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자유와 궁극적인 진리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자유와 궁극적인 진리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1.10.27 15:2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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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1932~2016)가 52세 때 발표한 첫 장편소설입니다. 에코는 이탈리아인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인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는 중세 교부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철학과 중세 역사로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았으며 거의 10개에 가까운 언어를 아는 언어의 천재이며 가장 저명한 기호학자입니다.

추리소설이면서 역사철학 소설

1980년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이면서 중세 시대와 관련된 탁월한 철학소설이기도 합니다. 외형상 추리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중세의 신학과 철학 등 서양 고전의 다양한 원용과 함께 당시 사람들이 인식하던 것들을 모아서 입체적으로 형상화하여 소설화하였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이 이해가 쉽지 않은 책입니다.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

이 소설의 처음 제목은 소설의 내용과 유사한 《수도원의 범죄 사건》 이었으나 후에 《장미의 이름》으로 책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저자는 그의 《장미의 이름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화자(話者)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화자가 해석하고 들어가는 글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창조해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사고를 하나로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에코는 책 속에서 마지막에서 오직 한마디 ‘장미’란 단어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줍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폐허된 수도원을 찾아서 적막한 광경을 보고 관찰자 화자인 아드소가 한말입니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교황 권위의 쇠퇴와 교단의 혼돈의 시작

《장미의 이름》에서는 바로 14세기 중세 교회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14세기로 흔히 ‘암흑기’라고 불리는 기독교 중심인 중세 시대입니다. 중세는 신이 약속한 천국이 최상의 가치로 간주되는 시기였습니다. 그 시대는 교황이 황제와 대립하며 세속적 권력마저도 장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중세 말기로,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교황의 세력이 약화되고, 황제의 권위가 점점 강해져 가고 있었으며, 교황은 로마가 아닌 프랑스 아비뇽에 사실상 유폐된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1316년 교황으로 선임된 탐욕스러운 요한 22세에 이르러 교리 다툼으로 교황청과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불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소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부와 권력을 가진 교황청에 맞서 청빈 사상과 정결을 강조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교황과 대립하는 황제 측에 속하였습니다. 

교황 요한 22세
교황 요한 22세

더군다나 교회 내 종파 간 분쟁과 이단에 대한 심판, 성직자들의 타락 등 복합적인 일들이 일어나서 교황의 권위는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루트비히 황제는 경쟁 국가 프랑스의 영향을 받는 이재에 밝은 교황 요한 22세를 폐위시키고 교황의 승인 없이 황제가 되었습니다. 

7일 동안의 연쇄 살인사건의 시작

이 소설은  화자(話者)인 베네딕트회 소속인 멜크 수도원의 젊은 수련사 아드소가 죽을 무렵, 스승 윌리엄과의 옛 일을 회상하며 글을 쓴 것처럼 설정하였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1327년 이탈리아 북부, 웅대하고 움침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칼날같은 눈보라가 치는 날, 수사 아델모의 시체가 본관 옆 가파른 벼랑 아래에서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때는 1327년 11말경 겨울로 ‘요한 묵시록’의 예언대로 연쇄 살인 사건은 7일 동안 일어납니다. 

전직 종교재판관으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이며 박학다식한 프란시스코 수도사 윌리엄은 황제로부터 밀명을 받고 멜크 수도원의 젊은 베네딕트회 수련사를 데리고 이곳을 방문합니다. 프란시스코 수도회와 교황청, 다른 교단들의 반목이 심화되자 이를 해결키 위해 이 수도원에서 각 교단이 모여 토론을 하기로 합니다.

수도사 윌리엄과 제자 수련사 아드소
수도사 윌리엄과 제자 수련사 아드소

이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회에 소속으로 황제에게 충성하면서도 양다리 외교 수완이 대단해서 교황청으로부터도 별로 미움을 받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수도원에는 교황의 박해를 피해 프란체스코 수도사였다가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들어온 우베르티노라는 엄격주의파로 투사형의 소형제파 지도자가 있었고,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고 평등주의를 주장하고 사유재산을 버릴 것을 주장하는 돌치노파 수도사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교황의 적이라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리고 있었고 이 수도원에서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레미지오와 살바토레는 체포되여 베르나르도의 이단 심판을 받습니다.

