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백제 2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백제 2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28-백제2’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3.2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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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각 출판사 영인본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부분.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부리야트의 세 종족 중에서 나머지 한 갈래인 코리를 살펴봅니다. 계루나 고리는 몽골어에서 가운데를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말에서도 그렇죠. ‘갈래, 가람(江), 가랑이, 골짜기’ 같은 말들을 보면 둘로 갈라지는 지점의 복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못 믿겠다고요? 여러분이 여행을 많이 다녀온 몽골 초원에 호수가 있습니다. 바이칼도 있고 홉스굴도 있죠. 바이칼은 몽골이 아니라 러시아 땅이라고요? 맞습니다. 똑똑하십니다. 몽골이 소련과 독립협상을 벌일 때 독립 승인의 대가로 자신의 땅을 떼어준 겁니다. 내몽골도 그렇고요. 제 생각이 아니라 몽골 여행 갔을 때 현지 가이드한테 들은 설명입니다. 한국에서 유학했다는 젊은 여성이었는데,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억해 둘 걸!

몽골어로 냇물을 ‘gool’이라고 합니다. 홉스굴의 ‘굴’이 바로 그것입니다. 홉스굴이라는 호수는 호수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개울처럼 길게 생겼을 겁니다. 그래서 ‘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죠. 바이칼의 ‘칼’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유럽 쪽에 있는 호수 이름들은 거의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간 이름입니다. ‘홉스굴(몽골), 바이칼(러시아), 이식쿨(키르기스스탄), 투다쿨(우즈베키스탄), 카라쿨(타지키스탄), 알라콜(카자흐스탄)’에 보이는 ‘굴, 칼, 쿨, 콜’이 모두 몽골어 ‘굴(gool), 갈’이고, 바로 우리말의 ‘골’짜기이며, ‘개울’입니다. 

‘kal’이나 ‘gool’은 같은 말입니다. 시대나 사투리에 따라서 k와 g는 서로 넘나듭니다. 입안에서 소리 나는 위치가 모두 말랑입천장소리입니다. 우리는 k와 g를 정확히 구분하여 발음하는데, 이 두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족도 많습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b와 p를 잘 구별하지 못하죠. 그래서 우리가 별별 고민을 다 했습니다. ‘부산’을 ‘Pusan’이라고 적어야 하느냐‘Busan’이라고 적어야 하느냐 하면서 말이죠.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Pusan’이라고 적었는데, 대학에 가니 ‘Busan’으로 적자고 바뀌었습니다. 1988년 수정된 한글 맞춤법. k와 g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가볼까요? ‘조선’과 ‘삼한’은 같은 말이고, 나라를 세 영역으로 나누어 다스리던 북방 민족의 특성에서 온 말이라고 했습니다. 부리야트의 세 종족도 이런 것입니다. 기자조선의 ‘기자’는 부리야트 코리족 소속의 ‘기징가’부족이고, 결국 고리족은 기자조선 시대의 단군(중앙)을 맡았다면, 나머지 발구진과 구다라는 양 날개처럼 나머지를 맡았다는 뜻입니다. 흉노식이라면 좌현왕과 우현왕이 되겠죠. 중국 측에서 마주치는 상대는 왕이 아니라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는 집단입니다. 결국은 코리족 기징가는 중앙에 있고, 나머지 두 부족이 중국와 싸움을 했다는 말입니다. 중국 측에서는 코리가 아니라 발구진과 구다라를 상대하게 되죠. 그래서 이들이 예맥과 진번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칭기즈칸 시대에 몽골족을 구성하는 주요 5부족 중에 ‘케레이트’가 있습니다. ‘이트’는 ‘이누이트, 부리야트’에서 보듯이 복수 접미사입니다. 그러면 ‘케레’가 남는데, 이 말이 ‘고려, 구루, 계루, 고리’의 몽골식 발음입니다. 그래서 케레이트는 발해를 구성하던 고구려 부족이 몽골제국으로 합류한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기자조선이나 삼국 시대와는 많이 떨어졌지만, 뒷날의 역사에서 ‘고구려’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이 ‘케레’가 앞서 말한 중앙을 담당했던 옛 부족이 아닌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몽골의 핵심 부족은 다섯인데, ‘카마즈 몽골(키야트, 타이치우드, 잘라이르, 주르킨), 나이만, 타타르, 케레이트, 메르키트’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르킨은 여진족 이름과 똑같고, 메르키트는 말갈의 몽골식 이름으로 역시 발해를 구성하던 주요 종족입니다. 발해가 거란에 무너지면서, 발해의 나머지 세력이 몽골로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케레이트나 메르키트가 그런 종족들입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방송을 듣다 보니 ‘쿠다라나이’라는 말도 나오더군요. 저는 처음 들었습니다. ‘쿠다라 제품이 아니야!’라고 하는 일본어랍니다. 좋은 물건, 즉 외래품을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나이’를 일본어로는 ‘아니야’라고 하는 모양인데, 실제 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좋은 물건을 말할 때 그것을 만든 선진국의 이름을 물건 앞에 붙입니다. 예컨대 근대화 초기에 성냥을 보고서 우리는 ‘당성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만 해도 좋은 제품은 중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꾸밈말 ‘당’은 중국을 뜻하는데, ‘당나라’입니다. 그래서 당진(唐津)도 중국에 가는 나루를 뜻하는 말(당나루)이고, 그것이 지명으로 굳은 것(당진)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왕 노릇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물건은 용산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들이었죠. 우리가 쓰는 조잡한 물건보다 월등하게 더 나은 품질입니다. 그래서 좋은 물건에는 ‘미제’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물건의 보증수표 노릇을 한 것이죠. ‘쿠다라나이’도 이런 종류의 말입니다.

