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그때는 무성했고, 지금은 무상하다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그때는 무성했고, 지금은 무상하다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8.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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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젊은 시절을 되돌아볼 수는 있어도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 앞에서 장사 없다는 속담처럼, 나이가 들어가면 주름이 늘어가고 근육이 빠지고 관절은 삐걱대기 마련이다. 건강관리 정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해도 시간을 거스르는 건 불가능하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50-60대 아저씨 아줌마들이 20대 때 사진을 올리는 놀이를 벌이고 있다. 이런 유행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 지나온 날의 흔적을 올리며 ‘라떼는 말이야’ 이런 투로 아름다웠던 청춘을 장난스럽게 회고했을지 모른다. 그러자 친구나 동료들이 연달아 앨범을 들춰냈고 폼나는 사진을 올리며 일종의 릴레이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해본다.

나도 문학회 활동을 부지런히 했던 고딩 때와 20대 초반 사진을 올렸다. 당시의 문학회 모임을 아는 사람들 몇은 내가 다녔던 빵집들을 회상하며 정서를 공유했고, 일부는 머리숱이 많았던 시기에 대해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반추는 많은 것을 소환한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몇 개의 장면을 추적했다.

그녀의 집이 있던 골목길을 하염없이 돌며 마치 탑돌이 하듯 새벽을 맞았던 스물 한 살의 겨울은 춥지 않았다. 골목 안 허름한 벽에 기대어 서로의 숨소리를 느꼈던 스물 세 살의 호흡은 수시로 가빴다. 낡은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가로수를 발로 차며 낙엽을 맞았던 청년은 대문호가 될 것이라는 허언을 일삼으며 나무에 기대어 꾸벅꾸벅 조는 날이 많았다. 만일 누군가 깨우지 않았다면 사인이 동사라고 밝혀진 무모한 취객이 아주 잠깐 화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 다음 날 오후,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음이 떴다. 단순한 메시지라고 보기에는 내용이 제법 길었다. 조금은 설렘을 유발시킨 편지였다.

 

“처음에는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머리숱이 워낙 차이가 있어서요. 페북에서 본 옛날 사진과 얼마 전 복도에서 마주친 얼굴이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에는 참으로 먼 세월을 건너왔네요.

1985년 겨울 우리가 만난 곳은 충청은행 맞은 편에 있는 막걸리집 이었죠. 처음부터 거기에서 만난 것은 아니고 홍명상가 앞 다방에서 만나 바로 그쪽으로 옮긴 걸로 기억해요. 탁자는 가운데에 연탄이 들어가는 둥근 형태였는데 거기에 노가리를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었죠.

그날 입구 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어떤 사람이 직녀에게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주인아저씨는 시끄럽다며 노래를 하지 못하게 했지만 그 사람은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을 뿐, 끝까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날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그쪽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얘기를 우리 대화의 화제로 삼아 막걸리를 오랫동안 마셨어요.

그때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걸 뿌리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이후로 몇 차례 더 만날 수 있었을까요?. 방송국에서 글을 쓴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어제 올린 옛날 사진 보니까 그때 그 막걸리집이 생각나 몇 글자 남깁니다. 건강히 잘 지내시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시지를 읽고 곧바로 페이스북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녀도 20대 사진 올리기 놀이에 동참하고 있어 누군지 확인이 가능했다. 그러나 프로필에 있는 사진과 20대의 사진은 닮은 꼴이라고 볼 수 없었다. 미국수사드라마 CSI에 등장하는 형사들이 두 장의 사진을 입력해 한참을 분석해도 동일 인물로 판정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추정됐다. 결국 과학수사가 판명하기 힘들 만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20대 보다 최근 것으로 짐작되는 프로필 사진이 더욱 젊어 보였다는 게 여러모로 특이하게 다가왔다. 그녀의 메시지를 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어렴풋해도 미팅을 통해 만난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학교에서 몇 차례 얼굴을 익힌 동급생으로 단 둘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몇 가지 궁금증이 찾아와 답장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최근에 만난 적이 있나요?”

“저는 얼마 전 17층에 있는 사무실로 옮겼어요. 지난 주 엘리베이터에 둘만 탄 적이 있어서 그때 눈인사를 했는데...”

“아 그렇군요. 솔직히 저는 그쪽을 잘 알아보지 못해서요.”

“그런 것 같았어요.”

“근데 그쪽은 어떻게 절 알아보셨나요?”

“페북에서 글 올리는 거 간간이 봤는데 내용을 보면 이 건물에서 근무하는 걸로 나와서. 어렵지 않게 얼굴이 매칭되더라구요.”

“그럼 20대 미팅 얘기는 최근 올린 젊은 사진을 보고 떠올랐나 봅니다.”

대화방은 계속 이어갔다. 질문에 답을 듣는 동안 흩어진 퍼즐이 온전한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막걸리집에서 나와 집까지 같이 걸어가자고 했을 때, 정색하고 손사레를 치며 뛰어가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때는 왜 도망가듯 갔나요?”

“지금이야 말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말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

“그게 아니라 막걸리를 많이 마셔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노래 부르던 사람이 화장실에서 심하게 토하고 있어서...”

“그래서 어떻게 해결을...”

“우선은 빨리 헤어지는 게 급하다고 생각해 그냥 뛰어가다가 깜깜한데 찾아서 해결했죠 ㅋㅋㅋ”

만약에 직녀에게를 부르던 놈이 화장실에서 점잖게 볼일만 봤다면, 우리의 만남은 이어졌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20대에는 무성했는데 참으로 세월 무상이네요”

그녀가 화제를 바꿨다. 무성하다는 말의 속뜻은 쉽게 파악이 됐다. 수시로 들어왔던 말이기에 단번에 유추할 수 있었다.

“아, 머리카락 말씀이군요. ㅎㅎㅎ”

 

기회가 되면 오래된 막걸리집을 찾아보자는 말로 대화는 마무리했다. 그녀의 페북을 훑어봤다. 본인 얘기를 남긴 흔적이 많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사진을 보며 20대에 일찍 찾아온 노안이 50대에 어떻게 동안이 됐는지, 그냥 묻어두면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 수 있다는 추리로 이어졌다. 용기를 내 다시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얼굴과 지금의 사진 속 얼굴이 너무 다르네요. 세월을 거꾸로 먹는 분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네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때는 청순했고 지금은 우아한 청순이라고 할까요”

조금은 오글거리는 문장이었지만 사진이 전해준 인상은 분명했다. 다만 무상하다는 말에 대응하려는 도발심리가 꿈틀거렸다.

“성형외과 기술 덕분은 아니죠? ㅎㅎ” 이 문장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예의가 아닌 듯 싶어 메시지 작성을 멈추었다.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약속 날짜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늙어가는 사람들이 즐기는 20대 사진 올리기 놀이가 미적 판단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무성함이 무상함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타짜가 들었다면 아마도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인생 한 끗 차이죠.”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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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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