베네딕트회 수도원장들은 대체적으로 황제의 권위를 옹호하고, 게다가 교황권에 대항하는 세력에도 우호적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이 수도원의 원장은 엄청난 양의 중세 시대의 장서를 소장하고, 각종 문헌을 보존하고, 학문을 연구하고 전파하고 재생산하는 일을 합니다. 

베네딕트회 수도원장
베네딕트회 수도원장

원장은 윌리엄 수도사에게 이 사건을 의뢰합니다. 장서관(藏書館)에서 일하던 수도사 아델모가 시체로 발견된 경위를 말하면서 교황 측 조사관이 오기 전에 사건의 전모를 밝혀 달라고 합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교황측은 이 수도원에 있는 이단자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교황 측 조사관인 베르나르  기에게 수도원의 지휘권을 넘겨야 합니다.

윌리엄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로, 영국의 철학자이면서 자연과학자 베이컨(Roger Bacon, 1214~1294)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셜록 홈즈 같은 윌리엄은 수도원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아델모 등의 죽음을 추론해 나갑니다. 

로저 베이컨
로저 베이컨

《장미의 이름》을 읽기 위해서는 각 장마다 나오는 이 수도원의 업무시간과 종사자를 알아야 합니다. 수도원이 위치한 북부 이탈리아의 11월 말쯤은 오전 7시 30분 전후에 해가 뜨고, 오후 4시 40분 전후에 해가 집니다. 보통 오후 7시 전에는 모든 수도원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이 수도원은 수도사가 60명, 밥을 짓고 물을 긷는 일을 하는 불목하니가 150명 정도 있습니다. 

시학 제2권 희극에 집착한 수도사 호르헤

수도사 호르헤
수도사 호르헤

영민한 월리엄은 수도원장이 미궁인 거대한 장서관만은 조사대상에서 제외하여 달라고 하지만, 40년 동안 이 수도원의 주인 노릇을 한 호르헤라는 이 늙은 맹인 수도사가 저지른 살인사건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그의 살인방법은 책의 한장 한장 마다 독을 묻혀놓아 그책 그쪽을 펼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독에 중독돼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 책은 양피지로 딱딱하고 두꺼워서 읽을 때 엄지와 검지에 침을 묻혀서 책장을 넘겨야 했습니다. 

수도사란 누구입니까.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인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잔혹한 살인을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인의 동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윌리엄은 그것이 수도원의 장서관 도서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시학》과 관련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장서관의 각 소장실은 세계의 모습에 따라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시학》 제2권의 유일한 필사본은 이 수도원 장서관의 비밀의 방인 ‘아프리카의 끝(finis Africae)’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연쇄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의 유일한 필사본이 무엇이지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접근하여 그 책을 읽다가 호르헤가 미리 책장에 묻힌 독이 혀에 묻어서 죽음을 당하거나 이와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양피지에 그림을 그려 넣는 일을 했던 자살한 아델모, 그리스어 번역사이지만 무슨 서책인지 모르는 무식한 베난티오, 아델모와 동성애를 나누고 세베르노로부터 서책을 받은 모사꾼 기질의 멍청한 보조사서 베렝가리오, 호르헤가 가진 독약을 보관한 시약소에서 일하고 서책을 훔친 본초학자 세베리노, 호르헤의 지시를 받고 천구의로 내려쳐서 세베리노를 죽이고 서책의 독에 죽은 무식한 사서 말라키아, 호르헤에게 장서관의 비밀을 요구하다 장서관으로 올라가는 길목 밀실에 갇혀 죽은 수도원장 등입니다.

웃음의 가치, 그리고 배신자 처단

《시학》 제2권은 웃음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가정하였습니다. 웃음이라는 것은 삶을 긍정하는 표시이고, 두려움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함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의 벗어남과 행복한 사후세계의 추구라는 신앙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부정하게 되는 요소로 작용하고, 이것을 두려워하여 그들은 그것을 막고자 시학 제2권과 더 나아가서는 웃음이라는 것을 이단으로 치부하게 된 것입니다. 