‘쿠다라나이’는 ‘백제산 물건’을 뜻하는 말입니다. ‘나이’는 만든다는 우리말입니다. ‘돌실나이’라는 말이 있는데, 전라도 곡성의 돌실(石谷)이라는 동네에서 만드는 모시를 말합니다. 모시에서는 모시 만드는 것을 ‘나이’라고 하죠. ‘사나이’의 옛 표기는 ‘ᄉᆞᆫ나ᄒᆡ’인데, ‘산(丁)+나히(生)’의 짜임입니다. ‘나히’가 바로 ‘나이’이고,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사나이는 사내 구실을 하도록 태어난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평안도 사투리 ‘에미나이’도 ‘에미(母)+나히(生)’의 짜임으로, 어미 구실을 하도록 태어난 사람을 뜻합니다. ‘쿠다라나이’의 ‘나이’도 이것을 말합니다. 일본어가 아니고 백제어입니다. 백제의 본거지인 한국의 서해안 지역에 이런 말이 아직도 쓰이는 겁니다.

‘온조’는 사람(시조) 이름이 아니고, 백제 왕가의 성이라고 했습니다. 즉 고주몽을 따라서 몽골계임을 밝힌 것이고, ‘고 씨의 나라’라는 뜻으로 ‘온조=백제’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조의 형 비류(沸流)는 어떨까요? 비류도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성’이나 ‘씨’입니다. ‘비류’에서 연상되는 왕가의 성씨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부여’ 씨죠. 백제 왕실의 성은 부여 씨였습니다.

그렇다면 온조와 비류가 한강 가에 와서 나라 이름을 정할 때 ‘고 씨의 나라’로 할 것이냐 ‘부여 씨의 나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갈라졌음은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비류’는 ‘부여’와 같은 말로 보입니다. ‘부여’는 ‘부리야트’의 향찰 표기라고 했습니다. ‘부리야트’의 앞부분(‘부리’)을 ‘비류’라고 적은 게 아닐까요?

