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35] 부여 함양리에 비보림을 만든 이유...느티나무와 회화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35] 부여 함양리에 비보림을 만든 이유...느티나무와 회화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1.09.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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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원상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기자, 사진 채원상 기자] 아직 여물지 않아 수확하지 않은 벼와 작물들이 들판에 그대로 있고, 뜨겁고 따가운 햇살을 피한 느티나무 그늘은 시원했다.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의 한가위 연휴는 이렇듯 풍요로워 보였지만,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아 쓸쓸했다.

인접한 백제문화단지나 리조트, 박물관들은 연휴를 맞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도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관람객으로 넘쳐났다.

그러나 햇볕이 좋아 붙여진 함양리(咸陽里)의 보호수 주변에서 아이들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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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암에서 은산으로 가는 길에 은산천을 만나고 그 너머에 위치한 함양리는 태봉산을 중심으로 말밥굽 형상의 길지라서 80년대까지 매년 산제사를 지냈던 곳이라 한다.

다만 태봉산 좌우가 터져 완벽한 명당이 아니어서 임진왜란 직후 함양리에 정착한 기계 유씨는 마을을 조성하면서 띠처럼 길게 숲을 만들어 명당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고 박동진 교수의 ‘역사와 전설로 만나는 부여의 나무이야기(2017년)’에서 언급했다.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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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마을에는 이런 형태의 마을숲을 ‘비보림(裨補林)’이라 하고 풍수지리상 길지 또는 명당의 조건에 부족한 입지에는 숲과 나무를 심어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했다.

15~19세기, 농업을 근간으로 새 세상을 연 조선은 땅을 개간하고 수리시설을 확충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강력한 농업정책을 실시했다.

인구는 증가하고 개간할 땅은 더욱 필요하여 그동안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던 저지대의 비옥한 땅에 마을과 문전옥답을 만들어야 했다.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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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호랑이의 공격은 끊이질 않았고, 저지대로 마을을 만들고 비옥한 논을 만들고자 했던 노력으로 수인성 전염병인 이질에 쉽게 노출됐다.

이 시대의 명당 마을은 물이 넘치지도 마르지 않아 안정적으로 주식이 많이 생산되는 것을 소망했다.

외부에서 나쁜 액운이 들어오지 않고 좋은 기운은 빠져나가지 않을 ‘수구막이’ 또는 ‘비보림’이 필요했다.

사진=채원상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단순히 나무만 심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늠름하고 강건한 기운이 마을에 퍼졌으면 하는 소망과 기도를 담을 상징적인 나무가 필요했다.

부챗살처럼 하늘로 뻗은 느티나무는 강인한 의지와 조화로운 질서를 상징하고, 회화나무는 학문하는 선비와 관계가 깊고 길상(吉祥)의 나무로 알려져 있으니 마을의 안녕과 풍요는 이만한 나무가 없었을 것이다.

두 나무는 ‘괴(槐)’라는 한자도 함께 썼었던 적이 줄처럼 함께 심을 나무에 적당했을 것이다.

함양리의 느티나무와 회화나무의 나이는 450살 전후이다.

마을이 생길 때 조성한 나무도 있고, 조성 뒤에 추가적으로 심은 나무도 있었다.

최근에 죽은 나무는 이식해서 그 사이를 메꾸었다.

함양리에 오기 위해서는 마치 도시 변두리의 생산시설 단지처럼 보인 하우스로 덮인 구간과 도시 공원처럼 깔끔하게 꾸며진 세계문화유산 지역을 통과했다.

부여의 농촌 풍경이라기에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함양리는 보호수를 통해 450년 전의 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보호수를 아끼고 지키려던 선대의 역사가 가을의 시골 정취를 더욱 짙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이제 추석이 지났으니 만추와 겨울의 풍경만 남았다.

붉게 타오른 노을과 가을 단풍은 햇빛이 좋은 함양리를 다시 오게 하는 힘일 것 같다.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 313-1 : 느티나무 2본 462살(2021년 기준)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 313-1 : 느티나무 1본 432살(2021년 기준)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 313-1 : 회화나무 1본 420살(2021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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