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찢어진 청바지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찢어진 청바지
  • 정덕재 시인·영상기획자
  • 승인 2022.10.03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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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영상기획자] “찢어진 청바지 입어봤어?”

은유의 친구 남우가 회사 1층 커피숍에 앉자마자 청바지 얘기를 꺼냈다. 둘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술잔을 기울이는 막역한 사이다. 저녁 술자리가 아닌 점심시간을 앞두고 남우가 은유를 급히 찾은 것은 조언이 필요해서였다.

“애들처럼 찢어진 청바지는, 낼 모레가 환갑인 사람들이.”

“그렇지, 우리 나이 때 입을 건 못되지?”

“뭐 그렇다고 못 입을 건 없지.”

“그렇지, 우리 나이라고 해서 못 입을 건 없겠지.”

찢어진 청바지를 입어도 되는지, 적절하지 않은 지에 대한 문답은 서너 차례 이어졌다.

“찢어진 청바지 입는 게 그렇게 급한 일여?”

“이번 주 토요일에 어딜 가야 하는데, 빨리 결정해야 사든지 말든지 하지.”

“어디를 가는데?”

은유의 재촉에 남우가 입을 열었다.

“홍대 앞 대형클럽에서 하는 윤도현 공연 티켓이 생겨서, 양복 입고 가기는 좀.”

“YB?”

“어, 윤도현을 잘 아네.”

“그럼, YB 정도는 알지.”

남우가 받은 공연 티켓은 아이들이 마련해준 생일 선물이었다. 부인은 티켓을 받자마자 공연에 어울릴만한 바지와 셔츠를 산 뒤 남우한테도 옷을 준비하라며 여러 번 재촉했다.

“그러니까 찢어진 청바지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 전화나 카톡으로 하기에는. 인터넷에서 자세히 보면 청바지도 색이 여러 종류더라고.”

사정을 들은 은유는 이른 점심을 마친 뒤 남우의 발걸음을 인근 공원 벤치로 이끌었다.

“여기 앉아서 잠시 젊은 애들 옷차림 좀 보자고.”

전동 보드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청년은 단정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젊다고 다 찢어진 청바지 입는 건 아니네.”

“저런 애들은 윤도현을 모를 거야.”

“그렇겠지, 윤도현을 알면 찢어진 청바지는 입어줘야지.”

“너 말하는 거 보니까, 솔직히 맘은 정하고 왔네.”

“한 번도 안 입어봐서 어울릴지, 판단이 안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젊은 남녀가 지나갔다. 여자는 무릎이 훤히 보이는 청바지를 입었고, 남자는 청바지 사이로 허벅지 살갗이 얼핏 드러나 있었다.

“저 여자 바지는 강아지도 들락거리겠는데.”

“저런 청바지를 뭐라고 하지?”

“글쎄, 찢어진 청바지를 검색어로 쳐 볼까?”

어느새 은유의 손가락은 빠르게 스마트폰을 누르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다가 아래로 내리는 동안 여러 차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왜 중국어야? 아니면 히브리어?”

“거기서 히브리어가 왜 나와? 우리말인데 제품 설명을 들어봐. 고밀도의 두터운 데님 원단에 시원한 연청 컬러를 사용했습니다. 논스판을 사용하여 루즈하면서 트렌디한 핏감을 자랑합니다. 무릎 양쪽에 디스트로이드 워싱으로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스판이 함유되지 않아 실측 후 구매해 주시기 바랍니다”“아 그러니까 저 무릎이 휑하게 드러난 게 디스트로이드 워싱이라는 거구나. 근데 디스트로이드 워싱이 뭔데?”

“난들 아냐, 또 찾아봐야지”

이번에는 남우가 검색을 했다.

“아, 이렇게 조합이 되는구나. 디스트로이가 파괴하다 훼손하다 이런 뜻이니까, 한마디로 찢어진 청바지를 뜻하는 거네.”

“여기 이런 댓글도 있네 한 번 들어봐. 무릎 부분의 디스트로이드 워싱을 크게 넣어 개방감을 표현했으며 나이프 커팅 워싱을 넣어 한층 섹시하고 스포티하게 착용하기 너무 좋아요. 또한 밑단 커팅으로 시원하고 캐주얼한 느낌을 연출하여 데일리템으로 추천하는 퀄리티 높은 RES셀렉제품입니다.”

“이거 참, 댓글 이해하는 학원이라도 다녀야겠네, 대충 이해는 하겠는데 우리가 소화하기에는 좀...”

남우는 몇 개의 댓글을 읽으면서 부쩍 의기소침해졌다.

“그래도 이럴 때 한 번 입어 보는 거지, 언제 입어 보겠냐.”

은유는 어깨를 두드려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토요일 이른 아침, 은유의 전화기에 알림 표시가 떴다. 남우의 카톡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사진 한 장만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청바지 입은 하체만 찍혀 있었다.

”음, 디스트로이드 워싱의 개방감이라 섹시하군.“

은유는 답장을 보냈다.

“ㅋㅋㅋ”

결코 자음을 남발하지 않는 남우의 답장은 자음 범벅이 됐다. 쑥스럽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늦게 남우는 청바지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공연 관람객 중에는 찢어지거나 꽉 조인 청바지를 처음 입어 본 듯한 아저씨들이 여럿 보였다. 셔츠를 바지 안에 넣고 가죽 벨트를 단정하게 찬 사람을 20대로 볼 수는 없었다. 이럴 때는 아재 세대의 동질언어인 ‘혁띠’를 찬 아저씨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며칠 후 은유는 남우에게 카톡을 보냈다.

“배철수 구창모가 공연한다는데 찢어진 청바지 하루만 빌려줘. 하루 입으려고 살 필요는 없잖아.”

카톡 상태 화면은 읽음으로 바뀌었지만 대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1-2분이 지났을까 알림 표시가 떴다.

“찬바람이 무릎에 솔솔 들어와서 당근에 팔았어.”

은유는 잠시 한숨을 내 쉰 뒤 당근마켓의 앱을 열면서 답장을 했다.

“잘했네, 곧 내복 입을 텐데. 우리가 뼈 시린 거 참기 힘든 나이잖아.”

정덕재 시인·영상기획자
정덕재 시인·영상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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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시인·영상기획자)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치약을 마중나온 칫솔’, 청소년시집 ‘나는 고딩아빠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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