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칼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
[전우용 칼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
  • 전우용 역사학자
  • 승인 2023.04.18 16:4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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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전우용 역사학자] 

어머님께.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 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1960년 4월 19일. 당시 한성여중 2학년생이던 진영숙이 시위에 참가하러 나가기 직전에 어머니 앞으로 쓴 편지(유서) 전문이다.

그는 시위 버스를 타고 미아리고개를 지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절명했다. 만 14세. 한창 장밋빛 미래를 꿈꾸어야 마땅한 꽃다운 나이. 스스로도 ‘아직 철이 없는 줄’ 잘 알았던 그를 이토록 비장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의 머리에 총을 쏘아 죽인 자는 누구인가? 그를 죽이라고 시킨 자는 또 누구인가?

이승만은 권력을 잡자마자 서북청년단이라는 민간 무장조직을 동원하여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숱한 양민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고문, 학살했다.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무력화하고 반민특위를 해체하여 민족의 염원이던 식민지 잔재 청산을 무산시켰다. 6.25 전쟁이 터지자 먼저 서울을 탈출한 뒤 “국군이 북진하고 있으니 서울시민은 안심하라”고 허위 방송하여 100만 서울 시민을 북한군 치하에 버려두었다.

서울 수복 후에는 ‘부역사 색출’이라는 핑계로 또 무수한 서울시민을 폭행, 투옥, 살해했다. ‘부역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뇌물을 바쳐야 했던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사진: 유튜브 최태성 2TV 캡쳐]
[사진: 유튜브 최태성 2TV 캡쳐]

일제가 만들었던 ‘시국대응 전선 사상연맹’을 그대로 부활시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어서는, 전향한 좌익 혐의자들을 강제 가입시켰다가 6.5전쟁이 나자 재판도 없이 살해했다. 청장년들을 예비 병력으로 삼겠다며 ‘국민방위군’을 조직한 뒤 식량과 보급품을 주지 않아 수만 명을 얼어죽고 굶어죽게 만들었다.

전쟁 중의 비상 상황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 비상상황에서조차 자기 사익을 챙기려고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전쟁 중, 그리고 전쟁 직후에도 많은 군 간부가 피복, 침구, 의약품 등의 군수물자를 빼돌려 민간에 팔아 넘겼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에 ‘후생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당당했다. 자기들의 도둑질 덕에 민간인들이 산다는 논리였다. 미국의 원조물자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민간에 전달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반 국민에게는 피눈물같았던 원조물자와 자금은 이승만과 가까운 관료들의 손을 거치며 뭉텅뭉텅 잘려 나갔고, 이것들이 이른바 ‘정경유착’의 접착제가 되었다.

불공정하게 배정된 원조자금을 기반으로 한 ‘매판자본’이 배를 불리는 한편에서, 서민들은 세계 최악의 빈곤상황에 놓여야 했다.

서울에서 탈주한 뒤 거짓말 방송한 것 하나만으로도 이승만은 탄핵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 중이라는 비상상황을 악용하여 1952년 부산에서 ‘발췌개헌’이라는 편법으로 대통령에 재선되었고, 1954년에는 국회에서 부결된 헌법 개정안을 ‘우기기’로 통과시켜 '종신집권'에 대한 법적 규제를 없애버렸다.

1956년, 이승만은 짐짓 자기가 고령이라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불출마선언‘을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그의 지지세력들은 우마차꾼들을 대거 동원하여 ’불출마 번복‘ 하소연 시위를 했다. 그 때문에 서울 거리는 쇠똥 말똥으로 가득찼고, 민의가 아니라 ’우의마의(牛意馬意)‘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는 '민의'를 저버리고 '우의 마의'에 따랐다.

이승만 정권을 떠받친 기둥 중 하나가 깡패였다. 이승만 정권 시절 깡패들은 못 하는 짓이 없었다. 좌익이나 간첩 혐의를 씌워 무고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았고, 폭행·성폭행을 다반사로 저질렀다.

이승만을 위해 ’더러운 일‘들을 대신 해주는 대가로 깡패 두목들은 ’정치적 거물‘로 행세했다. 1955년, 서울 명동의 사보이호텔 화장실에서 수류탄이 터졌다.

6.25 전쟁 휴전 직후라 아직 많은 무기가 시중에 풀려 있었는데, 그것들 대다수를 깡패들이 소유했다. 이 해가 단기 4288년, 그 이후의 한국인들이 ’쌍팔년도‘라고 부르는 해였다.

국민의 종복이어야 할 공권력은 깡패들을 처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과 한패처럼 행동했다. 1960년 4월 18일 시위에 나선 고려대 학생들을 못이 박힌 각목 등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한 것도 깡패들의 소행이었다. 당시 경찰은 깡패들의 폭행을 수수방관했다.

우리나라에서 초등 의무교육은 1953년에 시작되었다. 그 해에 ‘의무적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생이 되었을 때 4.19가 일어났다.

진영숙과 ‘그의 모든 학우들’은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배운 첫 세대였다. 그들이 교과서로 배운 민주주의와 이승만 정권 하의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진: 유튜브 최태성 2TV 캡쳐]
[사진: 유튜브 최태성 2TV 캡쳐]

일제강점기 ‘불의의 지배’ 아래 살았고 여전히 천황제 군국주의의 영향 하에 있었던 그의 부모 세대는 침묵했지만,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왕조시대’를 만들어 놓은 이승만 정권의 ‘불의’는 학생들을 의분(義憤)케 했다. 학생들이 4.19의 주역이 된 이유다.

헌법전문에 4.19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조항은 1963년 제3공화국 헌법에 처음 들어갔고, 제5공화국 헌법에서 빠졌다가 1988년에 개정된 현행 제6공화국 헌법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으로 명시되었다.

우리 헌법이 명시한 바, 4.19정신은 ‘불의에 항거한 민주이념’이다.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결심했던 진영숙 같은 이들에게 ‘불의’가 무엇인지는 명백했다.

이승만 정권 자체가 ‘총체적 불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는 수백 억원의 혈세를 들여 ‘이승만 기념관’을 짓겠다고 한다.

굿모닝충청 전우용 역사학자
굿모닝충청 전우용 역사학자

진영숙의 영전에, 4.19 때 ‘불의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수백 명과 그 유족들의 영전에 물어보라.

아니 그 전에,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기한 지금의 헌법부터 개정하라. 헌법정신을 위반하는 정부는 반헌법적 정부다.

정부의 이런 행위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자문하기 바란다. 지금 ‘쌍팔년도’로 되돌아가고 싶은지. 그 시대를 지배한 욕망과 그 시대로 돌아가려는 욕망은 ‘불의한 욕망’이자 ‘더러운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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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 2024-02-18 00:19:50
칼럼 자체가 거짓 투성이이네요. 이런 칼럼은 검증도 안하고 올리나요?

유재상 2023-04-19 13:16:39
역시 굿모닝 충청!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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