이런 상황으로 보면 백제 건국 초기 단계에서 지배층이 두 패로 갈라진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두고 벌인 갈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온조계는 고구려와 맺은 관계를 강조한 것이고, 비류계는 고구려의 자취를 남기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 씨의 나라’가 아니라 ‘부여의 나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미추홀에서 나라 세우기에 실패하고 비류는 동생의 나라에 남았겠지만, 그를 따르던 다른 세력들은 백제로부터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런 세력 중에 유난히 드러난 사람이 바로 석탈해입니다. 석탈해는 전라도를 거쳐서 남해안으로 갔다가 나중에 경주로 들어가서 자리 잡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신라를 다룰 때 다시 검토해보겠습니다.

이들 갈등의 원인이 된 ‘부여’를 잠시 살펴봅니다. 부여는 모두 셋입니다.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원래는 부여였는데, 부여 왕 아란불의 꿈에 신이 나타나 “이곳에 하늘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니, 너는 동쪽 가섭원으로 옮겨라.”라고 하여 옮겨갔더니, 원래의 부여 땅에는 해모수가 나타나 새로운 왕이 됩니다. 그리고 졸본부여에서 해모수의 서자 주몽이 일어나 고려를 세웁니다. 이 세 부여의 관계입니다.

원래 부여(부리야트)는 만리장성 안쪽에 살았습니다. 이 연재의 앞쪽에서 『일주서』의 오랑캐 이름을 분석할 때 알아봤죠. 이들이 만리장성 밖으로 쫓겨나 살던 시기가 진시황과 한무제 때의 일입니다. 위만조선의 날개 밑에 있었죠. 그런데 위만조선이 한무제에게 망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한나라 세력이 팽창하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눌러살 것이냐 멀리 안전한 곳을 옮길 것이냐? 한 민족 앞에 이런 과제가 던져지면 둘로 갈라집니다. 남는 자가 있고, 떠나는 자가 있죠. 이런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 신화가 바로 북부여 동부여 이야기입니다. 결국 위만조선의 날개 밑에 있던 부여는 지도자를 따라 안전한 땅으로 떠납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새로운 부여죠. 새로운 부여는 동쪽으로 갔기에 ‘동부여’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남은 부여는 바로 뒤에 일어서는 졸본부여 때문에 ‘북부여’가 되죠. 세 부여가 거의 동시에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남은 자들은 어떨까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중국의 통치를 받아들이든가 더욱 강력한 투쟁을 하여 자신들의 존립을 확립하든가? 떠나고 남은 땅에 새로운 지도자가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해모수입니다. 주몽의 아버지죠. 주몽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왕이 됩니다. 결국 ‘고구리’라는 나라를 세우죠.

그런데 주몽은 졸본부여에서 왕이 됩니다. ‘졸본’은 ‘크다, 높다’는 뜻입니다. 그곳에서 왕이 났으니 왕을 배출한 큰 부여라는 뜻이죠. 그래서 원래 나라 이름을 ‘큰 부여’라고 해야 하는데, 주몽은 자신의 출신 부족으로 나라 이름을 삼았습니다. ‘계루>고리’가 그것입니다. 여기에다가 ‘졸본’의 뜻을 한자로 옮겨서 고(高)를 꾸밈말처럼 얹은 것입니다. 그것이 ‘고구리(高句麗)’입니다. 따라서 고구리(高句麗)는 졸본부여와 똑같은 말입니다. 예맥족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졸본부여’라면, 주몽의 출신 부족을 강조하는 것이 ‘고구리’입니다.

백제가 고구려에서 독립하려고 할 때, 온조는 주몽의 출신 부족을 강조하는 이름을 이어받겠다고 한 것이고, 비류는 예맥족 전체를 대변하는 이름을 이어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백제 초기의 국명을 두고 벌어진 갈등의 근원입니다.

