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우의 환경이야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지키는 못생긴 나무들
[염우의 환경이야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지키는 못생긴 나무들
염 우 (사)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청주새활용시민센터 관장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2.08.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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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용소나무.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용소나무.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인류가 직면한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는 이제 전문가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지혜를 모아 실천하고 이겨내야 할 문제다. 이에 굿모닝충청은 충북 환경운동의 역사로 불리는 풀꿈환경재단 염우 상임이사로부터 환경의 중요성과 더불어 우리 지역에서 진행돼온 환경운동의 현실과 앞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 등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다. 놀이터도 되어주고 쉼터도 되어주었다. 물건 살 돈이 필요하면 사과를 따서 팔았다. 가지를 베어서 집을 지었고, 줄기를 베어 배를 만들어서 떠났다. 세월이 지나 소년이 돌아오자 쉴 수 있게 밑동을 내주었다. ​나무는 "더 줄게 있으면 좋겠는데... 밑동 밖에 안 남았어.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 쉘 실버스타인의 명작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나는 ‘아낌없이 주는’은 빼더라도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얼마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팽나무 이야기가 나왔다. 수령 400~500, 높이 16m, 둘레 6.8m의 노거수이다. 소덕동 마을 사람들은 ‘어린 시절 저 나무 나고 안 논 사람이 없고 기쁜 날 저 나무 아래에서 잔치 한 번 안 한 사람이 없고, 간절할 때 기도 한 번 안 한 사람이 없다’고 소개했다. 동신목인 셈이다. 도로 개설로 인해 마을이 두 쪽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하자 보호수 지정을 통해 막아냈다. 이 나무는 경남 창원 의창구 동부마을에 있는 팽나무이며, 실제로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명소로 부각되어 하루 4천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생육환경을 위협받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동구나무 또는 둥구나무가 있다. 동구나무는 동네의 어귀에 서 있는 나무를 말한다. 고향 마을을 찾을 때 입구에서 제일 먼저 반겨주는 나무이다. 둥구나무는 집 근처나 길가에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를 말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이다. 나의 고향은 음성의 시골 마을이다. 학교나 읍내에 다녀올 때 커다란 동구나무가 있는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야 한다. 약물재라 불리는 고개를 넘으면 연못이 있는 못거리가 나온다. 못거리에 커다란 둥구나무가 있고 주변에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유년기의 추억이 담겨있는 우리 동네 나무들은 느티나무였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노송나무.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노송나무.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고향마을의 나무가 아니어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버팀목들이 있다. 청주 시내 가까운 곳에 오송읍 공북리 엄나무와 연제리 모과나무가 있다. 엄나무는 수령 700년, 모과나무는 수령 500년 가량이며 통합청주시 100가지 자랑에도 포함되었다. 중앙공원의 압각수는 오리발 모양의 뿌리를 가진 900년 된 은행나무로서 청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나무이다. 가덕면 은행리에는 500여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문의면 두모리 대청호 친환경마을에는 600살 느티나무가 있다. 오래전에 마을 탐방 행사를 한 적 있는데 7~8명의 아이들이 양팔을 펴고 둘러쌌던 기억이 있다. 청주에는 1600그루의 플라터너스 가로수길과 무심천 왕벚나무와 오래된 굴참나무들이 모여있는 미원면 금관숲도 있다.

범위를 충북으로 넓혀 보면 더 많은 버팀목들이 있다.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은 충북을 대표하는 소나무이다. 수령은 600년 가량이며, 세조대왕이 행차할 때 ‘연이 걸린다’고 하자 ‘가지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꼿꼿한 모습의 선비 나무이다, 정이품송과 부부로 소문난 정부인송은 매우 우아하고 풍요로운 수형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 소나무는 자웅동체, 암수한그루이다. 힘들 때 찾아가던 내 마음 속의 최애 나무는 괴산 청천면 삼송리 용소나무였다.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며 수령은 600년 가량이다, 왕소나무로도 불렸는데, 2012년 태풍에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거목의 모습을 지금까지 존치시켜 놓고 있다.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로 알려졌다. 수령은 1000년 가량이고 흉고직경이 11m인 거목인데, 가지나무가 다시 뿌리를 내려 줄기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가장 큼직한 나무는 괴산 장연면 오가리 느티나무이다. 상괴, 중괴, 하괴목 3그루이이다. 수령은 900년 가량, 수고는 30m를 넘으며 웅장한 수관을 가기고 있다. 66.4%의 임야를 가진 충북의 숲에는 노거수 뿐 아니라 저마다의 가치를 지는 무수한 나무들이 서식하고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은 나무의 소중함을 잘 설명하고 있다. 나무는 기능과 역할은 목재로서의 쓰임새를 제외하고도 차고 넘친다. 나무는 생태계의 기반인 생산자이다. 광합성을 통해 탄소화합물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태계의 영양분을 제공한다. 나무는 숲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기둥이자 지붕이기도 하다. 큰비에 토양이 떠내려가지 않게 막아주고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나무는 그 자체로 다른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곤충과 새들의 서식지이다. 나무는 환경조절자 역할도 한다. 산소를 공급해주고 더운 공기를 식혀주고 물을 정화하고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나무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억제해 주기고 하며 미세먼지를 저감해 주는 기능도 한다. 사람들은 나무를 보며 사색을 하기도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 중에 ‘못생긴 나무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산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가장 먼저 잘려 서까래 감으로 쓰이고, 그 다음 못생긴 나무가 자라서 기둥이 되고, 가장 못생긴 나무는 끝까지 남아서 산을 지키는 큰 고목나무가 된다. 목수 눈에 띄어 잘리더라도 대들보가 되는 것이다」. 효림 스님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다. 27년 동안 지역환경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그럴듯한 변명을 제공해 주는 이야기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6차 대멸종을 우려해야 하는 요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더 많은 못생긴 나무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직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다면, 우리 주변의 나무를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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