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6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6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15-단군과 기자6’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2.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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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서왕회편본문국사. 자료=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우리는 지금 은주 교체기를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그러면 중국인 최초의 왕조가 성립한 당시에 그 주변에는 어떤 이민족들이 있었나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은나라를 거꾸러뜨린 무왕이 주나라를 세워 왕이 된 지 2년 만에 죽고 어린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성왕입니다. 기원전 1,042년쯤의 일이었죠. ‘쯤’이라고 한 것은 연도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왕 7년에 수도 낙읍(洛邑)에서 성대한 잔치를 엽니다. <成王七年,大會諸侯于成周,四夷入貢作王會>라고 한 것으로 보아, 천하의 모든 오랑캐(四夷)까지 와서 조회에 참석했습니다. 아마도 은나라의 반군들을 모두 제압하고 이제 왕국이 영원하리라는 자신감을 얻은 뒤 온 누리에 그 자신감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런 행사를 했ᅌᅳᆯ 것입니다. 그 상황이 일주서에 나옵니다.

逸周書 卷第七 王會解 第五十九

○ 周公 旦主東方, 所之靑馬黑鬣, 謂之母兒. [周公主東方, 則太公主西方, 東靑馬則, 西白馬矣. 馬名未聞.] 其守營牆者, 衣靑操弓執矛. [戟也. 方各異.] 西面者正北方, 稷愼大麈. [稷愼, 肅愼也. 貢麈似鹿. 正北, 內臺北也.] 穢人前兒, 前兒若彌猴, 立行, 聲似小兒. [穢, 韓穢, 東夷別種.] 良夷在子, 在子□身人首, 脂其腹炙之, 霍則鳴曰在子, [良夷, 樂浪之夷也. 貢奇獸.] 揚州禺禺魚, 名解隃冠, [亦奇魚也.] 發人麃麃者, 若鹿迅走. [發, 亦東夷, 迅疾.] 兪人雖馬. [兪, 東北夷. 雖馬, 巂如馬, 一角. 不角者曰騏.] 靑丘狐九尾. [靑丘, 海東地名.] 周頭煇羝, 煇羝者羊也. [周頭, 亦海東夷.] 黑齒白鹿․白馬. [黑齒, 西遠之夷也. 貢白鹿․白馬.] 白民乘黃. 乘黃者, 似騏, 背有兩角. [白民, 亦東南夷.]

○ 夷用●木, [夷, 東北夷也. 木生水中, 色黑而光, 其堅若鐵]. 康民以桴苡. 桴苡者, 其實如李, 食之宜子. [康, 亦西戎別名也. 食桴苡, 卽有身.] 州靡費費. 其形人身, 反踵自笑, 笑則上脣翕其目, 食人, 北方謂之吐嘍. [州靡, 北狄也. 費費曰梟羊, 好立行, 如人, 被髮前足指長.] 都郭生生․欺羽. 生生, 若黃狗, 人面能言. [都郭, 北狄. 生生, 獸名.] 奇幹善芳. 善芳者, 頭若雄雞, 佩之, 令人不昧, 皆東嚮. [奇幹, 亦北狄. 善芳, 鳥名. 不昧, 不忘也. 此東向列次也.] 北方臺正東, 高夷嗛羊. 嗛羊者, 羊而四角. [高夷, 東北夷高句驪.] 獨鹿邛邛, 距虛善走也. [獨鹿, 西方之戎也. 邛邛, 獸似. 距虛, 負蟨而走也.] 孤竹距虛.[孤竹, 東北夷. 距虛, 野獸, 驢騾之屬.] 不令支玄獏. [不令支, 皆東北夷. 獏, 白狐, 玄獏則黑狐.] 不屠何靑熊. [不屠何, 亦東北夷也.] 東胡黃羆. [東胡, 東北夷.] 山戎戎菽. [山戎, 亦東北夷. 戎菽, 巨豆也.]

○ 伊尹朝獻商書, …… 伊尹受命. 於是, 爲四方令, 曰 : 「臣請正東符婁․仇州․伊慮․漚深․九夷․十蠻․越․漚․鬋髮․文身. [九十者, 東夷․蠻越之別. 稱鬋髮․文身, 因其事以名也.] 請令以魚皮之鞞․□鰂之醬․鮫瞂․利劍爲獻. [鞞刀․削鰂, 魚名. 瞂, 盾也, 以鮫皮作之. 鮫, 文魚也.] …… 正北空同․大夏․莎車․姑他․旦略․豹胡․代翟․匈奴․樓煩․月氏․孅犁․其龍․東胡. [十三者, 北狄之別名也. 代翟在西北界, 戎狄之閒, 國名也.] 請令以橐駞․白玉․野馬․騊駼․駃騠․良弓爲獻.」. 湯曰 : 「善.」.

