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성의 비타민 시] 이 슬픔에도 이름이 필요합니다
[박진성의 비타민 시] 이 슬픔에도 이름이 필요합니다
  • 박진성 시인
  • 승인 2022.03.12 19:2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박진성 시인 제공
〈사진=박진성 시인 제공〉

싱고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 라 불렀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싱고답지 않은 일

싱고는 너무 작아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풍선껌처럼 심드렁하게 부풀다가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 신미나,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중.

* 2022년 3월 10일 이후, 이런저런 통증들을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24만 표 차이로 진 날 이후 잠을 하나도 못 잤다는 분도 계시고, 이유 없이 가슴이 뛰고 호흡이 힘들다는 분들도 계시고, 모든 뉴스를 아예 보질 않고 몸져누웠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거대한 슬픔이 우리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슬픔에 제발 누가 이름이라도 좀 붙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슬픔입니다. 여기, 상실을 다루고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시인은 반려견의 슬픔에 대해 “싱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오로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슬픔이기에, 그 슬픔조차 너무나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기에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슬픔 하나에 대한 작명이 오롯이 시 한편이 되었습니다. 『싱고라고 불렀다』. 이 시집이 처음 나왔을 때 왜 시집 제목을 저렇게 모호하게 지었을까,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를 쓴 사람의 영혼 같은 것이 만져져서 울컥했습니다.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라고 쓸 때, ‘죽었다’라는 말을 차마 못 쓰고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쓰는 그 마음을 읽다가 울컥했고, (언어는 이렇게도 조심스러운 것이겠지요.)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라고 쓸 때의 마음이 물질로 만져지는 것 같아서 또 한 번 울컥했습니다.

(아마도, 이제 좀 그만하라고 지청구하는) “아버지가 화를 내면”, 이제는 “기분”이 된 “싱고”와 나란히 앉아 시인은 개를 묻었던 자리를 살펴봅니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화자는 문득 묻고 싶었을 겁니다. 왜 내가 사랑하던 개 “싱고”는 불에 타서 사라져야 하냐고, 서럽게 묻고 싶었을 겁니다. 그 슬픔을 주장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고, 힘주어 말하지 않고 이 시는, 조용히 그 정황들을 기록합니다.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이는 슬픔과 상처 하나가 그 자신에게는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슬픔과 상처, 그리고 삶의 내력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시집 제목이 『싱고라고 불렀다』가 되었습니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라고 시인은 썼고, 우리는 지금의 이 슬픔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16,147,738개의 동일한 슬픔이 아니라, 하나하나 무늬가 저마다 다른 16,147,738개의 슬픈 사건들입니다.

위로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슬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는 방향이 ‘그 사람’이 아니라, 대체로 ‘나’ 자신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그건 위로가 아니라 슬픔을 목격하는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도피에 가깝겠습니다.

지금이 위로를 해야 하는 시간인지, 그냥 지켜봐야 하는 시간인지 알 수 없다는 거, 어쩌면 그게 ‘위로’라는 행위 자체의 ‘불구성’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곤경과 당신의 절망, 그리고 당신의 슬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건 그래서 많은 경우 방치가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만 쓰고 싶습니다.

"더 슬퍼해. 다 슬퍼할 때까지 기다릴게."

어떤 슬픔 하나가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불과 24만 표 차이 패배. 그 슬픔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작고 하얀 개 ‘딩딩’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는 오후입니다.

[박진성 시인]

세종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식물의 밤》등 다수. ‘젊은 시인들이 뽑은 올해의 시인상 2014’ 등 다수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4회 수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민주시민 2023-11-09 10:13:33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우우~ 그~ 한마디~ 였었네~
잘~ 있어요~ 잘 있어요~ 우우~ 인~ 사~ 만~ 했었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