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46]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살구나무...서산 운산면 살구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46]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살구나무...서산 운산면 살구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1.11.24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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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사진 채원상 기자] 서해안청소년수련원 입구에 들어서면 살구나무에 시선을 뺏긴다.

4월의 수련원은 봄꽃과 싱그러운 메타세쿼이아 모습만으로 봄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지만, 수련원 입구부터 연분홍빛으로 물든 살구나무는 군계일학처럼 모든 시선을 빼앗아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애국가 다음으로 국민 애창곡인 ‘고향의 봄’의 살구꽃.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이 노래는 경술국치 이전의 조선을 그리워하던 독립운동가의 심정을 그렸던 노래로 유명하다.

풀과 나무, 흙으로 만들어진 삶터에 곤궁한 생활이지만 마을마다 화사하게 핀 살구꽃은 우리 민족에게 잊지 못할 풍경이며, 많은 영향을 주었던 나무 중의 하나였다.

“살구 열매가 많이 달리는 해에는 병충해가 없어 풍년이 든다”

처참한 보릿고개 시기에 백성들은 살구꽃을 보고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거나 일 년 농사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입신양명을 꿈꾸는 선비들은 음력 2월에 개최되는 과거(전시, 展試)에 급제하고 삼일유가(三日遊街)로 친인척에게 금의환양하는 꿈을 꾸는데 이때를 상징하는 ‘급제화(及第花)‘가 살구나무였다.

“살구나무가 많은 마을에는 염병이 못 들어온다”

짙은 녹음으로 바뀌는 5~6월의 살구나무의 노란 열매는 보릿고개를 간신히 넘긴 백성들의 병약한 몸을 치료하는 약용식물이 되거나 배고픔을 달래주는 구황식물이기도 했다.

이후 여름을 지나 단풍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가을, 11월의 살구나무는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잎을 떨구고 화려한 봄을 위해 조용한 겨울을 보낸다.

살구나무는 사람뿐만 아니라 벌레들도 좋아한다.

그래서 백 살이 넘는 과일나무는 대개 벌레 때문에 병이 나거나 나무가 썩어 비바람에 쉽게 부러져서 백 년 이상의 과일나무를 보는 일은 흔치 않다.

수련원 중앙에 자리 잡은 살구나무는 현재 208살이다.

올해 살구나무의 꽃과 열매는 바닥에 수북이 쌓일 만큼 많이 피고 달렸고, 단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봄꽃을 흩날리거나 잎을 떨구는 모습에서도 위풍당당할 만큼 건강해 보였다.

아마도 관심과 함께 사람들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던 나무 같았다.

서해안청소년수련원의 관계자에 의하면 살구나무 보호수는 수련원 생기기 이전의 화전민들이 심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아마도 나무 연륜을 고려한다면 살구나무는 일제강점기를 넘어 구한말 이전부터 정착한 화전민과 함께 커왔던 것으로 보인다.

약도 없고 보릿고개를 이겨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구나무는 주민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기에 적합한 나무였고, 당연히 주민들의 관심과 보살핌에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을 것 같다.

이제 약과 식품 발달로 살구는 사람과의 관계가 느슨해졌으나 208살의 살구나무는 보는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여전히 아름다워 다시 보고 싶은 나무가 되었다.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394-1 : 살구나무 1본 208살(2021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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