이것을 보면 당시 중국을 에워싼 모든 오랑캐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오랑캐들의 상호관계는 알 수 없습니다. 지위와 서열이 각기 있겠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중국 측에서 접촉한 오랑캐들의 명단입니다. 일단 여기에 거론된 이상, 이들은 각기 독립된 존재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한 종족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조공을 바쳤ᅌᅳᆯ 리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언뜻 봐도 이상한 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이족 중에서 안 보이는 이름이 있습니다. ‘옥저([akwtshjag]), 동예([tûŋxuɑd]), 신라([sǐenlai])’ 같이, 중국 사서의 동이전에 꼭 등장하는 이름들이 안 보입니다. 여기 보이는 낯선 오랑캐 이름 중에서 이들과 대조하여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稷愼, 肅愼也. 직신은 숙신이고, 숙신은 ‘주르친(珠里眞)’의 표기로 퉁구스족을 말합니다. 훗날의 여진족으로 요동과 만주 지역의 터주대감이죠.

穢, 韓穢, 東夷別種. 한예라고 했는데, 이 당시에는 한반도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시절이니, 이때의 ‘한’은 한반도가 아니라 낙읍 근처에 있던 사람들을 말한 것입니다. 한반도의 한은 이들이 옮겨와서 나중에 붙은 이름이죠. ‘예’는 부리야트의 구다라 족을 일컫는 말입니다. 동예 때문에 그냥 ‘예’를 한예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예와 동예는 분명히 구별되는 종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족이 아예 달랐다기보다는 부리야트에 소속된 예냐 그렇지 않은 예냐로 구분하였을 것입니다.

良夷, 樂浪之夷也. 오랑캐의 한 부족을 가리키는 낙랑도 이때부터 있던 이름입니다. 퉁구스계인 박달족을 말합니다. 낙랑은 1,000년 뒤에 설치된 한사군의 하나로 유명해진 이름인데, 꽤 오래전부터 쓰인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사군이 대동강에 있었다는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이런 용어가 입증합니다.

發, 亦東夷. ‘발’은 줄임말일 텐데, ‘부리야트’이거나 부리야트의 일파 ‘발구진’을 말합니다. 뒤에 불령지(부리야트)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여기서는 발구진을 뜻하는 말로 보입니다.

兪, 東北夷. 이것은 짐작 가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굳이 비슷한 것을 찾아보자면 서언(徐偃)이 있습니다. ‘서’는 꾸밈말이므로 그걸 빼면 언([ǐan])이 그나마 유(兪, [yú])에 가까운 소리가 납니다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찾아보십시오.

靑丘, 海東地名. 설마 이 청구가 한반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할 역사학자는 없겠지요? 지금 이 모임이 벌어진 주나라는 중국 한복판의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자신들을 중심에 놓고 사방을 오랑캐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낙읍을 기준으로 볼 때 청구는 바다의 동쪽이라 했으니, 바다는 발해를 말하고, 그 동쪽은 산동 반도에 해당합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영역이죠. ‘지명’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부족 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청색은 오행 상 동쪽에 해당합니다. 발해를 파란 바다라는 뜻으로 청해(靑海), 창해(蒼海)라고 표기합니다. 바다 색이 파랗다는 뜻이 아니고, 동쪽에 있음을 오방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청해의 ‘해’를 구(丘, dal, 땅)로 바꾸어 동쪽 땅이라고 표기한 것이죠. 즉 청구란, 낙읍을 기준으로 할 때 동쪽에 있는 바닷가의 땅을 말합니다. 이곳이 중국화된 이후에 청구는 다시 이동하여 요동을 거쳐 한반도에 이릅니다. 그래서 후대에는 청구라고 하면 한반도의 조선을 뜻하죠. 이곳의 청구는 산동반도를 뜻합니다.

周頭, 亦海東夷. 주두([ȶǐudɔ])는 동예(東濊, [tûŋxuɑd])와 비슷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중에서 찾자면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다른 부족 명이 기억나는 분은 알려주십시오.

