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76] 참나무 문화사...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상수리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76] 참나무 문화사...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상수리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2.05.26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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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어느 욕심 많은 돼지 한 마리가 커다란 참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도토리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주둥이로 도토리 한 알을 씹어 삼키면서도 눈은 연신 다른 도토리를 집어 삼킬 듯이 노려보았다.

드디어 참나무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내질렀다.

“뻔뻔스런 짐승이로구나! 네가 내 도토리로 배를 채우면서도 내게 고맙다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다니.’

그러자 돼지는 참나무를 힐끗 한 번 쳐다보고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네가 나를 위해서만 도토리를 떨어트려 준거라면, 나도 당연히 감사하다고 했겠지”

나무로 본 유럽 민속의 기원과 효능에 대한 번역서 ‘나무신화(2021, 수류산방)’의 참나무 편에 나오는 단락이다.

특히 이 책은 참나무 숲과 돼지 사육에 관한 다양한 문화사적 정보를 제공한다.

과거 유럽의 참나무는 목재보다 열매가 매우 중요했다.

숲에 돼지를 풀어 키우는 ‘방목림’은 보편적인 축양 방법으로 참나무와 돼지의 관계는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데 매우 중요했다.

‘도토리에서 최상의 훈제 햄이 만들어진다’, ‘눈 먼 돼지도 속 빈 너도밤나무 열매를 먹지 않는다‘라는 중세 속담은 도토리와 돼지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심지어 프랑스 산림법은 1961년까지 참나무 숲에서 함부로 도토리를 채취할 수 없도록 돼지 사육에 관한 세세한 규정을 열거했다는 점은 여전히 현대 임업에서 방목림과 같은 인위적인 개입이 계속 전승됐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러한 사례는 오늘날의 임업 목표가 품질 좋은 목재 생산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면 과거 유럽은 참나무 숲에서 돼지 사육을 통해 벌어들이는 가치가 중요했다는 점이다.

한 예로 16세기 유럽의 졸링(solling) 지역의 숲에서 키운 돼지는 목재를 팔아서 번 수입보다 25배나 많을 정도로 참나무의 도토리는 유럽인들의 경제적 관심은 참나무 숲의 도토리 수확량이었다.

그래서 매년 가을에는 귀족이나 마을 대표로 구성된 시찰단이 참나무의 결실 상태를 시찰하고 실사 결과에 따라 도토리 소유권이 배분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유권 배분 과정이 늘 공평할 수 없는 법. 이 과정에서 불만이 많았던 탓에 유럽은 도토리 소유권과 분쟁 소송이 빈번했다고 한다.

반면에 참나무 숲에서 농가의 돼지를 마릿수에 따라 돈을 받고 관리해주는 돼지 목동의 경우처럼 일자리도 새로 생겼다.

유럽에서는 도토리가 풍년인 해를 ‘신의 은총’으로 여기고 있다하니, 유럽인들의 삶과 도토리의 관계는 깊고 넓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도토리는 매우 중요하다. 늘 부족한 식량에 허덕일 때, 도토리는 구황식물로 우리 선조들을 구해줬다.

임진왜란으로 왜군에 쫓겨 피난길에 나선 선조가 도토리묵을 먹고 난 뒤 환궁해서도 수라상에 도토리묵을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상수리나무도 결국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망라하고 우리들의 삶을 이어오게 한 귀중한 음식이다.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의 상수리나무는 통직한 모습으로 마을 어귀에 우뚝 서 있다.

곧게 자란 나무들은 여러 쓰임새로 오랫동안 남아 있기 어려운데, 방산리 상수리 나무는 살아남았다.

해마다 정월 초순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는 서낭나무이기 때문이다.

방산리는 서낭제뿐만 아니라 산신제와 미륵제 등 마을과 주민을 지켜준 자연과 신에게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바친다.

올해도 방산리의 상수리나무는 도토리를 얼마나 많이 매달릴까?

기근으로 목숨이 임계점에 달할 때 우리를 살려주던 도토리.

아니 북반구 온대 지역의 모든 이의 삶을 지탱해주던 참나무가 풍성한 꽃을 피웠다.

신의 은총이라 했듯이 예산군 방산리의 상수리나무가 올해도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하며 오랫동안 나무를 지켜 준 주민께도 감사드린다.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155-2 상수리나무 368년(2022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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