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치유의 길…천주교 순례길5] 삶을 되돌아보는 길
[충남 치유의 길…천주교 순례길5] 삶을 되돌아보는 길
청양 다락골 성지~보령 충청수영성~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 이종현 기자
  • 승인 2021.10.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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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치유와 힐링이 되길 기대하며 충남도내 불교와 천주교 순례길 15구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충청도 내포지역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 있어 ‘신앙의 못자리’로 평가받는다.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의 노력으로 복음의 씨앗이 퍼져나갔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신도가 순교의 길을 걸었다.

한국인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는 청양 다락골에서 태어났다.

빗방울이 떨어지던 지난 7일 최양업 신부의 생가터와 무명 순교자의 줄무덤이 자리 잡은 ‘다락골 성지’, 충청의 뱃길을 지키던 관방 유적인 ‘충청 수영성’, 다섯 성인의 처형장이 된 ‘갈매못 순교성지’가 포함된 천주교 순례길 5코스를 걸었다.

청양 다락골 성지 항공사진.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항공사진.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쉼터 ‘청양 다락골 성지’

고추와 구기자의 고장인 청양은 예로부터 인심 넉넉하기로 이름난 지역이다. 한편으론 천주교 박해의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청양과 보령의 경계인 대명산 골짜기에 자리한 다락골 성지는 잔인했던 박해의 상황을 증명하는 곳이다. 1893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곳이기도 하다.

청양 다락골 성지 입구.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입구.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다락골 성지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생가터인 ‘새터’와 150년 전 병인박해 때 홍주(홍성) 감영과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무명 순교자들이 묻힌 ‘줄무덤’으로 조성돼 있다.

다락골 성지 입구는 소박하면서 넓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기도 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기도공원이다. 그냥 넓은 공터다. 무명 순교자 십자가상 순례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양 다락골 무명 순교자 십자가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무명 순교자 십자가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맞은편에는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성당에서는 ‘팔 없는 십자가상'을 볼 수 있다. 서로 사랑하고 이웃에 봉사하며, 섬기는 삶을 살자는 의미다.

2차 세계대전 후 성당의 잔해를 복구하던 중 팔이 잘린 예수상이 발견됐는데, 주민들이 팔 없는 예수상을 그대로 세우고 자신들이 예수의 팔이 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청양 다락골 성지 대성당 내부.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대성당 내부.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안내판을 따라 줄무덤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짙은 녹음의 숲속으로 들어가자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높게 솟은 대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준 탓에 어둡기까지 하다.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순교자를 기리는 무명 순교자 상‘죽음’과 ‘부활’상을 만나게 된다.

청양 다락골 성지 무명 순교자 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무명 순교자 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두 손이 결박당한 모습이 보였다. 꽉 쥔 주먹 안에 굳건한 신앙의 기운이 느껴졌다.

줄무덤까지 14처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둥그런 항아리로 십자가의 길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순간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순교자들이 박해를 당하면서도 웃으면서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 건 커다란 항아리 속처럼 하느님의 보호 안에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청양 다락골 성지 십자가의 길과 예수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십자가의 길과 예수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줄무덤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줄무덤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낮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제1·2줄무덤제3줄무덤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줄묘라고도 불리는 이곳의 줄무덤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홍주(홍성) 감옥에 갇혀 있다가 처형당한 이곳 출신 교인들의 무덤이다. 살아남은 교인과 가족, 친지들이 밤사이 처형당한 이들을 몰래 옮겨 매장했다고 전해진다.

제1줄무덤에 14기, 제2줄무덤과 제2줄무덤에 각각 10기와 13기 등 모두 37기에 달하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모셔져 있다. 무덤 가까이 서니 당시의 절박했던 시대의 아픔이 떠올라 사뭇 경건해진다.

청양 다락골 성지 제1줄무덤.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제1줄무덤.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제2줄무덤.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제2줄무덤.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제3줄무덤.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성지 제3줄무덤.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앞서 다녀온 성거산 줄무덤과 조금 달랐다. 줄 맞추어 있었던 성거산 줄무덤과 달리 이곳은 듬성듬성 있고 무덤마다 비석도 있었다.

비석에는 이름 대신 ‘무명 순교자의 묘’라고 쓰여있었다.

제1줄무덤부터 제3줄무덤을 돌아 나오는 길은 총 1km 남짓한 거리여서 가볍게 이동할 수 있다. 특히 제1줄무덤까지마 계단 등 오르막길이고 나머지는 내리막길이라 걷기에 부담이 없다.

줄무덤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새터성지’라고 불리는 최양업 신부 생가터가 있다.

청양 다락골 새터 성지 십자가의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새터 성지 십자가의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새터 성지 최양업 신부 생가터.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청양 다락골 새터 성지 최양업 신부 생가터.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좌측으로는 십자가의 길을 마련해놨고, 우측 계단을 오르면 최양업 신부의 동상과 장독대 몇 개가 옹기종기 놓여있는 생가터를 볼 수 있다.

