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일기] 나의 첫 농사, 괴산 대학찰옥수수
[나의 귀농일기] 나의 첫 농사, 괴산 대학찰옥수수
충북 괴산군 문광면에 귀농한 박지혜 씨, ‘괴산울엄마농장’ 운영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1.07.28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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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으로 귀농한 박지혜씨가 괴산대학찰옥수수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박지혜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귀농·귀촌을 하고 싶어도 막연한 게 현실이다. ‘나의 귀농일기’는 충북으로 귀농해 새 삶을 살고 있는 귀농인들이 직접 기록한 솔직 담백한 글이다. 경제·사회생활을 비롯해 교육과 문화 등 모든 것이 낯설 수밖에 없는 귀농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괴산군 문광면 박지혜 씨] 나의 첫 농사, 괴산대학찰옥수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집 앞에 트랙터가 왔다 갔다 한다.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된 것이다. 

시골의 냄새. 온통 밭에는 퇴비를 뿌려놓아 구린내가 가득하다. 아직은 이 냄새가 익숙하지 않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환경에 적응도 되기 전 나의 첫 농사를 준비한다. 

옥수수 종자를 농협에서 구입했다. 품종은 대학찰옥수수다. 괴산지역에서 대학찰옥수수는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는 품종이다. 본적도 없고 먹어본 적도 없는데 유명하단다. 명성이 자자한 만큼 찾는 사람들도 많을 터. 생산도 생산이지만 나중에 판매도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지역에서 유명하고 홍보가 저절로 되는 밀어주는 농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식목일이 지나고 4월 8일 옥수수 파종을 했다. 20여 일 모종을 키워 밭으로 나가야 한다. 농사의 절반 이상이 모종에 달려있다고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앞집아저씨의 하우스로 달려간다. 마땅히 모종을 키울만한 장소가 없어 앞집아저씨의 하우스를 한해 얻어쓰기로 했다. 

낡고 오래된, 꺼벙하게 생긴 작은 하우스. 그래도 따뜻한 볕이 참 잘 들어 왔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옥수수 모종들. 삐쭉삐쭉 잎들이 올라오고 어느새 집게손가락만 하게 키도 자랐다. 본 밭에 나가기 딱 좋은 크기라고 앞집아저씨는 말씀하셨다. 

물주는 시간과 하우스 환경관리 등 앞집아저씨는 농사에 있어서 나의 첫 스승이다. 스승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지나가는 소리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옥수수 정식을 하고 하루하루 날씨 확인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초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내렸던 비가 5월 중순부터는 소식이 없다. 애간장이 탄다. 면사무소에서 양수기를 빌렸다. 물을 퍼야 하는데 농수로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 

수감반장님께 여쭤보니 물이 들어오는 입구에 뭐가 고장이 났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 몇 년 동안 놔두었다고 한다. 내년에는 마을에 얘기해서 고치겠다고 하는데…. 난감하다. 한숨이 그냥 나온다. 남편과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참이나 멀리 있는 강가에서 물을 끌어다 사용하기로 했다. 

가뭄으로 물과의 전쟁을 벌인 험난한 농사였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옥수수 수확일이 다가왔다. 날씨에 따라 옥수수 익어가는 속도가 달라진다. 옥수수 숙기를 알고 수확일을 정하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열심히 옥수수 주문을 받았다. 포털사이트 판매 스토어도 개설하고 SNS 활동도 열심히 했다. 정말로 제철이 되자 옥수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주문받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면적대비 생산량을 대충 파악했다. 양에 맞게 70% 선주문을 받아두고 굉장히 뿌듯했다. 드디어 수확 날이 되었다. 새벽 4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옥수수를 베는 낫질에 속이 후련하다.

한참 지난듯하다. 날이 더워지자 속도가 붙지 않는다. 몇 시나 됐을까? 한참 지났을 거로 생각하고는 시계를 확인한다. 오전 8시 40분이 지나고 있다.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아침 해가 이렇게 뜨거웠나? 무엇보다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 

옥수수를 따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선별하여 박스포장까지 한다. 동네 어르신 부부가 일을 도와주셨다. 옥수수가 마르기 전에 빨리 일을 맞춰야 한다고 하셨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더위에 진짜 더위를 먹었나 보다. 어찌 됐든 꾸역꾸역 주문량 260박스 포장을 마쳤다. 선별 후 남은 옥수수는 자루에 담았다.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공판장에 가져가 낼 것이다. 

그리고도 남은 옥수수. 작아서, 벌레 먹어서, 덜 여물어서…. 이래저래 옆으로 빼놓은 옥수수가 꽤 많다. 그나마 좋은 것들을 또 추려본다. 가져가서 쪄먹어 봐야지~ 젤 좋은 거로 내가 먹고 가족이 먹어봐야 하는 건데 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택배 보내는 작업까지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은 그 어느 때 보다 가벼운 발걸음이다. 

다음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옥수수 보낸 농장이죠? 웬만하면 내가 전화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런 옥수수를 어떻게 팔고 있어. 사진 찍어 보낼 테니 한번보세요” 답변할 틈도 없이 전화는 끊겼고 바로 문자가 들어왔다. 

이가 빠진 옥수수가 보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옥수수. 선별하고 좋은 것만 고르고 골라 보냈건만 냉혹한 고객의 쓴소리에 가슴이 쪼여온다. 30분이나 지났을까?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된통 한 소리 듣고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인데 이번에도 고객이다. 갑자기 무서워진다. 

“여보세요?” “오늘 옥수수 받은 사람인데요. 옥수수 한박스 더 주문할 수 있나요?” 다행이었다. 전화의 이유는 오전 일찍 받아 삶아 먹고 있는데 너무 부드럽고 맛있어서 한박스 더 사서 동생네 보내주려고 연락하셨다고 한다. 

고객의 소리에 울고 웃고 잠깐의 몇 시간이 너무 피곤하다. 농사의 끝이 수확이라고 생각했는데 농사의 끝 그리고 결과는 고객의 소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다음 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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