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한겨레의 뿌리를 찾아서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한겨레의 뿌리를 찾아서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02-대한’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09.2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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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책 표지. 사진=정진명 시인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책 표지. 사진=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우리는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이라고 정했습니다. 이 말은 바로 앞의 왕조인 ‘대한제국’에서 온 말입니다. ‘제’를 ‘민’으로 바꾼 것이죠. 그런데 그 앞의 왕조는 ‘조선’이었습니다. 대대로 조선이었는데, 왜 하필 ‘한’으로 바꾸었을까요?

요동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 살던 옛 민족들은 대체로 2가지로 불렸습니다. ‘조선’과 ‘한’. ‘한’은 한반도 안의 ‘삼한’입니다. 이미 역사 교육을 통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죠.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꾼 사람들에게 ‘조선’과 ‘3한’은 같은 말이었던 셈입니다. 

3한은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입니다. 한(韓)은 한자 말일 리 없습니다. 순우리말의 소리를 한자로 적은 것이겠지요. 삼한은 이 ‘한’이 세 갈래임을 말합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고대국가로 발돋움하기 전에 셋으로 나뉘었음을 보여줍니다. 나뉘었다는 것은 갈등과 협조가 적절히 이루어진 관계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이 셋이 공존하기 힘든 관계였다면 어느 쪽이 먼저 정벌하여 하나로 합쳐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세 ‘한’은 공존의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3한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箕準)이 위만에게 밀려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세운 부족국가입니다. 이들은 몽골어를 썼습니다. 그래서 각기 자리 잡은 위치에 따라 몽골어에 해당하는 말을 앞에 붙인 것입니다. 몽골어에서 ‘바라군(baragvn)’은 서쪽이고, ‘제즌(jegün)’은 동쪽이고, ‘비얀(biyan)’은 중앙입니다. 이것이 각기 마(馬) 진(辰) 변(弁)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마한은 서쪽의 한, 진한은 동쪽의 한, 변한은 가운데의 한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마한왕을 ‘서한왕’이라고 했습니다. 마(馬)와 서(西)는 같았다는 뜻입니다. 왜 ‘바’가 아니고 ‘마’냐고요? 비읍과 미음은 같은 입술소리입니다. 거의 같은 소리가 납니다.

辰의 뜻은 ‘별’입니다. 수성을 가리키는 말이죠.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그냥 ‘신한’이라는 음차로 봤습니다. 우리말에서 ‘신’은 새롭다거나 빛이라는 뜻이 있으니(드라비다어로는 황금), 음으로 적으나 뜻으로 적으나 같은 말입니다. 전국에 ‘비로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봉우리가 많습니다. 대부분 비로자나불에게 갖다 붙여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뭐라고 했을까요? 이때의 ‘비로’는 부처가 아니라, ‘별, 빛’이라는 뜻입니다. 

3한이 동등한 관계는 아닐 것입니다. 더욱이 남쪽으로 내려온 뒤에 세 한은 힘에 따라 서열이 오르락내리락했겠지요. 도대체 어떤 놈이 가장 높은 놈일까요? 힌트가 있습니다. 중국의 고대 왕조 시절에 가장 골치 아픈 부족이 있었는데, 북방의 흉노족입니다. 흉노족은 초원지대를 떠돌며 유목을 하는 집단입니다. 각궁이 짱짱해지는 가을만 되면 남쪽으로 쳐들어와서 노략질한 뒤에 유유히 떠납니다.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들을 막으려고 진시황이 북방에 긴 성을 쌓은 것이 바로 만리장성입니다. 

진나라를 뒤이은 한나라에서는 이들 때문에 골치를 앓다가 무제에 이르러 작전을 바꿉니다. 가만히 당할 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의 소굴로 쳐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곽거병 위청 이광 같은 명장들을 앞세워 흉노가 사는 초원지대까지 군대를 보내어 소탕합니다. 중국으로 쳐들어가 노략질을 해오기만 했지 거꾸로 공격받으리라 생각한 적이 없던 흉노족은 허를 찔려 혼비백산 달아나죠. 