한반도의 서쪽을 차지한 이 나라를 두고 일본은 ‘구다라’라고 불렀고, 온조계는 ‘고 씨의 나라’라고 불렀고, 비류계는 ‘부여 씨의 나라’라고 불렀음이 어원 추적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부리야트의 구다라족이 한강에 와서 어느 성씨로 나라의 이름을 정할 것이냐며 의견이 갈라진 것입니다. 이 갈등은 끝내 봉합되지 못하고 백제 후기로 가면 가야 세력의 합류로 권력투쟁 양상이 더 복잡해지면서, 결국은 백제 세력의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언어와 국명의 표현 양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맥클리 = 발구진 + 고리
구다라 = 고리 + (구)다라
백제 = 고리 + (구)다라
진번 = 발구진 + (구)다라
예맥 = (구)다라 + 발구진

일본 쪽 얘기 좀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백제를 ‘구다라’라고 부르고, 고구려를 ‘고마’라고 부릅니다. 백제를 ‘구다라’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고구려를 ‘고마’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구려는 백제가 성립할 때 마치 뒤쪽을 받쳐주는 큰 형님이나 방패 노릇을 했기 때문입니다.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은근히 힘을 보태주는 존재죠. 아이들이 싸울 때 아버지의 뒷배에 따라 우위와 서열이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심지어 개들도 그렇습니다. 백제에게 고구려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일본인들이 ‘고마’라고 부르는 것 때문에 고구려를 ‘신의 나라’라고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좀 단정 짓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 식이면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본 쪽에서 볼 때 삼국 모두 신의 나라가 아닌 곳은 없습니다.

‘고마’는 우리 말에서 신을 뜻하기도 하지만, 퉁구스어에서는 ‘뒤’를 뜻합니다. 그래서 ‘후처, 첩실, 후궁’을 ‘고마’라고 합니다. 떠돌이 환웅의 아내가 되는 여자가 ‘곰(熊女)’인 것은, 이 신화가 퉁구스족의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퉁구스족의 신화가 피지배층에게 전해지면서 ‘뒤’가 ‘신’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아이누어로 ‘감’은 신이 맞습니다. ‘니사금’은 아이누어로 ‘하늘의 신(니쉬가무이)’을 뜻하는 말입니다.(뒤에서 신라를 다룰 때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그러나 퉁구스어에서는 오히려 ‘뒤’의 뜻이 더 강합니다.

이렇게 보면 공주와 금강의 의미도 전혀 다르게 풀 수 있습니다. ‘공주’는 원래 ‘웅주(熊州)’였고, 웅주는 ‘곰고을’을 번역한 것입니다. 신의 도읍이 아닙니다. ‘곰강’의 남쪽에 있어서, 곰강을 등 뒤에 둔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금강’은 ‘곰강’을 적은 것이고, 금강은 정확히 공주의 뒤에서 공주를 감싸고 보호하며 서남쪽으로 흘러갑니다. 공주에 사는 사람들이 그 강을 자기네 ‘뒤’에서 감싸고 흐르는 강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막 남쪽으로 내려와 자리 잡은 백제의 뒤에는 고구려가 거인처럼 혹은 큰 형님처럼 떡 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다라(백제)의 뒤(고마)에 버틴 나라’를 뜻하는 말로 ‘고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구려인 스스로는 ‘고마’라고 말할 리가 없지요. 그들은 스스로를 ‘솟을 구르 : 위대한 중심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코리’이고, ‘계루’이고, ‘고리’이고, ‘고구리’이고, ‘고구려’입니다. 이런 말들이 그 말의 뜻을 알 리 없는 중국인들의 귀에 들리는 대로 한자로 적힌 것입니다. ‘졸본부여’도 이런 뜻을 지닌 말이죠.

하지만 말은 무서운 것이어서 아무리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바뀌어도 어원을 파고들면 그 뿌리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한 집단이 쓴 언어는 그들의 무의식을 반영합니다. 무의식은 왜 그런지도 모르고 그렇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역사서에 남은 모든 언어는 그런 것들입니다. 임자도 모르는 무덤에서 귀중한 금붙이 몇 개가 발견되었다고 환호작약할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빛나는 황금이 그들의 언어입니다. 이런 황금을 날마다 쓰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것이 한국의 역사학계입니다. 옛날 서양의 기록에 신라에서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황금을 보고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다는데, 이게 오늘날 한국의 역사학계를 말한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안 주워가기는커녕 발길로 걷어차죠. 하하하.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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