高夷, 東北夷 高句驪. 고구려

孤竹, 東北夷. 이것도 고구려를 뜻하는데, 앞에 고구려가 나오니, 이 고죽은 그 일파일 것입니다. 제환공이 고죽을 베었다(斬)고 한 것으로 보아 소수 지배층(왕족)을 말하는 걸 겁니다. 고구려가 5부족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중의 계루나 기징가처럼 소부족도 따로 이 모임에 참석했다는 뜻입니다. 앞서 고죽이 ‘ka(孤)+qusulu(ᄀᆞᆯ)=kokulu’이라고 봤는데, 소리만을 표기한 것으로 보면 ‘katǐuk’이어서 기징가(kiʒiŋa)의 ‘kiʒiŋ’와 비슷합니다. 끝소리 ‘ŋ’이 첫소리에서는 ‘k’로 발음되기도 합니다. ‘기자(箕子, [kǐətsǐə])’로 표기된 우두머리 집단입니다. katǐuk≒kiʒiŋ≒kǐətsǐə.

不令支, 皆東北夷. 부리야트. 다른 곳과 달리 ‘皆’가 붙어있습니다. 이것은 부리야트가 발구진 코리 구다라 세 부족의 연합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부족의 공동대표와 각 부족의 개별 대표가 함께 참석했다는 뜻입니다.

不屠何, 亦東北夷也. 부도하([pǐwədiaɣɡa], [pǐwəɣɑdʰjaɡɣɑ])는 발해(渤海, [buətxə̂ɡ], [buət xuə̂ɡ])와 소리가 거의 같습니다. 발해 바닷가에 사는 부족인데 아직 독립된 정치체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부족 같습니다. ‘청구’처럼 그들이 사는 지역 이름을 말한 것이죠. ‘불령지’를 줄여서 ‘영지’라고 하듯이, ‘부도하’도 ‘부도’로 줄일 수 있습니다. 방향이 동북이니, 동쪽의 청구 위쪽 즉, 발해만 북안이 시작되는 산해관 언저리일 것입니다.

山戎, 亦東北夷. 산(山, [ʃean])은 진(辰, [ʑǐən])과 비슷합니다. 나중에 신라(新羅, [sǐenlai])로 자리 잡는 ‘진국’ 세력이 이때쯤에는 이렇게 불리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東胡 동호는 동북이에도 있고 북적에도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먼 곳에서 북쪽과 동쪽의 경계에 걸쳐서 있기에 여기에도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중에 선비 오환으로 불리는데, 한나라 때에 이르면 숙신과 흉노 사이에 살죠.

이상을 살펴보면 부족 명이 있고, 땅 이름이 있습니다. ‘고구려’는 부족 명이지만, ‘청구’나 ‘부도하(발해)’는 땅 이름입니다. 독립 국가 수준으로 올라서 자신의 이름을 지닌 부족이 있는가 하면,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부족과 차별성을 보인 집단도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역사와 연관된 여러 오랑캐를 일단 두 부류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단순히 동쪽으로 적은 오랑캐(東夷)가 있고, 동북쪽이라고 적은 오랑캐(東北夷)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들이 이렇게 적힐 당시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동북이
稷愼(숙신), 兪人, 高夷(고구려), 孤竹(고구려 일파), 不令支(부리야트), 不屠何(발해), 東胡(선비 오환), 山戎(진국).

동이
穢人(구다라), 良夷(낙랑), 發人(발구진), 靑丘(발해), 周頭(동예).