다락골은 과거에는 교우들이 숨어들 정도로 산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람의 왕래가 비교적 잦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달을 안은 골짜기’라는 어원답게 한없이 평화롭게 보이지만 이곳은 줄무덤 성지라는 다른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형언할 수 없는 진한 슬픔을 간직한 곳이다.

보령 충청수영성 항공사진.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보령 충청수영성 항공사진.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충청의 뱃길 지키던 유적 ‘보령 충청수영성’

벼가 노랗게 익어 가는 가을 들판을 따라가다 보니 코끝에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것이 바닷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저게 충청수영성이구나!” 하고 단번에 알 수 있도록 돌로 쌓아 놓은 홍예문이 눈에 들어온다.

보령 충청수영성 서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충청수영성 서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충청수영성은 오천항 옆 야트막한 언덕에 있다. 1510년 수사 이장생이 돌로 쌓은 성으로 조선시대 초기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원형이 많이 훼손돼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인 서문을 비롯해 진휼청, 영보정, 장교청(객사), 내삼문, 청덕비 등만 남아 있다.

보령 충청수영성 성곽.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충청수영성 성곽.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충청수영성 성곽과 진흥청.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충청수영성 성곽과 진휼청.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서문 주위로는 울창한 나무가 주위를 감싸고 있고, 동백나무가 그 앞을 빛내고 있었다.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참 평화로웠다.

그 풍경이 멋스러워서인지 충청수영성을 오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포착됐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이기도 하다.

보령 충청수영성 영보정.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충청수영성 영보정.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곽을 끝까지 따라 올라가면 영보정이 보인다. 정약용 등 시인 묵객들이 풍경을 즐기며 시문을 남기기도 한 곳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정자로 일컬어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보령 충청수영성에서 바라본 오천항.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충청수영성에서 바라본 오천항.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충청수영성은 다른 어떤 성보다 아늑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힘들게 오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탁 트인 오천항의 풍경은 장관이다. 답답한 마음을 씻겨주는 것 같았다.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항공사진.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항공사진.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한국 유일 바닷가 순교지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갈매못 순교성지는 충청수영성에서 승용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성지 입구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십자가의 길 14처가 늘어서 있다. 바다처럼 넓은 품으로 세상 모두를 포용하려는 듯 예수상이 팔을 벌리고 서 있다.

보령 갈매못성지 예수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성지 예수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갈매못 순교성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닷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의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무명 교우들이 목숨을 잃었다. 병인박해 때 한양(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충청수영성으로 이송된 다섯명의 성인과도 연관이 깊다.

다섯 성인은 다블뤼 주교와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장주기 요셉, 황석두 루카다.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전경과 다섯 성인의 동판.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전경과 다섯 성인의 동판.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다섯 성인 동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다섯 성인 동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다섯 성인은 먼 이국땅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다 이곳에서 효수형을 당했다. 효수형은 목을 베고 군문에 매다는 형벌을 말한다.

명성황후의 국혼이 가까워진 탓에 불길의 상징인 피를 보지 않기 위해 한양이 아닌 이곳에서 효수형을 집행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형장에서도 당당했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며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첫 매장터.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첫 매장터.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잔디 가운데에 있는 바위가 이곳이 다섯 성인의 순교터임을 알린다.

다섯 성인과 무명 순교자들의 피가 바닷가 모래사장을 짙붉게 물들여 놓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되뇌면서도 죽음과 바꾼 그들의 신념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된다.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순교 성인비와 복자비, 소나무.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순교 성인비와 복자비, 소나무.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순교터 옆에는 순교 성인비복자비, 소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었다.

안내문을 읽어 보니 2016년 프랑스 순례단이 갈매못 성지를 방문했는데, 이때 순교의 땅에 고향의 흙을 더해 성인들의 순교를 기리면서 심은 나무라고 한다.

고개를 돌리니 기념관(소성당)과 그 앞에 마련된 야외제대가 눈에 들어왔다.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승리의 성모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승리의 성모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야외제대 벽면에는 순교한 다섯 성인의 사진과 함께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라고 적힌 명판이 있었다.

무거운 감정을 추스르고 순교터와 마주한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는 또 다른 십자가의 길 14처가 펼쳐져 있었다. 그 뒤로 가슴이 시릴 정도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대성당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대성당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대성당 가는 길, 십자가의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대성당 가는 길, 십자가의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대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다섯 성인들의 흉부상승리의 성모자상도 만날 수 있다.

대성당 입구 벽면엔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라는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좌우명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너무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대성당 내부.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대성당 내부.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조용히 기도와 묵상을 하고 있었다.

성인들과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천주교 순례길 5코스를 걸어보자. 종교와 상관없이 한 해를 정리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걸어도 좋을 것 같다.

▣ 청양 다락골 성지: 청양군 화성면 다락골길 78-6

▣ 보령 충청수영성: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61-1

▣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 [충남 치유의 길]은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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