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조선’고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조선’고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07-‘조선’고’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0.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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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각 영인본-삼국유사의 고조선 조와 해동역사 영인본 부분.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대제각 영인본-삼국유사의 고조선 조와 해동역사 영인본 부분.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조선’의 말뜻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상 설명한 주장 중에서 어느 것이 답이라고 합의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은 말인데, 어원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묻지 않고, 모두 주먹구구로 해석합니다. 역사학자들의 어원론은 믿을 게 못 됩니다. 앞서 본 ‘조선’에 관한 주장이 모두 탐탁지 않아서 저도 한마디 보태고 갑니다.

앞서 살펴본 주장들은 모두 ‘조선’이라는 말에만 집착하느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쳤습니다. ‘조선’과 ‘삼한’은 동의어라는 점입니다. 조선의 준왕이 기자에게 밀려 남쪽으로 와서 다시 세운 나라 이름이 삼한이고, 또 고종이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꿀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여 풀어보는 방법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뜻밖의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朝)는 아침을 뜻합니다. 아침의 옛말은 ‘아ᄎᆞᆫ’이고, 아ᄎᆞᆫ은 시간상으로는 아침을, 공간상으로는 동쪽(ᄉᆡ)을 뜻합니다. 그래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내를 금천(金川)이라고 옮기고, 동쪽에 있는 산을 우암산(牛岩山)으로 옮깁니다. 金이나 牛나 ‘쇠(ᄉᆡ)’를 적은 향찰 표기입니다. 朝가 아침을 뜻하는 말(ᄉᆡ)임은, ‘날새다’의 ‘새’에도 있습니다. 조선은 방위상 중국의 동쪽에 있던 나라이므로, 朝는 그것을 반영한 말이고, ‘ᄉᆡ’에 해당합니다.

선(鮮)은 ‘곱다, 빛나다, 환하다, 밝다, 선하다’는 뜻입니다. ‘선하다’는 낯설 텐데, ‘눈에 선하다’는 말에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히읗이 시옷과는 아주 잘 넘나듭니다. ‘형님=성님, 혓바닥=셋바닥’처럼, ‘환하다’가 ‘선하다’로 바뀐 것입니다. 鮮은 흐리멍덩한 것과 대비되는 말이고, 어둠의 반대 상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환함’을 드러내려는 말입니다. 어근은 ‘한’이죠.

朝와 鮮을 우리말로 옮겨서 합치면 어떨까요? ‘ᄉᆡ한’이 됩니다. 새한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닌가요? ‘세한’이라고 하면 좀 더 느낌이 와닿겠죠. 세한, 이것을 한자로 옮겨볼까요? 삼한(三韓)! 조선이 삼한과 동의어였다는 앞의 전제가 이것을 말하는 겁니다. 놀랍죠? 글을 쓰는 저도 놀라운데, 여러분은 오죽하실까요!

조선이 삼한과 같은 말이라면, 이제야 한 가지 의문이 풀립니다. 우리 역사에는 세 나라만 있던 게 아닙니다. 가야라는 나라가 엄연히 있습니다. 우리의 고대사는 3국이 아니라 4국이고, 고대사를 정리한 책에 제목을 붙이자면 『4국사기』이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가야를 빼고 『삼국사기』라고 고집한 데는, 그 책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들이 ‘삼국’이라는 말에 엄청난 집착을 보인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가야를 빼려고 작심한 게 눈에 보입니다. 이 고집과 집착이 왜 그런 것인가 하고 봤더니, 바로 이런 사정이 무의식 깊이 있었던 겁니다. 세 나라가 확정 포진되었기에, 나중에 인도에서 가락국의 세력이 도착한 뒤에도 여전히 삼국으로 부르려는 관행이 마음속에서 압박해왔던 것입니다.

