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도 예술로 남는다”
“사람은 가도 예술로 남는다”
  • 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
  • 승인 2021.10.0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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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굿모닝충청)
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이 남학생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누구나 자유롭게 교육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녀들이 있다. 지난 달 서울 인사동에서는 ‘2021 여권통문의 날 기념전’이 열리고 있었다. 123년 전에 여성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문제 삼고 배움의 권리를 주장한 여성 300명의 목소리가 ‘여권통문(여학교설시통문)’으로 발표(황성신문에 게재)된 것도, 양성평등주간이 9월 첫째 주인 것이 ‘여권통문의 날(9월 1일)’을 기념한다는 것도 사실 이번에야 알게 됐다. 전시에 참여한 30인의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들을 기억하고 기록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김순임 작가는 외할머니의 얼굴을 ‘울’소재와 바느질 방식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망치나 폭력으로는 깨어버릴 수 없는 힘을 가진(작가의 말 중)” 존재의 연약함 속에 시간이 쌓여 만들어 낸 견고하고도 환한 내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문화예술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사회적 가치 중 하나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잊힐 뻔한 소중한 기억이 새롭게 소환된다. ‘사람은 가도 기억은 남는다’

‘나’를 증명하는 가장 본질은 무엇일까? 내가 겪었던 경험,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잃고 난 후에도 과연 나는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공간을 찾아서(안정희, 2021, 이야기나무)>에서 작가는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나의 정체성을 말해준다’고 이야기한다. 당연히 그 기억은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란 다시 말해 ‘기억공동체’인 거고, 이런 기억은 세대를 이어 전달해야 할 기록이 된다. 영화 <동주>를 보고서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처럼 경험하지 못한 과거일지라도 기억은 기록됨으로써 현재의 삶에 뚜벅뚜벅 걸어 나와 말을 걸기도 한다.

특히 문화예술이 갖는 진지한 힘은 기억을 역사와 연결 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다시 창조해내는 데 있다. 세종시문화재단이 한글날을 맞아 두 건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의미를 새겨볼 만하다.

박연문화관 갤러리에서 개최하고 있는 전시 <한글, 점으로부터 빛>은 전시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글이 예술적 가치를 담아 무한히 변화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애민정신’으로 창제된 한글이 글자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창작의 소재가 되어 온 결과 회화와 조소, 설치, 공예, 서예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어떻게 예술적으로 확장되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작가들은 현대인의 인사말과 전통한옥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결합한 설치작품을 통해, 오방색과 동서고금의 노래를 재해석하여 고유한 소리에 한글의 형태를 담은 작품 등을 통해 더 이상 하나의 글자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는 한글의 예술성을 표현해 내고 있다.

세종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세종대왕과 음악, 여민락>은 4년 전, ‘세종의 음악’을 ‘전시’로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어, ‘18년 <황종>, ’19년 <치화평>, ‘20년 <취풍형>에 이어 올리는 4회 시리즈의 마무리 전시다. 조은정 전시감독(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이 기획의 글에서 이야기하듯 ‘여민락’을 평화와 공생의 가치로 재해석하여 코로나19 팬데믹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갖고자 마련되었다. 결국 ‘여민락’은 하나의 음악에 머물지 않고 10명의 현대 작가들의 해석과 작품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일에 대해, 나아가 우리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시민 관람자들이 스스로 답하는 시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번 주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한글주간’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한글 관련행사들이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소규모로,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종시의 ‘한글사랑도시 조성 사업’ 시책과 연계하여 진행되는 두 개의 전시회가 시민의 관심과 더불어 한글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시인 박인환은 그의 시 <세월이 가면>에서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기억을 보존하고 재창조하는 문화예술의 힘을 알기에 이렇게 바꾸어 말해도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더라도 예술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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