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의 궁리》 국가는 어디에 있나요
《파피루스의 궁리》 국가는 어디에 있나요
- '사람이 먼저'라고 했던 국정운영의 철학은 어디로 갔는가?
  •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04 15: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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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직을 내려놓은 조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공동상임선대위원장.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는 4일
〈결국 직을 내려놓은 조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공동상임선대위원장.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는 4일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악마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데도 이들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 하나 없는 게 무슨 문명국가냐"며 "'사람이 먼저'라고 했던 국정운영의 철학은 어디로 갔느냐"고 문재인 정부에게 따져 물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국가'는 어디에 있나요》
                                                         
-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

지난 봄 어느 이른 아침 소방차 한 무리가 시골의 적막을 깨며 멀리 들판의 농로를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알고보니 남한강 안의 섬에 불이 난 것이었는데, 마치 빨간 소방차가 '달려가며 내가 도와줄게, 내가 구해줄게 조금만 기다려요' 하는 것처럼 느껴져 울컥했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와 소방관들이 달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난 그럴 때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구나' 감동받는다.

내가 곤경에 처하면 경찰이 달려와 도움을 줄 거라는 믿음,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와 훈련된 소방관들이 달려올 거라는 믿음, 법치국가에서 법이 나를 보호해 줄 거라는 믿음은 시민으로서 국가의 존재를 느끼는 기제다. 국가와 개인 사이의 사회계약이 작동되는 모습은 매우 아름답다.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도 이런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라크 자이툰사단, 한미연합사령부, 외교부 정책기획관실, 육군본부 정책실. 조동연 교수가 17년간 국가에 복무한 이력이다. 물론 직업이기도 했겠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한 공적인 삶을 살아온 세월이다. 그럼 국가는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월급? 자긍심? 무슨 일을 해왔든, 그녀가 국가전복을 꾀하는 현저한 위험인물이 아닌 한, 국가는 조동연 씨의 시민권을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악마의 얼굴'을 한 가세연은 조동연 씨의 어린 자녀의 실명과 생년월일, 얼굴을 공개하고 〈TV조선〉과 〈조선일보〉는 나팔수가 되어 확산시켰다. 한창 예민한 나이의 아이들은 정상적인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어른들의 분별없는 패악질에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엄연한 인권침해이자 심각한 아동학대다.

이번 일은 대선 댓글 사건 수사를 막을 목적으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조선일보〉가 했던 짓과 똑같다. 조동연 씨는 "더 이상 아이들과 가족을 괴롭히지 말아달라"며 사퇴했음에도, 가세연은 그녀를 '악마'로 지칭하며 사생활과 관련한 녹취를 공개하겠다고 추가폭로를 예고했다. 한술더떠 "민주당과 이재명은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라"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투나 공익제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폐지 여론이 높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거짓뿐만 아니라 사실도 포함하고 있다. 현행법상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올해 2월 25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 307조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헌법 기본권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대의견도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기각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사실 적시 매체가 매우 다양해짐에 따라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는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외적 명예의 특성상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기본취지로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보다 인격권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공익적 목적이 있을 때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제310조가 있긴 하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한다는 이유로 현재 민주당 몇몇 의원들에 의해 폐지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쟁점과는 무관하게 조동연 씨의 경우에는 폐지여론이 큰 이 법이 꽤 힘있는 방패막이가 되어줄 것 같다.

문제는 위헌인가 합헌인가가 아니라 법이 국민의 인권보호에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세연과 〈조선〉이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유포시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권리와 거리가 멀다. 조동연 씨의 10년 전 이혼사유가 공익과 어떤 점에서 부합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이혼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듣기로 그녀는 위자료까지 지급했다고 하던데, 그럼 법적으로도 책임을 다한 것 아닌가. 한국사회는 한번 이혼하면, 아니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을 때, 혹여 부적절한 선택을 하면 법적인 책임을 다 지고도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하는 야만적인 사회인가.

2020년 한해 동안 한국인의 이혼건수는 10만 7천 건, 그나마 전년대비 4천 건이 줄어든 수치다. 이중 미성년자를 둔 부부의 이혼은 42.3%이고, 협의이혼 78.6%, 재판이혼 21.4%이다. 대략 매년 10만쌍이 이혼하는데, 이 사람들은 다 문제있는 사람들인가? 이제는 이혼이 특별할 것도 없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사적 판단의 영역으로 취급된다.

