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문화 중심지 대전 그 많던 유적·유물 어디로…
청동기문화 중심지 대전 그 많던 유적·유물 어디로…
백남우의 충청숨결
  • 백남우
  • 승인 2012.07.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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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인 1967년 7월 대전시 괴정동 244-14번지의(현 대전시 서구 내동 39-27번지 일대) 손용갑씨의 밭에서 B.C.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2000여년을 땅속에서 잠자던 한밭땅 새벽의 역사가 채소밭을 갈던 농부의 쟁기 끝에 걸려 나왔다. 그 해 8월 김원룡 교수를 비롯한 5명의 현지 조사단에 의해 괴정동 고분 발굴 작업이 시작 되었다. 이 발굴은 당시 고고학계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당시에는 대전 지역은 물론 중앙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어졌던 학계의 주목받는 발굴이었다. 총 17점의 유물을 확인하고 이후 그 고분 위치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표지석을 세웠다.

대전은 금강의 지류인 대전천. 갑천. 유등천을 끼고 비교적 넓은 평야를 발달시켜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으로서, 이러한 자연적 배경으로 대전은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하여 삶의 둥지를 틀고 살았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전을 역사가 없는 신흥도시 쯤 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고장 대전은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식 청동기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이 괴정동 출토 청동기를 비롯하여 계속적인 고고학적발굴로 밝혀지고 있다. 대전의 3대하천변에서는 최근 대전의 시세 확장과 더불어 대규모의 개발사업이 일어나 본격적인 조사사업으로 대전의 인간역사에 대한 자료가 축적되면서 대전의 역사를 살피는데 많은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대전이 청동기유적 및 유물에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제까지 조사된 유적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괴정동(현 내동) 출토유물 - 1967년 7월 (고검식 동검, 동경2개, 동탁2개, 검파형동기(대쪽모양동기), 방패형동기, 원개형 동기, 무문토기, 흑색토기)
* 전 대전출토 농경문 청동기 - 1969.8
* 문화동 출토 동검 - 1970년 여름 보문산 까치고개
* 탄방동 출토유물 - 세등선원부지(동검1개, 동모1개, 동끌1개)
* 사성동 고인돌유적 - 1977년 11월(대청댐 수몰지역내)
* 관저동 지석묘유적(현 원내동 유적) - 1977년 충남방적부지
* 칠성당 지석묘군
* 한국과학기술대학정문옆 - 1986.3.9 옛.생.돌 답사 수습(무문토기편 및 빗살무늬 토기편)
* 둔산동 선사유적 - 1991.3.18
* 구즉동 유적 - 1992.1.(구석기 유적)
* 구성동 유적 - 1992.8.(기상청부지, 청동기 집자리 10기)
* 비래동 고인돌 유적 - 1997.4.(요녕식 동검등)
* 노은동 유적 - 1997.(청동기 집자리)
* 용호동 유적 - 1998.11.(구석기 유적)
* 궁동유적 - 1999
* 대정동 유적 - 2001. (송국리형 집자리)
* 용산동 테크노벨리 - 2005.11.(청동기 주거지)
* 유성구 서남부개발지구 - 2008.(청동기유적 및 비파형동검)
대전의 3대 하천과 금강변의 얕은 구릉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청동기유적이 발굴될 것으로 보여 대전은 청동기의 메카로 손색이 없을 전망이다.
그 많던 청동기 유적과 유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정한 위대한 우리문화 유물 100선에 그 첫 번째가 대전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청동기시대 의기(儀器)인 농경문 청동기이다. 길이 7.3㎝, 너비 12.8㎝, 두께 1.5㎜. 아래쪽 일부가 떨어져 없어졌다. 이 청동기와 비슷한 것으로 대전 괴정동과 아산 남성리의 방패형동기가 있다. 문양이나 형태로 보아 BC 3세기경의 종교의식과 관계있는 의기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이 농경문청동기는 1969년 8월 5일 유숙자씨로부터 구입이 되었는데 대전부근에서 출토된 것으로 유숙자씨가 이야기 한다고 전해진다. 이 청동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청동기실에 얼굴 마담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다. 괴정동유물의 현황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괴정동 유물은 고고관 12점, 미술관 1점으로 총 13점이 현재 전시되고 있으며, 수장고에 파손된 거친무늬구리거울 1점, 한국식동검 1점이 보관되어 있어 국립박물관에는 총 15점이 전시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대쪽모양동기 2점은 국립전주박물관에 대여하여 상설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 모두 대전이 아닌 곳에 있다.

대규모 개발에 의해 조사 발굴 되었던 그 많던 청동기 집자리도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둔산동 청동기 집자리는 전사 이전되어 땅속에 묻혀있고, 불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용산동 테크노벨리 청동기 집자리와 황토 흙 고운 집자리였던 유성 상대동 원골유적지도 현재 남아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도 청동기 주거지 안에 네모 반듯한 화덕자리(爐址)는 규격도 거의 동일하고 얇게 돌을 가공하여 만든 것이 그 당시 주방 전문 기술자가 있었던 듯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유물도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대규모 도시개발의 와중에 유실 된 것이 가슴 아프다.

한밭의 새벽을 새롭게 열자

2007년9월12일 대전시민단체(옛터를 생각하고 돌아보는 모임, 대전문화관광해설사회, 한밭문화마당, 대전문화연대, 대전역사교사모임, 한밭역사교사모임)들이 괴정동유적 발굴 40주년을 기념하여 대전시청 세미나실에서 학술세미나를 열고 1980년대 사라진 괴정동유적 표지석을 대신하여 그 현장을 찾아서 새로이 표지판을 설치하였다. 이는 대전괴정동 유적의 가치와 의의를 되새기며 대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괴정동 청동기로 알려진 농경문 청동기를 도시의 이미지로 새롭게 창출해나가는 계기를 삼고자 함이었다. 대전 서구 문화원에서는 1999년 농경문 청동기를 문화상품으로 내놓은 적도 있었다. 이웃인 청주에서는 국내에도 없는 직지를 도시의 브랜드로 삼고 있다. 자기지역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40여년전 한 농부의 쟁기 끝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딸려 나온 한밭땅 새벽의 역사인 국보급인 우리지역 출토 청동기를 그 위상에 맞게 올려놓고 청동기 유물과 유적지를 더 이상 훼손이 되지 않고 우리 곁에서 잘 보존되어 찬란한 문화로 전승되도록 시민들의 지혜와 관심이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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