심판받을 인간이 웃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닙니다. 당연히 생활에서 금욕적이고 경건한 분위기를 띠게 됩니다. 문제의 책 《시학》 제2권은 ‘웃음은 예술이고 식자(識者)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호르헤는 그 책 속에는 죄 많은 인간이 웃는 순간 하느님을 두렵게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해방되는 지혜가 들어있다고 보았습니다. 신의 충실한 종인 호르헤는 신에게 불경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2권을 통하여 웃음의 가치를 알게 된 배신자들을 처단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동료들에게 아예 웃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호르헤 수도사가 맹인으로 나오는 것은 책을 읽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눈을 멀게 하여 새로운 지식 추구에 대한 억압과 현재의 지식 보존에 대한 그의 집착을 보여주려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시학》 제2권 희극은 괴물일지 모른다는 의문이 생깁니다. 

에코가 존재하지도 않은 《시학》 제2권 ‘희극’을 내세운 이유에 대하여 사회학자 김호기 교수는 사회학적 관점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비극’을 높이 평가한 《시학》 제1권에 대한 저항 내지 해체를 함축하며, 생각의 복수성과 상대성을 강조하는 포스트 모던이즘(postmodernism)을 옹호하기 위한 고도의 지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

에코의 원작을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의 한 장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느님을 희롱했다고 말합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왜 아리스토텔레스에 주목한 것일까요? 저자는 그의 철학이 중세 시대에서 환영받지 못한 점을 눈여겨본 것 같습니다. 

플라톤은 초월적 존재인 이데아를 강조해서 중세 신학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중세에선 이 이데아가 곧 신으로 치환되어 재생산되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시적인 비유이며 말장난일 뿐이다’라고 혹평했습니다. 실재는 개체로부터 동떨어져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실재는 각각의 개체성에서 특정한 특징들을 뽑아냄으로서 나타나는 어떤 공통점에서 대한 인식일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마치 ‘장미’라는 이름도, 장미의 이데아와 같은 실재가 아니라 그저 조금씩은 다르게 생긴 각각의 장미들이 가진 개체성에서 나온 개념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성경 《고린도 전서》를 원용하여 에코가 이 소설의 프롤로그에 쓴 말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관한 여러 이슈들 속에 처음부터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해서 진리는 우리 앞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상의 허물을 통해 그 진리를 편편(片片)이 볼 수 있을 뿐이다.” 

신은 이성으로 설명 가능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은 하나같이 기독교가 수 세기에 걸쳐 축적했던 지식의 일부를 먹어 들어갔소. (......) 보에티우스라는 자가 이 철학자의 서책을 극찬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의 신성은 인간의 희문(戱文)으로 변질되면서 삼단논법의 희롱을 받아왔소. 〈창세기〉가 우주창조의 역사를 모자람 없이 설명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이 우주를 무디고 끈적끈적한 질료로 재구성(再構成) 하였고 아랍인 아베로에스는 세계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고 망발했소. (....) 한 수도사(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의 꾐에 빠져 하느님을 자연의 이치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불렀소.” 

호르헤는 월리엄의 면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스승인 로저 베이컨 등 그리스 철학을 연구한 자들을 준엄하게 비판합니다. 호르헤는 “그대의 스승 로저 베이컨이 자연의 경이(驚異)가 곧 천국이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소.”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월리엄은 ‘우주엔 질서가 없다’라는 말로 응답했습니다. 이는 우주가 법칙성과 개념성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기에, 인간의 사유 안에선 도저히 질서를 찾을 수 없는 뜻입니다. 로저 베이컨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로써 철학으로 기독교 교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공부하고, 관찰과 경험적 방법으로 자연과학을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는 중세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었던 기독교 신앙에 철학을 이용하여 이성적 근거를 부여하였습니다. 당시 그에게 늘 ‘이단’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습니다. 

