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④
[연재소설] 설화(雪花) ④
  • 유석
  • 승인 2015.03.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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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행복한 사랑은 조건이 좋은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숨이 막히는 혼돈의 굴레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쉴 새 없이 일어나는 파도의 갈등을 다독이며 내일을 바라봐야 했다. 

고배의 바닥에 가라앉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말해주듯, 사랑다운 사랑 만나고 싶었다. 미란을 통해 고통을 받다보니 예전에 미처 몰랐던 참다운 사랑의 존재를 다시 만나고 싶었고, 실체 속에 숨어있는 사랑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다.

스스로 모험과 고통을 자청하지는 않았지만, 쉽게 미란을 내 던질 수 없는 입장도 생각해야 했다. 해결이 돈이 문제지만 결코 혼자의 몸이 아니라는것도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끝자락은 그 어디이며, 또한 그 끝에서 자신을 위해 있을 행복의 여신이 건네주는 보은의 댓가는 과연 무엇인지를 한 가닥 희망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불굴의 투지로 운명과 화해하며 참아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고통을 이겨내며 걸어왔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얄팍하게 설화를 만나기 위한 기다림만은 아니었다. 하늘의 뜻에 따르되 존재하는 의미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반드시 만나고 싶어 했다. 설령 지금 설화가 앞에 나타난다 해도 그것은 더 괴롭고 복잡할 뿐이기에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구름다리 위에서 그려보는 한 조각 옛 사랑에 대한 모정에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간 속에 그의 운명이 설치해놓은 생의 단두대 위에 누워 있어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집념이 자신도 모르게 지배하고 있었다.

‘자업자득’ 에 대한 생의 ‘결초보은’도 아니다. 성인군자 도 사랑의 꼴 볼견은 단숨에 내치는 법이기에, 이러저러한 핑계로 자신을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들이 흔히 그렇게 걸어가듯, 쓰다고 길가에 쉽게 내 던져 너덜거리는 사랑조각처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어린 딸 때 문만은 아니었다.

사랑의 모험 뒤에 찾아오는 어떤 인생의 경험을 얻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다. 인간에게 영원한 고통은 없듯이 그가 겪고 난 뒤에 찾아오는 모진 인생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남들이 느끼지 못한 진정한 사랑의 실체를 만나보고 싶어 하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결국, 그 누가 겪지 않았던 사랑의 정글을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거룩한 순교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었다. 
미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먹거리 타령에 외식이든 주문이든 해물, 육식, 별미, 스페샬 음식등을 즐겼다. 그것들이 없으면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도 있어야 밥을 먹는 까다로운 여자였다. 공주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은 여자였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날 밤 병이 나버리는 괴상한 체질을 갖고 있는 여자였다. 이른바 공주들의 투정어린 배앓이 병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오후만 되면 어떤 간식이든 꼭 먹어야했다. 그렇다고 지수가 주말에 쓰는 것은 미란의 주머니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지갑에서 돈이 나온다면 어쩌다 작은 음식 값이 나올 때만 그 틈을 타 슬쩍 내버리는 영악한 여자였다. 쪽째비도 낮 짝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수가 쇼핑할 때면 살림에 쓸 가제 도구등 상품들을 골라 계산대에서 밀어 넣는 수법도 여지없이 드러냈다. 고수의 기회주의자들이 당당한 둥지 울타리 안에서 흔히쓰는 새치기 수법이었다. 영악한 그녀의 행동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계단은 이미 화분들로 꽉차 이웃 세입자들의 눈치까지 살피게 되었다.

재혼한 여자의 바라기는 그가 예상했던 시점을 이미 뛰어넘어 대책이 없었다. 지금까지 황금의 상속은 여자였고, 그 주인도 여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그 황금을 따다 줄 능력 없는 자신의 인생이 초라하다보니 비참할 뿐이었다.

재혼남의 첫 번째 눈물이 황금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황금 같은 존재의 철학을 얻은 것도 미란을 만나면서 깨우치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떤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툭하면 이웃과 싸움질 하는 것도 이골이 났다. 미란은 집안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화분을 들러 엎으면 쌍욕을 해가며 애들을 잡기 일쑤였고, 누리가 일을 저질러도 유독 다희를 더 혼내곤 했다. 그러다 남편이 퇴근하면 투정까지 부려대며 넓은 전셋집으로 이사 갈 것을 종용하며 또 한 바탕 싸움이 일어났고, 인격 무시와 폭언을 단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할 정도였다. 짖무른 사랑은 새살이 돋아날 틈마저 주지 않고 들볶아댔다. 침대가 부부 자리지 껍데기만 남아있는 사랑의 폭력은 언제나 독가시가 되어 찔러댔다.

차라리 그녀가 가끔 나가는 절에나 갔다 오기를 바랐다. 지수는 교회를 나가다보니 그 문제로 종교싸움이 일어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미란은 아무 때고 자신과 혼인신고를 하려면 불교로 개종하라며 압박했다.

그녀는 여전히 꽃을 미치도록 좋아한 나머지, 주말은 고사하고 시도 때도 없이 화분을 두 세 개씩 사들고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녀에게 꽃은 지수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흔히, 음악과 꽃을 사랑하는 여자 치고 악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어간 꽃향기는 그날부터 악마의 독소를 만들어내는 폭력의 향기를 발산하는 ‘바이러스’로 변하고 만다. 화분이 들어오는 날 남자의 눈에는 폭행과 폭언이 들어있는 ‘다이너마트’ 가 들어오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그녀가 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어쩌다 잘못 하면 화분을 사오는 것으로 벌칙으로 내걸기도 했다. 지금까지 합하면 그 돈이 결코 적지 돈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벌금과 위로금을 손에 쥐어 주어야 했다.

미란은 그것에 만족해하지 않았다. 철마다 죽은 꽃을 대신해 화분을 사들이다보니 남자는 치밀어 오르는 분을 삼켜야 했다. 그가 혹독한 겨울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예전의 설화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설화는 얼었던 땅도 금방 풀어지게 할 만큼 봄 같은 정을 가진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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