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인] 한문 가르치고 급식 배식하는 교장
[굿모닝충청인] 한문 가르치고 급식 배식하는 교장
충남 서산 부석중 길준용 교장 탈권위 행보 화제..."민주적인 학교 문화 확산"
  • 이종현 기자
  • 승인 2021.09.19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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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부석중 길준용 교장이 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길준용 교장 제공/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충남 서산 부석중 길준용 교장이 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길준용 교장 제공/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날이 갈수록 한자를 모르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사회구조가 영어를 더 많이 요구하는 탓도 있겠지만 한자 그 자체를 공부하기 힘들어하는 까닭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글자를 읽고 쓰는 기본문맹률은 1%에 가깝다. 그러나 문장을 읽고도 해석하지 못하는 실질문맹률은 75%에 달한다.

문해율이 낮은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한자 교육이다. 현재 초등학교 국어 교과용 도서의 절반 이상이 한자어로 구성돼 있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인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전교생이 50여 명에 불과한 충남 서산 부석중학교에서 교장이 직접 학생들의 한자 수업을 맡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길준용(61) 교장이다. <굿모닝충청>은 지난 17일 서산 부석중 교장실에서 길 교장을 만났다.

충남 서산 부석중 길준용 교장(왼쪽에서 네 번쨰)과 MTB 스포츠클럽에 참여한 학생들 모습. (사진=길준용 교장 제공/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길준용 교장은 MTB(자전거) 스포츠클럽도 만들어 직접 지도한다. (사진=길준용 교장 제공/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길 교장은 2학년과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각각 주당 1시간씩 직접 한문을 가르친다. 수업계획 수립과 평가, 성적 산출 등도 직접 맡는다. 사실상 교사 역할을 교장이 하는 셈이다.

학생·교사 수가 적은 것도 원인이지만, 길 교장은 학교 구성원으로 함께 하는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한문이 선택 교과이고 교사가 부족해 없앨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길 교장은 “우리말인 한글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학생들이 한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교사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2년 전부터 수업을 직접 하고 맡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반응은 어땠을까? 길 교장은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한문 수업을 거부하지 않아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길 교장은 MTB(자전거) 스포츠클럽도 만들어 직접 지도한다. 학생들과 자전거를 타고 부석사 등 지역 역사 유적지를 다니는 것은 힐링 그 자체라고 한다. 건강도 챙기고 향토사 교육도 하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충남 서산 부석중 길준용 교장이 교장실 책상에 설치된 '학생지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충남 서산 부석중 길준용 교장이 교장실 책상에 설치된 '학생지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사실 길 교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1982년 교직 생활을 시작한 길 교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989년 해직된 평교사 출신이다.

1994년 복직한 그는 2019년 공모를 통해 2019년 서산 부석중 교장으로 임명됐다.

길 교장은 “교단에서 잠시 떠났던 시기, 학교와 학생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복직 후 10여 년 간 부장 업무를 교사들의 어려움을 몸으로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부터 교장을 하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라는 점을 전제한 뒤 “입시경쟁에 매몰돼 본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선 교장이 돼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강조했다.

2019년 서산 부석중의 교장이 된 그는 학교 혁신을 위해 권위(?)를 내려놨다.

대표적으로 교직원 회의는 반드시 참석한다. 회의에서 결정사항이 교장 결재과정에서 번복되는 폐단을 막겠다는 취지다.

교장 사진을 졸업앨범 전면에 크게 배치하던 관행을 고쳐 교사·학생과 같은 크기로 게재했다.

학교 중앙현관에 교사와 학생들의 신발장을 함께 배치하는 등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도 만들고 있다.

충남 서산 부석중 길준용 교장. (사진=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충남 서산 부석중 길준용 교장. (사진=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점심시간에는 급식 배식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머리와 복장(교복) 등 학생들의 자율권도 모두 보장한다. 올해는 학교 홍보 영상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 게 하는 등 자발적인 학교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장실 책상에는 학생 개개인의 이름과 사진, 집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학생지도’도 설치했다.

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소통 등 길 교장의 탈권위 행보에 교사와 학생 모두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다.

길 교장의 목표는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학교라는 공간이 단지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닌 함께 생활하면서 편안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교사와 학생 모두 즐겁고 희망이 샘솟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교장이 먼저 변해야 한다”며 “권위를 내려놓고 교사·학생과 소통하는 교장이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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