우주에는 질서가 없다면 그럼 신은 없는 것이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중세의 스콜라 철학에 녹아들면서 13세기에 극적으로 부흥기를 맞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신학대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신학과의 관계에서 절충안을 내놓습니다. 

신(神)의 존재와 같은 진리는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니 믿음으로서 도달하는 ‘신앙의 영역’라고 규정했고, 반대로 당장 눈에 보이는 감각적 자연들은 이성의 힘을 통해 그 법칙성의 획득이 가능한‘ 과학과 철학의 영역’이라고 봤습니다. 

지나친 믿음은 괴물이 될 수 있다.

저자 움베르토 에코는 진리는 본래 하나만이 아니라 복수로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신념만이 옳다는 오만한 생각에 타인의 생각과 이념에 대해 거침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질타합니다. 

인류 역사상 절대적 믿음에 대한 대가는 그 무엇보다 처절했고 가혹했습니다. 오늘날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조주의자, 근본주의자의 만행은 가히 살인적입니다. 그들은 자기 멋대로 진리를 해석하여 인간을 위협합니다.

호르헤는 자신의 살인행위가 진정한 진리와 하느님의 왕국을 위한 일이라고 믿는 무서운 광신자입니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인 그는 필요하다면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나름의 진리를 지나치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것이 바로 악마다.”

유용한 진리와 자유로워지려는 정신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는가?” 

이 소설의 말미에 윌리엄이 아드소에게 “그래, 유용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괴물과 싸우는 이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프리드니히 니체
프리드니히 니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속하는 단계가 찾아오면 그 순간에 과감하게 그 자리에 내려놓고 다른 창조적 발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니체의 가르침대로 자기 시대의 보편적 진리로 간주되던 모든 토대들을 파헤쳐 재검토하고, 자신을 길들여온 모든 이념과 습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사부님이 호르헤을 윽박질렀다. “그래 봐야 다 부질없어. 이제 끝났어. 나는 영감을 찾아내었고, 서책을 찾아내었어. 다른 형제들은 개죽음을 당했고······”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상징하듯 인간이 만들고 위선으로 덧씌운 중세를 지배했던 종교의 상징인 수도원이 불타버립니다. 윌리엄이 시학 2권을 뺏으려 하자 호르헤가 독이 묻은 그 서책을 찢어서 입에 넣어 씹어 삼키며 도망가다가 책 더미 위로 등잔이 떨어져 불이 일어나고, 기름이 엎질러지면서 불길은 양피지로 번지고, 호르헤는 그 불길에 타서 죽고, 화재는 진화할 수 없을 만큼 커져서 결국 3일 만에 수도원이 전소됩니다. 장서관이 화마의 제물이 된 것은 장서관이 지켜온 신비 때문에 그 구조가 밝혀지지  않은데다가 출입구가 극히 적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먼저 보기를 권하며

시간은 걸렸지만 이 책은 유익했습니다. 처음 100쪽까지는 저자가 대충의 설계를 보여주는 시간이기 때문에 지루했지만, 400쪽이 지나면서 흥미가 더해져 저절로 속도가 붙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는 이 《장미의 이름》을 최고로 재미있는 책으로 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쇼 코네리 주연의 《장미의 이름》 영화를 보고 읽기를 권합니다. 당시의 철학과 종교가 어우러져서 어렵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에코는 이 소설을 준비하기 위하여 2년 정도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등장인물이나 공간을 계획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언어를 붙였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엄청난 노력의 산물입니다. 《장미의 이름》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그만큼 지적 취향입니다. 역사학적, 철학적, 기호학적, 그리고 문학적 시각에서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이루어지고 습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 고 이윤기(1947~2010)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고치고 또 고친 그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혼이 들어간 번역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장미의 이름》을 통하여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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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스-비 치실 [ Cool'-B 치실 ] 2022-04-26 11:23:49
좋은글 입니다.너무 어려워 작가의 생각을 짐작만 할뿐이네요 번역하신분 얼마나 고생 하셨을까요?...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해요 2021-10-28 12:55:13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꼭 읽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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