물론 한국의 고대사를 3국으로 규정지으려는 무의식에는 가야가 제대로 된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야는 초기부터 한반도에서 어른 노릇을 했고, 초기 신라나 백제도 꼼짝 못 할 만큼 큰 세력을 지닌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를 아예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한’으로 불러야 한다는 압박감입니다. 조선=세한.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이지만, 이것은 한반도로 들어온 뒤에 나타난 이름이고, 그전에는 이들의 주체 세력이 중국 동북방의 초원지대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이름을 얻는 이들인데, 이 셋을 합하여 그 이전부터 ‘세 한’이라고 불렀고, 그것이 중국 쪽에는 ‘조선’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삼한’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에서 부르든 ‘세한’은 같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기 나라를 세워 자기 이름을 쓴 뒤에는, 그 세 나라에 합류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이 스스로를 삼한(=조선)이라고 불렀습니다. 박혁거세가 경주에 왔을 때 그곳에 ‘조선의 유민’들이 먼저 와서 살았다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은 이것을 말합니다. 이 조선이 바로 삼한입니다. ‘조선=삼한<세한<ᄉᆡ한’이고, ‘단군’은 이렇게 불린 집단의 임금 이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2,000년 전 무렵의 동북아에서 활동하던 여러 민족 중에서 강력한 집단을 이루어 지배층을 형성한 겨레를 언어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크게 3갈래라는 것입니다. 즉 터키어, 몽골어, 퉁구스어죠. 물론 그 밑에 여러 언어가 있지만, 유사 이래 강력한 권력을 지니면서 고대 국가로 발돋움한 민족은 모두 이 세 언어를 쓴 부족들입니다. 따라서 이 세 언어를 쓴 사람들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조선=세한’입니다. 실제로 고조선은 이들 세 언어를 쓴 집단이 지배층을 이루면서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룬 나라입니다.

단군조선은 퉁구스어를, 기자조선은 몽골어를, 위만조선은 터키어를 썼습니다. 물론 지배층의 얘기입니다. 위만이 집권했을 때 ‘조선’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것도, 이런 세 갈래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위만조선의 통치 밑에서도 지배층이 흩어지지 않고 통치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런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을 것입니다. 위만조선이 멸망한 뒤 세 세력을 거느릴 대표를 잃고, 이들이 각기 이합집산하면서 고대 국가가 난립합니다. 이렇게 되기 이전, 세 어족이 주름잡던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조선’이고, ‘삼한’이었던 셈입니다.

‘조선=삼한=세한’은 나라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리던 북방 유목민족의 습속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흉노족도 선우와 좌현왕 우현왕으로 나누어 초원을 다스렸고, 고조선이 망한 뒤에 그 지역에 나타난 선비족 영웅 ‘단석괴’도 나라를 동부와 서부 중앙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이런 관행은 역사시대로 접어들어 계속 나타납니다. 중국도 수도가 셋이죠. 중앙인 장안이 있고, 남경과 북경이 있습니다.

이렇게 편의상 셋으로 나누었지만, 어떤 통일된 지휘 체계하에서 단일한 움직임을 보이는 국가 조직을 가리키는 말이 ‘세한’이고, 이것을 한자를 이용하여 향찰로 표기한 것이 삼한(三韓)과 조선(朝鮮)입니다. 마치 삼지창처럼 ‘세한’은 한 몸이 되었다가 셋으로 나뉘었다가 분리와 결합을 마음대로 하는 구조입니다.

조선의 기원에 관해서 처음 단서를 남긴 장안의 기록도 이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수에 대한 『사기집해』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안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열수․산수가 있는데 세 물이 합쳐서 열수가 되었다. 낙랑과 조선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따온 이름인 듯하다.”고 하였다. 集解張晏曰 : 朝鮮有濕水, 洌水, 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朝鮮, 取名於此也.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여기에는 洌이라고 나오는데, 다른 책에서는 모두 列로 나오고 ‘열구, 열양’ 같은 관련어들도 모두 列로 나와서 洌은 列의 오타이거나, 강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삼수변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해동역사』에는 ‘三水合爲列水’로 나와서 앞의 洌水와 구분했습니다. 물론 『해동역사』는 『사기집해』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북조선의 학자 리지린은 조선이라는 이름이 열수와 산수에서 나왔다고 결론을 맺습니다.(『고조선 연구』)