동쪽이니 동북이니 하는 것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 기준은 응당 주나라의 도읍일 것입니다. 따라서 낙읍을 기준으로 할 때 고구려는 동북쪽에 있었고, 구다라와 발구진은 동쪽에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구도를 머릿속에 그리고서 오랑캐들의 배치도를 정리해보면 낙양의 동쪽 황하 하구에 낙랑 구다라 발구진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연히 발해의 왼쪽 귀퉁이에 걸쳐 있었ᅌᅳᆯ 것입니다. 거기서 북쪽과 서쪽에 걸쳐서 고구려 고죽 부리야트가 있습니다. 고죽국의 왕자 백이숙제의 무덤이 영제시 수양산에 있는 것을 보면 이 당시 이들의 위치를 중국 지도에 정확히 찍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부리야트가 큰 단위이고, 그 속에 코리 구다라 발구진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고구려와 고죽은 동북쪽이니, 고구려의 동남쪽(낙읍의 동쪽)으로 구다라와 발구진이 있어서, 주나라의 동쪽과 북쪽에 부리야트가 널리 펴져있는 짜임입니다. 따라서 이 당시 부여(부리야트)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낙읍의 북쪽에서 동남쪽 발해 근처인 북경을 포함한 황하 하구까지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이것은 앞서 알아본 ‘기자’의 자취가 두루 나타나는, 지금의 산서성과 하남성 산동성 일대, 연나라와 제나라의 영역입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이 숙신입니다. 숙신과 조선은 같은 말(주르친)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보면 조선을 구성하는 많은 종족 중의 하나로 표기되었습니다. 이때쯤이면 ‘숙신’과 ‘조선’의 뜻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숙신이 동호와 산융과 함께 나타납니다. 이것은 숙신이 ‘조선’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 작은 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좁아졌음을 의미합니다. 동호는 조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사서에 ‘조선’이 ‘숙신’보다 더 늦게 나타나는데, 이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조’는 꾸밈말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선’인데, 앞서 살펴본 대로 ‘친(眞), 치앙(商), 언(偃), 서언(徐偃), 산(山), 진(辰)’이 모두 이 ‘선’과 같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당시에는 만리장성이 없었습니다. 만리장성은 황하와 음산산맥이 저절로 만들어놓은 자연 경계선을 따라서 사람이 쌓은 성을 연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왕의 모임 때 이들 여러 동이는 만리장성 선의 안에 있었을까요? 밖에 있었을까요? 당연히 만리장성 선 안의 상황입니다. 고구려 구다라 발구진은 부리야트 족이므로, 이들을 따로따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구다라와 발구진이 낙읍의 동쪽에 있기에 고구려는 바로 그 위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동북이라고 했죠. 이것이 고구려를 비롯한 부리야트 족이 만리장성 선 안쪽인 산해관 이남에 있었다고 보는 근거입니다. 주나라가 점차 성장하고 지배 영역이 커지면서,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점차 바깥으로 벗어난 것입니다. 다만 직신이나 동호로 표기된 부족들은 만리장성 선 바깥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서쪽에는 북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북적도 음산 산맥의 이남 지역까지 내려왔을 것입니다.

만리장성을 완성한 사람은 진시황입니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가 끝날 때쯤이면 이들 오랑캐는 만리장성의 경계나 그 바깥에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역사학이 설명하는 것을 보면 황당할 따름입니다. 예컨대 고조선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낙랑을 보면, 이때의 낙랑은 주나라의 낙읍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동쪽의 오랑캐(東夷)였죠. 동쪽 바다는 발해이니, 그 발해 언저리 즉 황하 하구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 낙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양에 있습니다. 그러면 성왕 7년의 이 모임에 대동강 사람들이 낙읍까지 왔다는 말입니다. 『사기』를 쓴 한나라 사마천조차도 한반도를 몰랐고, 왜는 나타나지도 않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사마천 시대보다 천 년 전에 벌어진 이 사건에 나타난 낙랑(良夷)은 뭐란 말입니까?

매직으로 찍어놓은 풍선의 점은, 바람에 부풀수록 점차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동북아시아의 고대사는 이렇습니다. 중국의 세력이 커질수록 그 주변의 오랑캐들이 점차 더 먼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이걸 무시하고 낙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동강가에다가 못 박아놓고 설명을 하자니, 설명을 하면 할수록 앞뒤가 안 맞는 사건들이 끝없이 더 일어나는 겁니다.

고죽도 고구려도 이처럼 낙양 가까운 곳에 있다가 점차 밀려서 영정하와 난하를 거쳐서 송화강까지 밀려가는 겁니다. 구다라(백제)와 발구진도 마찬가지죠. 이들은 주나라 성왕 때 북경 근처에 있다가 고구려를 따라서 송화강으로 갔다가 한반도로 흘러드는 겁니다. 백제가 요서 진평을 차지하자, 고구려가 산서성의 태원을 공격하여 차지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이런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자료입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추론을 거부하고 모든 부족을 한 자리에 못 박아놓고 설명하려 드는 태도는, 바람을 무시하고 연의 운동을 분석하려는 짓과 똑같습니다. 바람을 모르니 연이 하늘에서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동이와 동북이가 모두 낙읍 근처에 있었다면, 만리장성 선 안쪽의 판도 말고, 요동과 만주, 그리고 한반도는 어떠했을까요? 역사학에서는 유물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장할 수도 입증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어학에서는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고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 지역에 역사상의 왕조를 세우지 못한 채 스러져간 소수민족의 언어가 아직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언어들을 비교해보면 이들도 계통을 따라서 옮겨갔습니다.