지도를 펼쳐놓고 유라시아 대륙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리장성을 넘어서 초원지대로 쳐들어간 한나라 군대에 쫓겨서 흉노족이 갈 곳은 2방향입니다. 중심을 빼앗겼으니, 동쪽과 서쪽 둘 중의 한 군데로 달아날 수밖에 없죠. 한나라 무제(武帝)의 집요한 공격으로 이들은 둘로 갈라져 달아납니다.

서쪽으로 달아나자면 지금의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처럼 천산산맥 너머로 쫓겨납니다. 거기 동유럽에는 원래 사람들이 살았겠죠. 그들은 다시 흉노족에게 쫓겨 서쪽으로 더 갑니다. 어디일까요? 북유럽입니다. 일파만파로 흉노족들이 끝없이 밀려들자 동유럽과 북유럽에 살던 사람들은 남쪽으로 밀려납니다. 그게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로마의 쇠퇴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습니다.

자, 서쪽으로 간 사람들은 ‘훈족’이라는 이름으로 게르만의 대이동을 촉발했는데, 동쪽으로 달아난 흉노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이상합니다. 서쪽으로 간 흉노족들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는데, 동쪽으로 간 흉노족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로 안 간 걸까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분명히 동쪽으로 간 흉노족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시기, 즉 한 무제가 통치하던 무렵에 동북아시아에서는 묘한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이때는 고조선 말기였는데, 이 시기를 전후하여 한반도와 요하 북동쪽의 만주벌판에 수많은 부족국가가 성립합니다. 삼국시대 이전과 초기의 변화가 모두 이 무렵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잠잠했던 고조선 강역이 시끄러워지고, 고대국가가 막 생기던 삼국시대 초기의 상황은 모두 흉노족의 대이동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굿모닝충청DB
정진명 시인. 사진=굿모닝충청DB

몽골 초원은 바다 같습니다. 너무 넓어 영역을 표시할 수도 없고, 한 사람이 통치할 수 없습니다. 끝없는 초원을 크게 셋으로 나눕니다. 흉노족은 황제에 해당하는 우두머리를 ‘선우’라고 불렀는데, 그가 초원의 한복판에 삽니다. 한자 표기로는 ‘單于’인데, 이것을 ‘선우’라고 읽는 것부터가 심상찮습니다. 單은 뜻에 따라 음이 다릅니다. ‘홑’의 뜻일 때는 ‘단’이라고 읽고, ‘오랑캐임금’을 뜻할 때는 ‘선’이라고 읽습니다. 그래서 ‘선우’라고 읽는 것입니다. 한자 말이 아니라 딴말을 소리만 적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우’가 뭘까요? ‘jenap>jenu’의 소리를 적은 것으로, ‘폐하’를 뜻하는 고대 터키어입니다. 터키는 중국 측 기록에는 돌궐(突厥)이라고 쓰였고, 서양에서는 ‘투르크’라고 읽죠. 흉노의 일파(돌궐)가 서쪽으로 갔다가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눌러앉아 지금의 터키가 되었습니다. 흉노는 터키어를 썼다는 뜻입니다.

이 선우가 중앙에 있고 임금 둘을 뽑아서 좌우에 놓습니다. 그 왕을 좌현왕 우현왕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을 보좌하는 직책이 더 있습니다. ‘녹려왕, 골도후, 대당호, 대도위’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이 서로 얽혀서 선우와 두 현왕을 연결하죠. 평소 이들은 따로 놉니다. 유목 세상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죠. 그러다가 큰일이 있을 때 힘을 합칩니다. 가을이 되어 겨울을 날 준비로 노략질을 해야 하니 어디로 모여라!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부족별로 청황적백흑 오색 깃발을 휘날리며 집결합니다. 그리고는 만리장성을 넘는 것이죠. 멀리서 깃발을 보면 어느 부족인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의 전투에서 부대마다 깃발을 들어 휘날리는 것은 여기서 비롯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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