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詩각]평범한 ‘꽃’이 아닌 나만의 특별한 ‘꽃’이 ‘꽃’에 있다
[젊은 詩각]평범한 ‘꽃’이 아닌 나만의 특별한 ‘꽃’이 ‘꽃’에 있다
김태우 시인의 ‘젊은 詩각’ ① 꽃
  • 김태우
  • 승인 2015.04.30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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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 함민복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중.
 

▲ 김태우 시인

[굿모닝충청 김태우 시인] 4월은 꽃의 계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꽃집이 문을 여는 시간이다. 오른쪽으로 걸어도, 왼쪽으로 달려도 두 눈의 종착역은 꽃이다. 꽃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오감을 자극하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면 충분하다. 종(種)을 가리지 않고, 장소를 불문하고 꽃이 입을 벌린다. 봉오리가 터진 것이다. 봄비가 온다. 갈증 난 꽃들이 봄비를 마신다. 배가 불렀는지 나무 아래로 꽃잎을 뱉는다. 바람이 젖은 꽃잎을 메고 길을 나선다. 신발 밑에는 꽃향기만 남는다. 이제 우리가 마주한 가장 큰 꽃집의 마감시간이 다가온다. 그 시간이 오기 전에 함민복 시인의 「꽃」을 읽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꽃’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름답고, 밝고, 상쾌하고, 따뜻하고, 희망을 주는 긍정적 의미의 상징물이 아닐까. 하지만 「꽃」에서 ‘꽃’은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꽃’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평범한 ‘꽃’이 아닌 ‘나’만의 특별한 ‘꽃’이 「꽃」에 있다.

경계는 늘 불안하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지지 않은 자리, 그 곳은 위험하다. 누구의 관심도 쉽게 붙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 속에서도 꽃은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화자는 담장을 본다.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가 보인다. 그 사이에서 국화가 핀다. 전생과 내생의 경계에 현생이 있다. 국화는 현생과 죽음 틈에서 핀 것이다. 굳이 국화가 담장에서 핀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것은 전생과 내생 사이에서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나눈 담장이 현생의 불안 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꽃은 불안의 경계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장치로, 소유와 무소유의 경계에서 행인들을 설득하는 무기로, 집의 경계에서 죽은 혼령을 위로하는 순간으로 존재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꽃은 피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불안을 안고 자라며, 그 곳의 꽃향기는 우리의 내면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경계에 핀 조화(弔花)가 아닌 우리를 조화(調和) 시키는 매개체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나 꽃이 항상 활짝 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고 만다. 피고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는 꽃보다, 무관심에 속에서 시든 꽃을 봐야 한다. 무관심의 결과물로 자란 ‘꽃’에서 서로의 경계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봐야 할 것이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불안의 경계에서 핀 꽃을 봤지만 “눈물이 메말라” 버리는 순간,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에 서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계만 보게 될 것이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은 현생을 떠나는 날이다.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가 아닌 다른 곳에 서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충분히 흘릴 눈물을 가지고 있다. 아직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눈물이 마르려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할지 ‘꽃’에게 묻고 싶다. ‘꽃’은 알고 있을까. “모든 경계에”서 필 수 있다고 ‘꽃’은 말하고 있다.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에서 꽃을 본다. 아름다운 경계에서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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