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사랑-기고] “깨져야 할 건 기록만이 아니다”
[세종문화사랑-기고] “깨져야 할 건 기록만이 아니다”
  • 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
  • 승인 2021.08.10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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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굿모닝충청=세종)
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굿모닝충청=세종)

[굿모닝충청=세종] 폭염과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 진행된 도쿄올림픽이 폐막식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이런 재난상황에서 올림픽을 하는 게 맞느냐, 무관중으로 하는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빚더미가 될텐데 뭐하러 하느냐는 등 직접 당사자가 아닌 측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100가지쯤은 되는 것 같았다. 중간 중간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행사장의 준비부족과 그로 인한 선수들의 안전문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일 동안 치러진 이번 올림픽은 기존에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듣게 해주었고, 안보이던 것들을 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4등> (정지우 감독, 2014)에는 수영대회에서 늘 4등만 하는 주인공과 조금만 더하면 메달권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뭐라도 하게 되는 엄마와 엄한 체벌을 통해 순위에 들도록 해줄 수 있다는 코치가 등장한다. ‘채찍과 당근’이라는 말 정도는 흔하게 듣고 자란 세대라 이런 일이 다반사였기에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아팠지만, 적어도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제쳐두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올림픽이라고 하면 선수입장에서는 ‘당연히’ 금메달을 따야하고, 특히나 기대주였던 선수의 경우에는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면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눈물로 국민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울먹이던 모습들을 너무도 익숙하게 보아왔다. 국민의 입장은 어떤가? 이기는 선수만 격려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고, 매일 하루를 마감할 때마다 국가별 메달순위가 국력의 지표라도 되는 냥 일희일비하면서 그것이 ‘올림픽을 응원하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신기록을 기록한 높이뛰기의 우상혁 선수나 우리나라 다이빙역사를 새로 쓴 우하람 선수, 스포츠 클라이밍의 서채현 선수 그리고 리더쉽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김연경 선수의 여자배구 국가대표팀까지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 하겠다”고 하는 ‘즐기는 4등’의 목소리에 처음엔 당황했고,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그 경쾌함에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 즐거운 마음과 함께 예전에는 상상 못했던 ‘문화예술’분야에도 올림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해봤다. ‘예술을 순위 매겨서 줄세운다’는 발상에 대해 질타를 받을 게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문화예술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한 곳으로 모으고 수십억 관객들이 자신의 좋아하는 예술가를 맘 놓고 응원해 보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스톡홀름 올림픽(1912년)부터 런던올림픽(1948년)까지 올림픽 종목에 예술경기 5개 분야(건축 회화 조각 음악 문학)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텡은 올림픽을 다른 스포츠대회와 차별화하고 싶었고 몸과 마음의 조화를 중시하는 의미로 기원전 고대올림픽과 흡사하도록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출품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의 경기여야 하는 올림픽 정신과 비교해 예술은 프로의 분야라는 의견이 앞서 7번의 대회 만에 퇴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다양한 분야의 프로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해, 또 개인의 영예를 위해 올림픽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조만간 ‘예술경기’종목도 다시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문화예술’과 더 연결 지어서 생각해보게 된 것은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보기 좋게, 그리고 유쾌한 방식으로 허물어 주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가치 중 가장 의미 있는 것 중 하나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인데 이번에 우리는 경기를 즐기는 방식이 ‘승부’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1등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긴 상대방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멋진 패자의 모습에 두 배의 감동을 느꼈고, 심지어 4년을 준비한 경기지만 정신적 압박감으로 대회를 포기한 선수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선수들이 기록을 깨기 위해 땀방울을 흘리는 동안 우리는 기꺼이 승자에 대해, 승부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응원을 보내는 것이 진정한 화답이 아닐까? 2024년 파리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에 앞서 이 주 후에 개최될 또 하나의 올림픽, 패럴림픽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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