요동과 만주 지역에는 주르친(숙신)이 유목 세력으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주르친은 초원지대의 터주대감 같은 존재입니다. 서쪽의 월지부터 시작해서 중앙의 흉노, 그리고 동쪽의 숙신까지 ‘주르친’이 골고루 퍼져있는 상황이죠. 그런 세력 밑에 왕조를 이루지 못한 수많은 언어군이 살았겠죠. 한반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70여 개나 되는 작은 나라들의 이름을 보면 그런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행정 단위 ‘군’마다 나라가 하나씩 있었을 것입니다. 이 넓은 동북아시아 지역에 퍼진 언어들을 보면 길약, 에벤키, 야쿠트, 나나이, 우데게, 오로치, 코리약, 축치, 아이누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심지어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까지 이들 언어군이 진출하여, 마야나 잉카 같은 거대한 석기 유적과 문명을 일굽니다. 아메리카에는 원래 말이 없었으니, 이들은 말 사육 이전에 베링해협을 건넌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3,000년 전에 말이 사육되고, 대규모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이들 지역의 교류가 활발해집니다. 여기에다 뒤이은 청동기와 철기를 바탕으로 고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이 지역이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앞서 말한 언어군 위로 유목 세력의 언어인 터키어 몽골어 퉁구스어가 지배층의 언어로 쏟아져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해일의 진앙은 여기서 보는 은주 교체기입니다. 이 시기를 빅뱅으로 하여 춘추전국시대와 진한대를 거치면서 강력한 철기를 바탕으로 일어선 나라들이 서로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고, 그 영향이 일파만파로 만리장성 선 바깥까지 번지면서 동양의 고대사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동치기 전까지 요동과 만주 한반도는 초기 농경사회의 고요한 모습을 유지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평화로운 사회를 상징하는 나라가 적봉과 홍산 문화의 주인공 ‘조선’이자 ‘단군’이었던 것이죠.

이렇게 얘기하면 꼭 트집 잡는 놈들이 나타납니다. 이들 어족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이라는 논리죠. 베링해협 얘기까지 했는데도 어족의 이동을 밝혀낸 언어학의 성과를 애써 무시합니다. 쯧쯧. 앞서 제시한 동북아 어족들은 대부분 사람에게 열악한 환경에서 삽니다. 북쪽 지대의 추운 지역이나 바닷가 같은 곳이죠.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북극 가까운 곳에 살았을까요? 원래는 살기 좋은 땅에 살다가 떠밀려서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바다에 바자우족이 삽니다. 이들은 육지를 떠나서 바다에 떠돌며 삽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바다를 떠돌았을까요? 그럴 리가요! 떠밀린 것입니다. 왜 떠밀렸을까요? 바자우족 전설에는 자신들이 그렇게 살게 된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실제로는 육지에서 무슨 큰 변동이 있었던 것이죠. 저는 그 원인을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봅니다. 한중, 즉 촉을 얻은 유비는 북벌을 꾀하는데, 거슬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촉의 남쪽에 있는 오랑캐입니다. 만약에 유비가 북벌을 단행하여 한중을 비운 사이, 조조가 남쪽 오랑캐에게 밀서를 보내어 촉을 치라고 한다면 뒤통수를 맞는 것이죠. 그래서 제갈량은 운남이라는 험악한 산악지대를 병풍 삼아 사는 이들을 칩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맹획을 사로잡다(七擒孟獲)」라는 꼭지지요. 남만(南蠻)의 우두머리 맹획이 스스로 항복할 때까지 잡고 놔주고를 되풀이합니다. 결국 일곱 번이나 사로잡힌 맹획은 촉을 넘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남쪽으로 물러납니다.

그러면 맹획이 물러나서 자리 잡은 그 남쪽에는 아무도 없었을까요? 누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남쪽으로 밀려났을 겁니다. 라오스나 베트남 태국 같은 곳이죠. 이렇게 파도처럼 밀리면 더 남쪽 인도네시아의 땅끝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배 타고 바다로 나가는 수밖에 없죠. 제가 보기에 바자우족은, 제갈량의 맹획 정벌이 촉발한 민족 대이동의 마지막 희생양일 겁니다. 이런 일이 삼국지 시대에만 일어났다고 볼 수 없습니다. 북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앞서 살펴본 소수 알타이 어족들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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