간통죄가 폐지된 지 5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배우자의 외도가 원인제공의 사유는 아닐 테고, 매년 10만쌍의 이혼사유는 백인백색일 것이다. 간통죄 폐지 이전이든 이후든, 윤리적인 문제로 이혼한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인가? 이슬람 사회에 현존하는 명예살인, 인격살인과 무엇이 다른가.

조동연 씨 사생활 의혹이 사실이라면~’ 하고 단서를 다는 사람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신지예 대표백혜련 민주당 선대위 국가인재위원회 총괄단장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우리는 앞으로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하거나 정치인 후보자를 검증할 때, 이혼 사유까지 확인해야 하는가? 자녀들이 친자인지 아닌지 증빙자료를 사전에 제출하는 것이 인사검증인가? 누군가 악의적으로 내밀한 사생활을 폭로하고 '팩트체크'하여 사실로 드러나면 부실검증이 되는 것인가? 한 개인의 지극히 내밀한 영역에 대해 삶의 태도에 문제 있다없다 판단할 권리가 그대들에게 있는가? 혼외자를 낳아 기르는 것은 중차대한 범죄행위인가? 설령 처음부터 혼외자임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낙태가 금지된 나라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전남편이라 해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이미 10년 전에 법적 혼인관계가 끝났음에도, 마치 인격적으로 심대한 결격이 있는 것처럼 전 국민을 상대로 연일 폭로를 이어가는 야만적인 폭력이 횡행하는데, 여성단체는커녕 어디에도 국가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다. 여성가족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손톱을 만졌다고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몰았던 숱한 여성단체들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들이 지키고 보호할 여성은 '도덕적'인 여성들에 한하는 것인가?

이럴 때 나는 공포를 느낀다. 나같은 필부야 그럴 가능성이 낮지만, 만에 하나 저들에 의해 좌표라도 찍히게 되면 누구도 나를 보호하지 않을 거라는 공포. 이건 조국 검언유착에서 느낀 것과 동일한 공포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게 맞기는 한가 싶은 악마들이 날뛰어도 제재할 수 있는 수단 하나 없는 게 무슨 문명국가인가.

조동연 씨와 민주당 선대본이 가세연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재판을 거쳐 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부지하세월일 것이다. 그 사이 아이들은 성장할 것이고, 지금 이순간에도 스마트폰에 엄마 이름 석자만 쳐도 마치 마녀취급하는 기사들을 보게 될 것이다. 국가(사법부)의 법적 판단이 내려지는 건 가세연의 유뮤죄를 떠나, 언제가 될지 기약도 없는 허망한 사후약방문이다.

이럴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동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묻고 싶다. 국가인권위는 사법기관이 아니다. 말 그대로 국민의 인권을 수호하라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인권이 침해되는 현장을 감시 감독하라고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한 국가기관이 아닌가. 한 여성과 그 아이들에 대한 악의적인 사생활 폭로가 유튜브와 언론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어 사회가 떠들썩한데도, 국가인권위가 어떤 방식으로든 작동되지 않는다면 그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국가인권위는 법원처럼 인권침해의 유무를 사후 심판하는 기관인가?

심판은 법원의 몫이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나 이루어진다. 그 사이에 인권침해의 피해자는 인격살인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빅테이터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거나 사태의 심각성을 따져 유포하는 행위 자체에 경고등을 켜는 시스템이 없다면, 피해자들은 법적 판단을 받기 전에는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될 뿐만아니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국가는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 정글사회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

집에 불이 나면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방차가 달려와야 하고, 괴한이 침입하거나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한다면 경찰의 공권력이 작동하는 게 상식이다. 불이 났는데 화재 원인이 중요하다며 불끄기를 지연시킨다면 소방서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조동연 씨가 지난한 재판을 거쳐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을 받는다 한들 아이들의 부서진 인격과 열심히 살아온 고단한 삶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한 여성의 인생, 그들의 낙인찍힌 삶을 되돌릴 수 있는가? 외도를 하고 친자가 아니라 하여 그것이 국가로부터 시민권을 보호받지 못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의심할 것 없는 진실은 채동욱의 아이와 조동연의 아이들도 국가가 품어야 할 국민이라는 점이다. 친자든 아니든, 이혼의 사유가 무엇이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제3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심판할 권리는 없다. 나는 인격살인의 위기에 처한 선량한 국민을 보호해주는 국가의 존재를 보고 싶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던 국정운영의 철학은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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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구 2021-12-04 17:02:48
미쳤구나미쳤어.이딴글봐준내게감사의댓글남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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