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해석이 어려운 이모티콘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해석이 어려운 이모티콘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7.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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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단발머리 신입 여직원이 추천하는 다이어트 식단을 실천한 지 열흘이 지났다. 볶은 오트밀을 꾸준히 먹기가 쉽지 않았지만, 뱃살 없는 몸으로 해수욕장을 걷는 상상을 하며 하루 한 끼의 오트밀을 이어갔다.

다이어트의 효과가 눈에 띌 정도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아도, 젊은 여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20대들이 즐기는 문화생활과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단발머리와 종종 카톡을 주고받으며 발견한 것은 유난히 줄임 말을 자주 쓰고, 다양한 이모티콘이 섞여 날아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모티콘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

“이번 프로젝트 반응이 어떨까?”

이런 문자를 보내면 재미있게 경례하는 모습이나 혓바닥을 내밀고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이 날아온다. 이모티콘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반응하기 여의치 않을 때가 있어 동태탕 후배의 자문을 받기도 했다. 물론 큰 기대를 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이 잿빛 표정으로 인사하는 이모티콘은 뭐냐?”

“글쎄요, 공손한 인사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표정도 어둡고, 옆구리 찔러 절 받기 이런 거 아닌가요.”

“지금 뭘 알고 얘기하는 거냐? 이모티콘 사본 적 있어?”

“아니요. 그걸 돈 주고 사는 게 좀 그렇지 않나요.”

이모티콘에 대한 나와 동태탕 후배의 대화는 모자란 덤 앤 더머 수준을 넘지 못했다. 보내고 싶은 이모티콘을 고를 때는 캐릭터가 정지해 있어, 보낸 뒤의 변화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최근 이런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오후 4시를 넘긴 엊그제 일이다. 점심에 오트밀을 먹어서 그런지 유난히 배가 출출했다. 간식이라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단발머리에게 식빵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식빵 캐릭터에는 ‘식빵’이라고 글씨도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카톡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발머리가 책상 앞으로 왔다. 표정은 엄숙했다.

“휴게실에서 잠시 뵐 수 있을까요?”

단발머리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돌아서 나갔다. 휴게실에서 빵을 같이 먹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제가 뭐 잘못한 거 있나요?”

당황스러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뱉은 단발머리의 말은 도전적이었다. 그녀는 앞에 놓여있는 머그컵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무언가를 진정시키는 행동이었다.

“아니.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저한테 욕을 하셨잖아요.”

주위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옆에서 누가 들었다면 갑질하는 상사의 모습으로 비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왜… 내가 무슨 욕을 했다고…”

나는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가 없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말꼬리도 흐려졌다. 내 시집을 책꽂이에 꽂아놓고, 또 다이어트 요법을 알려준 신입에게 욕을 했다니,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단발머리가 머리카락을 넘긴 뒤 입을 지그시 다물고 휴대폰을 열었다. 내가 보낸 카톡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이건 뭔가요?”

“이거 보면 모르나. 식빵이잖아.”

“제 말은요. 욕하는 식빵 이모티콘을 왜 보내셨는지 그게 궁금하다는 겁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무슨 욕을 했다고 그래, 배고파서 빵 있냐고 물어 본거지.”

“네, 뭐라구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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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이 흘렀다. 3초 남짓 시간이 흘렀을까 단발머리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좁은 휴게실을 가득 채운 단발머리의 웃음은 꽤 길게 이어졌다.

“잘 보세요. 이 이모티콘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이세요? 움직이면서 표정이 일그러지고 식빵하고 외치잖아요”

“어. 이상하네, 내가 보낼 때는 식빵이 안 움직였는데, 근데 그게 뭘...”

“아직도 모르세요? 아휴 답답해. 씨팔이라고 대놓고 욕하기가 쌍스러워 보이니까 식빵이라고 표현한 거잖아요. 인상 쓰면서.”

단발머리도 주위를 살펴보았다. 상사에게 욕하는 것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휴대폰 카톡을 검색하며 다른 이모티콘을 몇 개 더 보여주었다.

“개나리꽃 모양 위에 이런 개나리라고 쓰여 있는 것도 욕하는 이모티콘이잖아요. 또 이거 나무그림 위에 써 있는 나무하네는 너무하네라는 뜻으로 원망하는 이모티콘이구요.”

다행히 오해는 풀렸지만 나는 졸지에 이모티콘 무식자가 되어 버렸다.

“아, 그게 수박씨 발라 먹으라는 말이랑 비슷한 거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수박씨 발라 먹으라고 할 때, 씨를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 수박씨가 되거나, 수박 씨발이 되는 이치지.”

“아하, 완전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를테면 식빵도 그런 식이죠.”

단발머리는 나의 비유에 옅은 웃음을 지으며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디 가서 내가 식빵 이모티콘 보냈다고 하지 마. 특히 동태탕 그놈한테는, 그놈 귀에 들어갔다가는 한 달은 놀림당할 거야.”

단발머리는 알듯말듯한 웃음을 지으며 휴게실을 나갔고, 나는 정수기 앞에 서서 찬물을 따라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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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한테 뭔 일 있어요? 아까 분위기가 영하 10도쯤 되는 것 같던데.”

컴퓨터 모니터를 보던 동태탕 후배가 궁금한 눈치였다.

“일은 무슨, 니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이모티콘 공부 좀 하고 왔지.”

“저는 이모티콘은 오글거려서 못 보내겠던데...”

“나도 그래, 근데 카톡 주고받을 때 자연스럽게 쓰는 게 대세니까 활용하는 것도 괜찮지.”

나는 애써 이모티콘의 쓰임새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여유롭게 말했다. 문제는 실제 생활에서 잘 쓰지 않고, 어쩌다 쓰더라도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아까 보냈다가 삭제한 문자가 뭐였나요?”

다음날 단발머리가 책상 앞으로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식빵 이모티콘이 트라우마처럼 살아났다. 내가 카톡 문자를 지워도 상대방 스마트폰에 삭제 흔적이 남는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잘못 보내서…”

“뭘 잘못 보내셨는데요.”

“잘못 눌러 하트가 들어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서.”

“그게 뭐가 어때서요?”

”아니, 자칫 오해할 수도 있지 않나. 신입 여직원한테 하트가 들어있는 이모티콘을 보낸다는 게…”

단발머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내뱉었다. 이어서 구제불능이라는 뜻을 강하게 담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단발머리가 돌아가며 남겨놓은 말은 오랫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밥 잘 먹었다고 하트 보내고, 커피 사주셔서 감사하다고 하트 보내고 그러는 건데, 그렇게 신경 쓰다가 명 짧아지셔요. 다음에 맛있는 밥 사주세요. 제가 하트 많이 보내 드릴게요. 답장으로 식빵만 아니면 됩니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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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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