. 시계가 짝퉁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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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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