장안은 이것을 물길의 세 갈래로 이해했는데, 꼭 그렇게만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핏줄의 세 갈래를 강물의 세 갈래로 오해한 것으로 봐도 됩니다. 즉 고조선을 구성하는 가장 굵직한 겨레(혈통)가 셋이라는 뜻입니다. 세 겨레가 지배층을 이룬 나라가 ‘조선’이고 ‘삼한’이죠. 이것을 장안은 강물로 오해하여 세 물줄기가 만나는 강물을 굳이 찾아서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말에서 ‘한’은 크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히읗이 기역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기역은 입안의 가장 깊은 곳인 말랑입천장소리이고, 히읗은 그보다 더 깊은 목청소리입니다. 그런데 둘이 연이어 있어서 소리가 가끔 뒤섞입니다. ‘한’을 알타이 제어에서 ‘간(khan), 칸(kan)’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단기(單騎)를 뜻하는 만주어는 ‘kaidu’이고, 몽골어로는 ‘haidak’인데, 이 둘(k, h) 사이도 이런 음운변화 현상입니다. 우리말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 ‘대가리, 대갈박, 골, 구리대’의 어근 ‘ᄀᆞᆯ’이 바로 ‘한, 할’의 변형입니다.

이 ‘갈’은 ‘갈래, 가지, 겨레, 결지, 갈래기, 골’ 같은 말로 분화하는데, 몸통으로부터 갈라진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갈’은 크다는 뜻과 동시에 갈라진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 갈래’가 ‘세 한’이 되는 것입니다. ‘ᄀᆞᆯ>ᄀᆞᆫ>ᄏᆞᆫ>ᄒᆞᆫ’의 과정을 거친 결과입니다. 이것을 향찰로 적으면 ‘삼한’이고, ‘조선’입니다. 장안이 물길이 셋으로 갈라지는 것에서 연상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고개 갸우뚱거리는 불량 독자들을 위해서, 맨 앞에서 1만 년 전의 홍산 문화 주인공들의 언어가 알타이 제어보다 더 오래된 언어이고, 그 언어는 우리말과 직접 연결된다고 밑밥을 깔아놓은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말들이 그런 뿌리 깊은 말들입니다. 어차피 확인되기 어려운 사실이니, 이럴 땐 그냥 모른 척 속아주시는 게 상책입니다. 이러니저러니 시비 걸어 봤자, 여러분이 저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혈통이나 겨레에 따라서 나라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고대 사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서돌궐의 경우 여러 민족이 연합하여 이룬 나라인데, 9개 부족이 되었ᅌᅳᆯ 때는 이름이 ‘토구스(9) 오크’였고, 마지막으로 위구르족이 참여하여 10개 부족이 되자 ‘온(10) 오크(Oq)’가 됩니다. 오크는 화살을 뜻합니다. 옛날에 부족의 우두머리에게 주는 상징물이었죠. 요즘도 참모총장 같은 군의 수뇌부를 임명할 때 칼을 주는데, 지휘권을 상징하는 것이죠. 이곳의 화살은 그런 상징물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임금의 명령이 군대에 내려질 때는 화살이 앞서가는데 이를 ‘영전(令箭)’이라고 했습니다.

‘세한’을 한자로 적으면 삼일(三一)이 되는데, 숫자로 철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매력을 풍길 일입니다. 예수교에도 삼위 일체론이 있고, 우리 겨레에게도 삼신신앙을 비롯하여 『삼일신고』 같은 책도 나왔으니, 성부 성자 성신처럼 환인 환웅 단군도 삼위일체 신앙으로 올라서는 일은 아주 낯익은 일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유의 출발이 ‘조선=삼한’의 말속에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리합니다. 조선과 삼한은 동의어로, 세 겨레가 합쳐 만들어진 나라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마한 진한 변한, 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덕분에 가야가 우리 역사에서 밀려났습니다. 역사기록자들이 3에 집착하느라 가야를 버린 것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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